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수수께끼 대하는 청년들의 불안

▲ 영화 '버닝' 전종서 단독 포스터. (포스터=파인하우스필름 제공)

[투데이코리아=노철중 기자]17일 제71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로는 유일하게 경쟁부문에 진출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이 공개됐다. 영화를 본 영화제 현지에 모인 영화인들은 대체로 호평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티에리 프리모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대단하고 훌륭하며 강한 영화”라며 “순수한 미장센으로서 영화의 역할을 다하며 관객의 지적 능력을 기대하는 시적이고 미스터리한 영화”라고 찬사를 남겼다.


칸 공개에 앞서 지난 14일 한국에서 시사회가 진행됐다. 이보다 앞서 시사회 없이 이창동 감독, 유아인, 전종서, 스티븐연이 참석한 기자간담회가 열리기도 했다.


기자간담회에서 이창동 감독은 영화에 대해 “지금 젊은이들은 어쩌면 자기 부모 세대보다 못 살고 힘들어지는 최초의 시대를 살고 있지는 않나?”라고 전제한 뒤 “젊은이들이 바라볼 때 세상이 수수께끼처럼 보이지 않을까. 내재된 분도 있을 것 같고. 이 영화는 그걸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은 아니고 그들이 일상 속에서 미스터리를 마주하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영화는 소설가의 꿈을 키우며 유통 관련 알바를 하는 종수(유아인), 나래이터모델 일을 하는 해미(전종서) 그리고 놀면서 돈을 버는 벤(스티븐 연) 등 세 명이 주인공이다.


종수와 해미는 어릴적 한 동네에서 자랐지만 오랜만에 우연히 만나게 된다. 벤은 해미가 아프리카 여행을 갔다가 알게 된 인물로 이 세 명은 벤의 여유로운 일상 속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하지만 해미는 벤의 생활에 점점 잠식해 들어가는 듯 보이고 이를 바라보는 종수는 무기력함을 느끼며 그저 지켜볼 뿐이다.


영화는 종수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종수에게 해미와 벤은 일종의 수수께끼를 던진다. 해미의 말은 시적이고 관념과 감정에 사로잡혀있다. 벤은 종수와는 다른 외계에서 온 것처럼 보이고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취미를 가졌다.


영화는 종수가 주변 인물들이 내는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을 이창동 감독의 새로운 스타일로 묘사한다. 감독은 <초록물고기>(1997), <박하사탕>(2000), <오아시스>(2002), <밀양>(2007) 등에서 보여준 뛰어나고 치밀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잠시 접어 놓은 듯 하다.


현실 깊숙한 곳까지 세밀하게 묘사하던 카메라는 대신에 파주라는 황량하게 텅 빈 공간에 빛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마치 진공상태와도 같은 자연에 머문다. 그렇지만 이미지는 매우 강렬하다.


▲ 영화 속 이미지. (사진=파인하우수필름 제공)

남산타워가 바로 보이는 도심의 허름한 연립주택 단지 원룸은 해미의 집이다. 빛으로 가득하지만 따스함은 전혀 느낄 수 없는 공간이다. 북향이라서 햇빛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는 설정이지만 이는 해미의 현재 모습과 가장 닮은 은유이기도 하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 때문에 잠시 멍하게 되지만 영화의 과정을 되짚어보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어리둥절한 결말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 영화의 원작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다. 소설에서 영화로 가져온 것은 등장인물의 취미가 헛간을 태우는 것 밖에 없다. 사실 소설에서는 헛간이 불타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거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영화로 옮기기 위해서는 많은 부분들을 새로 채워 넣어야 했다.


이창동 감독은 “태극기, 새들, 나무, 남산타워 등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 등장하지만 그것들이 영화에 종속되지 않은 각 구성요소 자체가 자기 존재를 주장하기를 바랐다”면서 연출 의도를 밝혔다.


서두에서 밝힌 감독의 말과 위의 감독의 말은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영화의 종수와 해미가 현실에서 대부분의 청년들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리둥절’이나 ‘수수께끼’같은 단어는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할만하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수많은 수수께끼를 제시하면서 그것을 풀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는 듯 하다. 기자간담회에서 감독과 배우들은 공통적으로 이 영화를 청년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도 그들이 풀 수 있는 수수께끼는 많지 않다.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 속 수수께끼까지 풀어야 되냐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정해진 답을 찾기보다는 인식의 틀을 현실에서 예술의 차원으로 옮겨 현실을 마주하는 새로운 시도를 해 볼 필요는 있다.


영화 <버닝>은 이런 측면에서 예술적인 영화고 가장 영화다운 영화라는 생각이다.


▲ 지난 5월 4일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버닝' 기자간담회에서 해미 역을 맡은 배우 전종서.

▲ 지난 5월 4일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버닝' 기자간담회에서 종수 역을 맡은 배우 유아인.

▲ 지난 5월 4일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버닝' 기자간담회에서 벤 역을 맡은 배우 스티븐 연.

▲ 지난 5월 4일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버닝' 기자간담회에서 이창동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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