영비법 통과 전망으로 바로 본 새로운 한국영화산업의 현실

▲ 지난 5월 4일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서울 강남구 코엑스 SM아티움에서 열린 '비상하라! 한류문화콘텐츠 -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간담회에 참석했었다.


[투데이코리아=노철중 기자]새 정부 출범이후 대기업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는 가운데 영화산업 쪽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사회경제적 양극화 해소를 위해 대기업 규제라는 칼을 커내 든 것처럼 영화산업에도 대수술이 있을 전망이다. 영화계도 스크린 독과점이라는 양극화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기에 이런 기류에서 자유로울 리 없다.


영화산업 양극화와 독과점 문제는 CJ E&M, 롯데엔터테인먼트, 메가박스 등 대기업들 탓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들 대기업은 영화의 제작·투자, 배급, 상영 등 영화산업 전 분야를 수직계열화 함으로써 결국에는 스크린 독과점이라는 폐해를 낳았다고 지적 받는다.


국내 상영관의 90%를 이들 3사가 장악하고 있고 자사에서 제작과 투자 그리고 배급까지 다 한다. 자사에서 제작한 영화의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위해 자사의 상영관에 그 영화를 몰아주면서 중·소제작사의 영화들은 배척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불공정한 영화산업 구조개선 의지’ 드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전 5월 4일 엔터테인먼트업계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영화산업의 경우 배급망을 소유한 대형 제작사가 시장을 지배하고 이와 손잡지 못한 영화는 열심히 제작해도 상영 기회를 얻지 못하는 양극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선거 과정에서도 ‘공정한 콘텐츠 제작 환경 구축’에 방점을 찍고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독과점, 지위 남용, 담합 등을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었다.


지난해 12월 당시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은 상영업과 배급업 겸업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을 위한 법률’(이하 영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현재 여러가지 이유로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이 법안을 발의한 도종환 의원은 31일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지명된 상태다. 만약 장관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영비법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통과가 안 되더라도 도 의원이 주도하게 될 정책들은 독과점 규제 쪽으로 흐르게 될 것이다.


현재 한국영화산업의 불공정한 관행들


영화 독과점의 폐해는 중소 제작사가 좋은 영화를 열심히 만들어도 영화를 상영할 극장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메이저 3사가 주도하는 구조 속에서는 소규모 영화나 저예산 영화, 예술영화 등 다양성 영화들은 상영기회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의 예를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 영화는 CJ E&M이 (주)영화사람, (주)더타워픽쳐스와 공동제작하고 투자와 배급까지 도맡아 자사 상영관인 CGV에 영화 몰아주기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영화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4월 26일 개봉 첫날 스크린 수 934개에서 출발해 4일 만에 1053개까지 늘렸다. 1053개 중 CGV에서 452개, 롯데에서 312개, 메가박스에서 211개 스크린에서 상영됐다. 단일 영화 한 편에 대해서 상영관 3사가 차지하는 스크린점유율을 모두 합하면 약 56%를 차지한다.


이슈데일리의 보도에 따르면 <임금님의 사건수첩>이 논란이 된 이유는 평단에서 좋은 평가를 못 받았고 관객들에게서도 혹평을 받은 영화가 스크린 수에서는 기존 흥행작들에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이는 막강한 배급력을 내세워 만듦새가 미비한 자사 영화들의 손익분기점을 맞추려는 행태라는 지적이다.


▲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일으켰던 영화들 포스터. (왼쪽부터) '명량', '해적', '임금님의 사건수첩'


스크린쿼터 축소 이후 더욱 심해진 독과점 문제


한국 영화 산업의 독과점 문제는 2006년 스크린쿼터 축소에서 시작됐다. 2006년 정부는 영비법을 수정해 기존 146일이었던 의무 상영 일수를 절반 수준인 73일로 줄였다.


본래 스크린쿼터제는 할리우드 영화의 과도한 한국 시장 점유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는 관객 수 1000만이 넘는 한국영화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때였다. 그런데 한미 FTA 체결과 맞물리면서 영화시장도 개방해야 한다는 정부의 목소리가 커졌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영화의 경쟁력을 믿는다면서 영화계를 직접 설득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2006년 한국영화 대 외국영화 점유율이 63.6% 대 36.4%였던 것이 2016년에는 53.7% 대 46.3%로 오히려 상황이 나빠졌다. 한국영화의 경쟁력은 대형화라는 이름으로 갖춰졌고 외국영화는 그들대로 한국영화 시장에 지속적으로 진출한 결과다.


한국영화는 현재 질적으로 많이 향상됐고 관객들도 한국영화를 많이 보기는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대자본이 투입된 대형 영화들의 각축장일 뿐이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거대 자본을 우려했었지만 오히려 국내의 거대 자본에 의해 국내 영화산업이 장악된 상황이다. 최근에는 외국 영화사들이 한국 영화에 투자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어 국내 영화의 대형화는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규모의 경제학? NO! 거대자본 한국영화 생태계 변화 필요


3대 메이저 회사들은 영비법 통과를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영비법이 통과되면 배급업과 상영업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2월 열린 ‘CJ CGV 영화산업 미디어포럼’에서 서정 CGV 대표는 “영비법 개정이 국내 영화산업에 득이 될지 논의가 필요하다. 큰 그림을 봐야한다. 너무 작은 부분에 매달려 산업 성장 기회를 놓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었다.


장용석 CGV 부사장도 “관람객이 늘지 않으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효율화를 추구하는 게 기업의 생리”라며 “글로벌 시장서 수직통합이 대세기 때문에 우리가 차포를 떼서 나갈 수는 없다”고 밝혔었다.


영비법 개정을 찬성하는 쪽은 영비법 개정의 본질은 독과점을 막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고질적인 독과점 현상을 없애자는 취지인데 수직계열화가 무너지면 한국영화산업이 위기에 빠질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며 “영비법이 통과되면 그들에게는 사업적으로 손해를 입게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국영화계가 더 건강해질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현재 독과점 행위를 하고 있는 메이저 기업들이 사업 하나를 포기하더라도 한국영화산업이 위기에 빠질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수직계열화 붕괴는 영화산업 구조가 완전히 바뀌는 것이기에 좀 더 세심한 논의가 필요할 것 같기는 하다. 지배구조를 형성했던 비정상이 정상화 되는 데는 분명히 부작용도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스크린쿼터제 축소 이후 결과를 보더라도 성장위주의 정책은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 한국의 경제 상황을 높고 보더라도 그렇다. 지난 정부의 성장 위주 정책들을 몸소 겪었던 국민들은 성장위주,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아무리 써봐야 대다수 국민들에게 이득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렇게 해 봤는데 안 됐으니까 이번에는 저렇게 해보자는 대다수 국민들의 생각이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키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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