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논설주간


반대 여론이 아무리 거세다 해도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같은 천재지변에 가까운 상황이 아니고선 정권의 핵심 정책 간판을 내리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간판을 내리는 일이 아니더라도 정책의 궤도를 수정하거나 보완하기도 쉽지 않다.


정책 설계자의 자존심이 걸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권 반대세력(일부 언론 포함)의 집요한 공격에 백기를 드는 모양새를 보이기는 죽기보다 싫을 것이다.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용기가 필요하다. 국민을 위해서,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서 집권세력이 순간적으로 자존심을 버리는 결단이 필요할 때도 있다. 어쩌면 그런 선택이 자신들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주52시간 근로시간 근무제도와 관련, 정부가 6개월간 처벌을 유예하는 계도기간을 주기로 한 결정은 그런 면에서 대단한 용단이다. 높은 정권 인기도와 지방선거에서의 압승 등으로 자신감이 생긴 정부가 이처럼 유연성을 발휘한 것은 일단 환영할 일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시장과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를 토대로 정책의 방향이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정책당국으로선 당연한 처사이다. 유예기간 동안 문제점이나 생각지 못한 미비점을 꼼꼼히 찾아내 보완한다면 국민의 지지를 얻기가 쉬워진다.

며칠전 대통령 주재 규제개혁 관련 회의가 몇 시간 전에 연기된 일이 있다. 회의 준비사항이 미비함을 발견한 이낙연국무총리가 대통령에게 건의하여 회의를 미루고, 관계부처로 하여금 철저한 준비를 하도록 질책한 것은 국민들 보기에 신뢰가 가는 일이다.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 들어 추진하는 많은 정책들이 국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는 것은 사실이다. 재벌 대기업들의 갑질, 일감 몰아주기, 공기업들의 채용비리, 권력기관의 특수활동 예산 불법 사용 등에 관한 척결은 일반 국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하고도 남는다.

특히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뒤 문재인대통령이 ‘두려움을 느낀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현상을 정확히 파악한 것으로 느껴졌다. 정권 출범 초기라서 여러 가지 과거 적폐의 청산 등이 인기를 끌고, 민생 분야에서 다소 어려움이 있어도 전정권부터 이어져온 문제라는 구실을 댈 수 있었으나, 이제 집권 1년을 넘겼으니 그같은 혜택은 사라졌다. 조금만 잘못해도 바로 책임이 돌아온다.


만약 소득주도성장 정책 같은 문제점이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는 정책을 수정 보완 없이 밀어붙이다간 다음 총선의 민의가 어디로 뛸지 모른다는 사실을 적시해야 할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에 관해 비판 일변도로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는 측면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를 좀 더 세심하게 듣는다면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닌 것은 사실이다. 이를 애써 외면하고 통계를 왜곡하거나 대통령의 귀를 속여 망신시키는 참모들이 옆에 있다면 곤란하다.

J노믹스가 성공해야 국민이 행복해진다


최근 청와대 경제팀 일부를 교체한 것도 문책인지, 격려인지 국민들은 헷갈려 한다. 소득주도 정책을 수정하겠다는 건지 강화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에게주는 메시지가 애매모호해선 안된다.


1년간의 정책실험을 자화자찬만 하지 말고 진지하게 점검, 평가해서 손볼 것은 손을 보고 강화할 것은 강화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본다. 좌파라고 지칭 받는 정권 핵심 정책당국자와 적지 않은 국민들간의 이견이 있으면 공론의 장에서 의견을 수렴하는 장치가 작동되는 것이 옳다. 한쪽에선 좌파 운동권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반대편에선 골통 보수라고 무시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건전한 토론이 이뤄지지 않으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올 뿐이다.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정부내 반대 의견이 활발하게 개진되는 여건 조성이 시급하다. 장하성실장같은 실세의 위세에 눌려 할 말 못하고 넘어가는 분위기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 귀가 커서 경청하는 스타일의 총리를 활용하든지, 모기 목소리로 간헐적으로 의견을 내놓는 경제부총리에게 힘을 더 실어주든지 묘안을 찾아내길 바란다. J노믹스(문재인정부경제정책)가 성공해야 국민이 행복해진다. 무엇보다도 정책은 수시로 수정 보완해가며 시행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자신들이 내놓은 정책을 손질하는 것은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투데이코리아 논설주간>


필자약력
△전)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재정경제부장관 자문 금융발전심의위원
△현)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운영위원

키워드

#권순직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