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韓 불법조업 비난 앞 “형평성 안맞아” “현실 직시해야” 여론 갈려

▲ 한국 원양어선 불법조업 중단을 요구하며 해상시위에 나선 그린피스.


[투데이코리아=오주한 기자] 우리나라가 한 때 국제사회로부터 ‘준(準) 해적국가’로 지정됐던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난 2013년 11월 유럽연합(EU)은 한국을 ‘예비 불법·비보고·비규제(IUU) 조업국’으로 지정했다. EU 집행위가 문제시한 것은 원양어선의 부실한 어선위치추적장치(VMS) 장착이었다. 한국 원양어선들이 추적을 피해 참치 등 불법조업에 나선다는 의혹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IUU 낙인이 찍힌, 즉 불법조업국으로 지정된 나라는 국제사회에서 ‘해적국가’로 규정된다.


이듬해 5월 EU는 아예 한국을 ‘예비’가 아닌 ‘정식’ 불법조업국으로 지정하겠다고 나섰다. 이 자리에서 EU는 정식 불법조업국 지정 검토 과정에서 한국의 서태평양 참치조업 문제를 본격제기했다.


우리 정부는 원양어선 불법조업 처벌 강도를 대폭 강화하겠다고 나섰으나 EU는 “한국 정부의 처벌의지, 정책 집행의지를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불법조업국 지정 시 EU로의 수산물, 수산가공품 수출은 완전히 끊기게 된다.


설상가상 행동에 나선 건 EU 뿐만이 아니었다. 앞서 2012년에는 미국 상무부가 한국을 콜롬비아, 에콰도로, 가나, 파나마, 탄자니아, 베네수엘라 등과 함께 예비 불법조업국으로 지정했다.


EU, 미국 모두 참치 등 한국산 참치 주요수입국이다. 작년에는 EU로의 횟감용 참치 수출량 증가로 전체 참치 수출액이 전년 대비 17.6% 증가한 5억7600만달러(약 6천270억원)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인천항만공사(IPA)가 대미(對美) 수출거점 역할을 할 수산물수출물류센터 조성 계획을 세울 정도로 미국은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수산물 수출공략 시장이다.


이 가운데 EU, 미국의 ‘예비 불법조업국’ 지정은 국제사회에서의 ‘망신살’을 넘어 국가경제까지 휘청일 수 있는 상황을 야기한 셈이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는 사태수습에 나섰다. 해양수산부 원양산업과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EU와 수시로 접촉했다. 손재학 당시 해수부 차관이 불법조업 강력처벌을 골자로 하는 새 원양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들고 EU로 향하는가 하면 심지어 ‘적대관계’였던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Greenpeace)에게도 몸을 숙였다. 부산 조업감시센터로 EU 관계자들을 초청해 인공위성을 동원한 불법조업 감시 시스템을 공개하기도 했다.


최완현 당시 해수부 국제원양정책관 표현대로 “하늘이 노랗게 보일 정도로” 냉담하던 EU 관계자들 태도가 점차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나라는 천신만고 끝에 2015년 4월 EU로부터 예비 불법조업국 지정해제 통보를 받고 기사회생했다.


▲ 공동어시장에 진열된 참다랑어.


집어장치 사용에 어업권 위조까지


국제사회로부터 ‘준(準) 해적국가’로 낙인 찍힐 정도의 우리나라 참치 원양업계 불법조업 실태는 어떠할까.


2012년 9월 그린피스는 한국 내 주요 참치업체인 동원, 사조, 오뚜기에 대한 참치잡이 지속가능성을 평가해 발표했다. 보고서에서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하는 그린(green) 등급을 받은 업체는 하나도 없었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동원은 집어장치 사용을 이유로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 오뚜기는 집어장치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증거는 내놓지 못했다. 사조는 자사 홈페이지에서 지속가능성 정책을 내놨지만 집어장치 사용을 중단하지는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집어장치는 인근 물고기를 치어·성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유인해 ‘죽음의 덫’으로 불릴 정도로 수산자원 감소에 적잖은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한국 내 참치캔 시장점유율 과반 이상을 거의 항상 유지하면서 미국 내 참치캔 시장점유율 1위의 스타키스트(StarKist)마저 인수한 동원이 그린피스의 집중타깃이 되고 있다. 2013년 6월 그린피스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동원그룹 본사 앞에서 ‘2013년 최악의 참치캔 상’ 수여식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집어장치 사용 외에 무허가 조업 의혹도 문제시되고 있다. 1995년에는 튀니지에서, 98년에는 키리바시에서 동원수산 소속 참치잡이 어선이 잇따라 현지 당국에 억류됐다. 그린피스 한국지부 보고서에 의하면 근래인 2010~2012년 사이에도 한국 원양어선에 의한 30여건의 불법조업 사례가 적발됐다. 이 중 22건은 우리나라와 어업협정조차 맺지 않은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등 아프리카 국가들과 중부 태평양의 가난한 섬나라인 키리바시 등 수역에서 발생했다.


심지어 라이베리아에서는 한국 어선에서 위조어업권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들은 현지 대행사로부터 어업권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그린피스 관계자는 “행정시스템이 미비한 아프리카 연안국 해역에서 불법조업을 한 뒤 ‘사기당했다’ 등으로 일관하고 합의금을 준 뒤 빠져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반박했다.


▲ 그린피스 선박과 충돌한 일본 불법조업 선박(오른쪽).


업계 “국제사회, 유독 韓에만 가혹”


업계도 할 말은 있다. 참치자원 급감 앞에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 일본이 각각 세계 2~3위 규모의 경제력을 앞세워 참치조업권 독점을 노리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열세인 우리로서는 뚜렷한 대응방안이 없어 때로는 ‘편법’도 어쩔 수 없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그린피스가 유독 한국에만 가혹하다는 주장도 있다. 동원 측 관계자는 “집어장치 조업이 가장 활발한 곳은 스페인 등 EU 선단이 활동하는 인도양과 대서양”이라며 NGO들 태도가 형평성을 잃었다고 반박했다. 사조 측도 국제사회가 중국, 일본 등은 묵인하고 한국만 타깃으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 업계 스케일을 넘어서는 일본, 중국 등 원양어선 불법조업 실태가 꾸준히 드러나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최근 아사히(朝日)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엉터리 보고’에 기반한 불법조업이 자행되고 있다. 2014년 공식 참치 출하량은 5만5000마리였지만 판매상 매입은 6만5000마리인 것으로, 2015년에는 출하량은 약 19만 마리이지만 매입량은 24만여 마리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일본은 불법조업국 대상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형평성 문제와는 별개로 무분별한 참치어획에 따른 자원감소에 대한 책임은 피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원양업계 생존만을 위해 우리나라가 ‘해적국가’로 국제사회에서 낙인찍혀 다른 업종들이 큰 피해를 입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이냐는 비판도 있다. ‘해적국가’에서 생산된 TV, 자동차 등 브랜드 가치를 지구촌이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 해양수산부가 입주한 정부세종청사.



정부 ‘불법조업 처벌강도 완화’ 움직임 앞 여론 대립


이 가운데 정부가 예비 불법어업국 지정 해제 2년8개월만에 원양산업발전법 완화를 추진하면서 불법조업 처벌 강도를 낮추려 한다는 관측이 제기돼 참치남획 반대 측의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 5일 그린피스 등에 따르면 해양수산부는 지난달 22일부터 사흘간 ‘원양산업발전법 전부개정 민·관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원양산업발전법 완화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동원, 사조 등 원양업체 관계자들이 다수 참여했다.


개정안에는 원양업체가 ‘중대 위반행위’를 하더라도 원양어업 허가권을 유지하도록 처벌수위를 낮춘 부분이 있다. ‘중대 위반행위’는 △유효한 면허 없이 조업 △국제수산기구가 요구하는 어획량 규정 비(非)준수 △조업금지 해양자원 조업 △허가되지 않은 기구를 사용한 조업 등이다.


원안은 이러한 행위 적발 시 징역 5년 이하의 형사처벌 또는 5억~10억원 가량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또 징역형 확정 시 원양어업 허가를 잃도록 했다. 하지만 개정안은 형사처벌 없이 벌금처분만 내리도록 바꿨다.


개정안은 내년 1월 임시국회에서 발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설령 국회를 통과하지 않더라도 한국 정부가 이같은 사실상의 ‘불법조업 방조’에 나섰다는 사실만으로 EU가 또다시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번에는 ‘예비’로 끝나지 않고 ‘정식’으로 명단에 오를 수 있다는 불안감도 나온다.


전세계적으로 연간 수십조원 규모의 참치시장이 형성되는 가운데 수출로 경제를 지탱하는 우리나라가 이를 외면할 수는 없다는 반론도 있다. 일본, 중국, 유럽 등 주요생산국들도 사실상 불법조업에 나서는 가운데 우리만 침묵하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유독 우리나라만 국제사회의 ‘타깃’이 되는 가운데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인 뒤 한발 물러서야 한다는 반박도 있다.


주요 생산국들과 무리하게 형평성을 맞추다가는 한국에게만 참치자원 감소 ‘책임’이 떠넘겨져 수산업뿐만 아니라 제조업 등 모든 분야에서 경제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국제사회에서 최소 인구 수억 명으로 파악되는 자연보호 여론의 비난의 화살이 한국에 집중될 경우 주요산업의 브랜드가치 하락은 상상 이상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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