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철 박사

요즈음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깜짝 소식이 시시각각으로 들려오던 중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모습까지 직접 눈으로 보게 되면서 조심스럽게 우리의 미래를 점쳐보게 된다. 지금의 우리 모습은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 이상이면서 5천만이상의 인구를 보유한 7개국 중의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성적표를 넘어서는 많은 우려는, 앞으로 이것이 언제까지 유지되고 또 얼마나 발전될 수 있을 것인가이다. 이에 대해 많은 노력들이 더해지고 있지만 그 누구도 뚜렷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남북간 경제교류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에 대해 이 암울함을 어느 정도 씻어 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높아지는 것 같다. 내수시장이 기반을 받쳐주는 가까운 중국과 일본을 바라보면서, 남북이 어우러진 7천 7백만명 한반도를 우리의 미래로 밝게 점쳐보고 싶은 것이리라.
남북평화시대의 식량문제
이런 와중에 한반도 농업의 미래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한 번 돌이켜봐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과거부터 논란이 되어왔던 한반도 식량 수급의 문제도 이중 하나이다. 최근에 북한의 농업생산이 많이 증가되어 식량부족 문제가 다소 누그러져 가고 있다고는 한다. 하지만, 당장 소비할 식량문제의 가닥이 잡히고 있는 것 일 뿐이다. 북한의 농업생산기반은 남한과 비교하여 경쟁력이 없을 뿐 아니라, 앞으로 북에서 축산물 수요가 늘어나면 곡물부족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과거부터 해외농업개발이 거론될 때면, 남북통일 이후의 식량 부족문제가 논점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한편 남측에서는 쌀 생산량의 3배가 넘는 곡물을 매년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좁은 국토 사정상 이를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은 앞으로도 해외에서 수입해야 한다. 북한 변수를 생각하면 앞으로 더욱 많은 수입이 필요할 수도 있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같은 농업 현실을 짊어지고 있는 나라를 찾아 볼 수 없도록 절박하다고 느꼈기에, 정부에서는 해외농업투자를 촉진하고 장려하기 위한 해외농업·산림자원개발협력법을 만들었고, 또 해외농업에 참여하는 기업들을 여러 형태로 지원하기 위한 정책적 도구들도 많이 개발하여 시행해 왔다.
그러나,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해외농업개발은 출발점 자체가 일반 시장경쟁원리에 입각하여 현실적으로 우리의 국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한계 위에 있다. 정부에서는 국민들의 먹거리를 일반 공산품과 같은 맥락에서, 민간기업이 해외에서 곡물을 생산하여 채산성을 맞추고, 또한 국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여 국내의 곡물 수입시스템에 맞추어 들여와야 한다는 논리로 시작되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곡물의 안정정인 수급기반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이기는 하지만, 해외농업개발에 참여하는 기업들의 적자를 보전하여 주면서 까지 해외농업을 지원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국가의 곡물수입시스템에서 벗어나는 특별한 혜택을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농산물 수출국 및 세계 곡물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4대 곡물 메이저들의 눈치도 있다.
해외농업의 바른 길
그러나 이것은 시작부터가 반칙이었다. 국가의 의무를 기업들에게 전가한 것 밖에 안된다. 곡물 생산은 원래가 수지를 맞추기가 어렵다. 곡물을 생산하기 위한 농업기반시설 초기투자 때문이다. 지구상의 어느 나라도 국민들이 스스로 농업용수를 해결하기 위한 댐과 수로를 건설하고, 농지를 개간하여 농로도 조성하고, 종자생산 등 생산기술을 개발하여 수지를 맞추는 농사를 지으라는 나라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해외농업개발 정책은 바로 이런 모습이다. 기업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서 채산 맞는 기업형 농사를 영위하여 국제경쟁력을 갖춘 가격으로 당당하게 국내시장에 들여오라는 것이다. 거기에 투자자금을 장기저리로 제공하는 대신, 국가가 반입명령을 발부하면 가격을 얼마를 쳐줄지는 모르지만 국내로 들여와야 한다.
해외에서 농지 몇백ha 또는 몇천ha에서 농사지어서 국제적인 메이저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한 요구였다고 생각된다. 모든 기반시설이 갖추어진 곳에서 농지를 임대하여 영농행위 만을 통해서 수익을 발생시킨다는 것은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나라가 그러한 대규모 농지를 외국기업에 제공할 것인가. 불과 몇해전 중국기업이 호주 최대농장을 인수하려 했으나, 호주정부가 반대하는 현장을 지켜 볼 수가 있었다. 민간부문이 상대적으로 투자효율이 엄청 낮은 농업기반시설에 투자하고, 이를 영농을 통해 수익을 회수한다는 것은 아예 성립이 되지 않는 전제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해외농업개발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은 민관협력사업(Public Private Partnership; PPP)이 답이라 확신한다. 정부가 나서서 상대국과의 농업협력의 기본 방향을 설정하고, 공공부문의 투자를 통해 농업기반을 건설한 뒤, 기업이 영농에 진출하여 투자자금을 회수하는 방법이다. 민간은 이러한 기반이 마련되면 영농 뿐 아니라, 농약, 비료, 종자 등의 농자재, 농기계, 태양광, 유통 그리고 가공 등의 수익성 있는 사업에 추가로 스스로 투자함으로써 그 이익을 상대국과 공유하여 지속성이 더욱 높은 안정적 사업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공공부문이나 민간부문이나 각각 단독으로는 해외농업개발을 통해 국가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로 이루어 낼 수가 없다. 두 부문이 협력하여야만 현명하게 현재의 과제를 서서히 풀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와는 사회적 시스템이 다른 일본의 해외농업개발을 지켜보면서, 그들과 같은 방법이 아닌, 보다 현명한 우리나라만의 접근방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더해진 것이다.
해외농업과 국제협력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의료, 교육 등 인도적 차원의 국제협력은 지구촌 가족으로서의 책무이다. OECD국가들은 기근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에게 고기를 주는 것보다는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지속성 있는 국제협력 방식이라 생각하여, 지금도 이러한 토대 위에서 국제협력사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고기를 잡는 낚시대를 사주고 잡는 방법도 알려 주었지만, 낚시대가 부러지면 이를 살 돈이 없어 또 다른 악순환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협력사업의 지속성을 위해 PPP사업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농업부문은 다르다. 농업부문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농업기반시설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이것은 민간부문의 영역을 벗어난다.
해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가 국제적 신망 위에 우리의 국력을 탄탄하게 유지해 나가면서 우리 국민들의 해외 진출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한 방법은 농업개발 분야의 협력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또한,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의 대규모 원조를 우리가 넘어설 수는 없다. 우리의 형편에서 가장 알뜰하게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협력도 농업협력일 것이다.
가장 안정성 있는 미래산업이 농업이라고 하고들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열정, 우리의 IT기술, 우리의 비즈니스 능력을 가지고 해외에서 농사가 아닌 농업을 영위하는 것은 우리나라와 상대국에 모두 유리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것이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지금 세대가 해야 할 책무인 것이다.
필자 약력
△전)농어촌공사 해외사업본부장
△㈜오이코스 경영기획본부장
△공학박사.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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