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보다리 벤치 대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추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도이모이(쇄신)'로 불리는 베트남식 개혁·개방은 정치적으로 사회주의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시장을 개방하고 해외 자본을 유치해 시장경제 자본주의를 시행하는 정책이다. 북한이 베트남식 노선을 택한다는 것은 비핵화를 통해 미국과 관계 개선을 한 뒤, 미국으로부터 체제 보장을 받고 대외 개방을 통해 경제개발에 전념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따라 조만간 열릴 북미정상회담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고 남북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감도 더욱 고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남북 경협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풀려야 비로소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 마치 사업이 곧 착수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특히 정상회담 의제에서 배제됐던 경제협력이 예상을 뒤엎고 판문점 공동선언문에 전격 포함되면서 이같은 기대감이 극에 달했다.

남북정상회담의 주된 의제는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었다. 경협은 애초부터 의제에서 배제됐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놀랍게도 정상회담 뒤 발표한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 나가며,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해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북측의 적극성이 없었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정상회담 때 문 대통령이 “북쪽을 통해 백두산에 가보고 싶다”고 말하자, 김 위원장이 “솔직히 우리 교통이 불비해서 불편을 드릴 것 같다”고 말한 대목이 이를 반증해 주고 있다.

10·4 선언은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한 것으로 개성~신의주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개성공단 2단계 착공, 백두산 관광을 위한 서울~백두산 직항로 개설, 해주 지역과 주변 해역을 포괄하는 ‘서해경제특구’ 조성 등 24개 항목으로 되어 있다.

두 정상은 이번에 과거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지만 향후 남북 경협은 이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 될 것으로 예견된다. 문 대통령이 USB에 담아 회담 중 김 위원장에게 건넨 한반도 신경제 구상에는 10·4 선언을 좀 더 확장시킨 새로운 전략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구상은 통일부 ‘한반도 신경제지도’ 태스크 포스가 작년 여름부터 각계 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만든 것으로 한반도를 서해 축과 동해 축, 그리고 DMZ(비무장지대) 축으로 나눠 H자 모양으로 종합 개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청사진이다.

그동안의 남북 경협은 북한의 값싼 노동력과 자원을 활용한 임가공 사업이나 관광 교류에 초점이 맞춰진 남북한만의 경협 방식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안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과 국제기구의 투자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중국 동북지방과 러시아 연해주 까지 잇는 국제적인 경협이라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남북한이 협력해 한반도와 동북아에 새로운 경제권을 창출하자는 한 차원 높은 계획인 것이다.

예컨대 이 계획 중 하나인 서울~베이징 고속철 건설은 중국횡단철도로 아시아와 유럽을 잇겠다는 중국의 구상과 연계돼 있다. 따라서 이 계획은 남북간 군사.안보나 외교 변수에 따라 흔들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평화가 경협을 촉진하고 경협이 다시 평화 정착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로 되어있다. 정부는 북미정상회담 결과를 지켜본 뒤 주변국들과의 협의를 거쳐 내달 중 최종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앞으로 북미정상회담이 타결돼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고 대북 제재가 풀린다면 남북 경협이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다. 이는 ‘성장 동력 고갈’에 직면한 한국과 ‘경제 발전 우선’을 선택한 북한간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 남과 북 모두에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특히 우리에게는 지정학적 리스크 감소로 소비와 투자 심리가 되살아 나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모멘텀이 될 것이다. 또한 대외신인도 향상으로 주가와 국가브랜드 저평가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이다.
이젠 구체적인 실행 안을 도출해 내는 작업에 전념해야 한다. 특히 한반도의 통일을 염두에 두고 상생할 수 있는 마스터플랜이 마련돼야 한다. 한국의 기술과 자본력에 북한의 지하자원과 노동력이 합쳐져 분업적 의존관계를 다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반도 경제공동체가 형성될 수도 있을 것이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필자약력
△전)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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