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1967년 이후 50여 년 동안 묶여있던 주세법 개정이 표류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주세를 현행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주세 개편 안을 이달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소주 업계의 불만이 제기되자 오는 8월로 미뤘다. 이번 연기가 6개월 사이에 세 번째다. 하지만 존폐위기에 몰린 수제 맥주를 비롯한 국내 맥주업계의 어려움을 감안, 우선 맥주만 종량세로 전환하는 개편 안을 빠르면 내달 중 발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주류세는 종가세와 종량세로 대별된다. 종가세는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기 때문에 질 좋은 비싼 재료를 사용하거나 연구개발비를 많이 투입할수록 세금이 더 많아진다. 그러니 수제맥주, 위스키, 증류식 소주 같은 제조 원가가 상대적으로 비싼 술들은 세금이 많아져 불리하고 알코올을 희석해서 값싸게 만드는 희석식 소주나 생맥주 등 저가 맥주는 유리하다. 반면에 종량세는 기본적으로 양을 기준으로 하고, 부가적으로 알코올 도수에 따라 세금을 매기기 때문에 원가가 비싸거나 연구개발비가 많아도 세금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당연히 고가 술은 세금이 줄어들어 이익을 보게 되고 반대로 저가 주류는 불리하다.

종가세 체제에서는 필연적으로 싸구려 술을 만들 수밖에 없다. 출고가에 붙는 세금을 줄이기 위해 출고가를 낮추려다 보니 기업들은 한 푼이라도 값싼 재료를 찾아 나서고 연구개발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술 자체는 물론이고 용기와 포장비 등에 까지 세금이 붙으니 원천적으로 품질이 뛰어나고 용기와 포장이 멋있는 고급술이 나올 수 없다. 그러다 보니 국산 술은 저렴한 저급주이며 외국 술은 무조건 맛도 좋고 품격도 높은 고급술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주세를 종량세로 바꾸어야 한다는 얘기가 수십 년 전부터 제기돼 왔다. 하지만 국내 주류 시장에서는 기득권 업체의 카르텔과 오랜 기간 이런 상황에 익숙해진 행정 관료의 의도적인 방치, 주세를 통해 세금을 많이 거두어야 한다는 정부 방침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종가세가 철옹성처럼 굳건히 자리 잡아왔다. 자유 경쟁의 원칙에 위배되고 국익을 저해하는 데도 말이다. 그 덕분에 희석식 소주 업체들은 지금까지 장기간 한국의 주류 시장을 독점하면서 상당한 부를 축적해 온 반면에 주류업계 전체의 국제 경쟁력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해부터 '1만원에 4캔'으로 대표되는 수입맥주의 저가 공세가 강해지면서 주세법 개편 논의에 불이 붙었다. 국내 맥주업계는 과세표준이 다른 수입 맥주와의 역차별로 인해 국내 업계가 설 땅을 잃고 고사 직전에 처해있다면서 주세를 현행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전환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고 나섰다. 사실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 모두 주세 율은 72%로 동일하다. 하지만 과세 방식이 다르다. 국산 맥주는 제조원가에 판매관리비와 이윤 등이 포함된 공장 출고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지만 수입맥주는 판매관리비와 이윤 등이 빠진 수입 신고 가와 관세를 과세표준으로 삼는다. 특히 미국과 유럽연합(EU)과의 FTA(자유무역협정) 체결로 지난해부터 미국 산 맥주와 EU 맥주에 무관세가 적용되고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으로 국산맥주의 제조원가가 높아지면서 국산맥주가 완전히 가격경쟁력을 잃고 말았다.

이에 따라 2012년 3.9%에 불과했던 수입맥주의 시장 점유율이 작년에는 22.6%까지 올라갔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내년에 30%를 넘을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반면에 국내 맥주 출고량은 지난 2012년 180만 킬로리터(kl)에서 2017년에는 162만 kl로 오히려 크게 줄어들었다. 이로인해 국내 맥주 3사의 평균 공장 가동률 수준도 44.3%(2017년말 기준)로 낮아졌다. 국내에 3개 공장을 운영 중인 하이트진로는 마산공장을 소주 생산으로 방향을 틀었고 롯데는 2015년에 충주공장을 짓고도 아예 가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획재정부도 맥주의 종량세 전환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국산 술의 품질 향상을 위해 모든 주류에 대한 세금을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꾸는 방안 검토에 나섰다. 특히 주류산업은 양조뿐만 아니라 농작물, 무역 등이 연계된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따라서 종량세 전환 시 주류 산업 발전과 함께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국산 농산물을 활용한 주류의 수출 가능성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종량세 전환 시 7500개의 신규 일자리 창출과 6500억원의 생산유발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보고서도 있다.

하지만 종량세로 전환할 경우 서민 술인 소주와 생맥주 값 상승과 세수 감소가 우려되자 기재부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다. 정부의 고충도 이해가 가지만 국산 술을 고급화해야 한다는 대의를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수제 맥주업체 등 존폐 기로에 서 있는 업계의 어려움도 도외시해서는 안 되겠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5개 회원국 중 종량세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30개국으로 대다수다. 그나마 종가세를 채택하고 있는 5개국 증에서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3개국만 모든 주류에 종가세로 과세하고 있을 뿐 2개국은 특정 주류에만 종가세를 적용하고 있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필자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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