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기 부회장


출퇴근이나 점심 시간대에 길을 걷다 보면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일대가 전단지 배포가 가장 많은 곳이라고 하지만 이면도로나 골목길에도 전단지가 돈다. 경기가 나쁠수록 전단지가 더 많이 돈다고 하는데 최근 접하는 빈도가 잦아진 것 같다.


특히 직장인들이 점심 시간대에 몰리는 이면도로에서는 식당을 안내하는 전단지를 자주 받는다. 주로 연세 드신 분들이 푼돈이라도 벌기위해 전단지를 돌리지만 식당 주인이나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들 표정이나 열의를 보면 돈벌이로 나온 분들과 자영업자들(가족 포함)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손님을 한 사람이라도 더 끌기 위해 전단지를 돌리며 꼭 오라고 당부하는 말을 들으면 참 다급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오죽하면 길에 나서 호객하는 지경이 됐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워낙 장사는 안되고 인건비는 오르는 형편이니 뭔들 못할까 싶기도 하다. 작은 식당에 들어서면 힘들어진 자영업자들의 형편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가급적 종업원을 줄이고 부부 등 가족 중심으로 음식을 준비하면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허둥대는 모습이 안쓰럽다.


며칠 전 고향친구들과 함께 찾은 한 식당의 주인은 최저임금이 시급 7500원을 넘어선 마당에 무슨 수로 종업원을 쓸 수 있겠느냐며 부인과 함께 단 둘이 음식준비와 식탁정리, 청소, 식비계산까지 모두 맡아 말을 걸기도 미안할 지경이었다. 60대의 식당 주인은 바쁜 손님이 빠져나가고 숨을 돌릴 만해지자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을 외면하는 정책에 서운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청와대 참모들이 소득이 줄어든 자영업자들은 빼고 만든 이상한 통계를 대통령에게 디밀어 영세민들이 살기 좋아졌다는 허튼 소리를 하게 만들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영세한 자영업자들은 아예 통계에서도 빼버려 정부 대책에서 따돌림을 당한 기분이라고 했다.


최근 논란이 된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인 효과가 90%”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자영업자와 농민들에게 얼마나 실망을 주었을까 안타까움이 든다. 소득하위 20%(1분위) 가계의 명목소득이 지난해보다 8% 감소했다는 통계청의 1분기 가계동향조사가 나온 뒤 이를 개인별 근로소득으로 가공한 통계를 청와대비서실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근로소득이 없는 자영업자나 실직자, 농민들은 분석대상에서 누락되는 불이익을 받았다는 반발이 나올 만하다.


수출 대기업들은 호황이라고 하지만 내수는 여전히 위축돼 있고 자영업자들은 내수위축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일자리가 마땅치 않아 실직자나 퇴직자들은 무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자영업에 뛰어드는 형편이니 어려움은 더해진다. 이런 판국에 청와대 비서진이 판단을 그르치게 할 위험이 있는 자료를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국정에 반영하게 이르면 어떤 결과가 올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경기가 이미 침체국면의 초기단계에 들어서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이에 반론을 제기하면서도 최저임금상승으로 고통받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을 감안해 최저임금 인상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저임금인상이 분배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대통령 공약대로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올리면 일자리 32만개가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가 검증되지도 않은 주장을 근거로 정책실험에 나서면 국민, 특히 저소득층이 고통을 받는다. 청와대 비서진이 단편적으로 유리한 통계만 떼어내 무리한 정책을 관철시키려 한다면 부작용은 더욱 심해진다. 이번 파장을 계기로 비서진을 개편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제기된다. 그렇지 않아도 청와대 비서진이 너무 나댄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정책실험은 1년으로 충분하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대표이사겸 발행인
전)한국신문협회 이사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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