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혹은 한나라당 공세에 총선역풍 가능성

“대한민국 전체가 검은머리 외국인에게 놀아난 사건이다”
BBK 사건을 맡은 특별검사팀은 이같은 명쾌한 결론을 냈다. 일각에서는 특검이 이 대통령의 무관성을 입증하는 데 치중했다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이은 특검 수사로도 결론이 이같이 나왔으므로 사실상 면죄부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이 면죄부를 얻자 한나라당은 “무책임한 정치 공세를 대선정국에서 편 이들이 책임을 저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통합민주당측은 “검찰보다 못한 특검”이라고 반발했다.

문제는 한나라당-통합민주당간 설전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주도권이 검찰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검찰이 정치적 판단에 따라 왜곡된 수사결과를 내놓지 않더라도, 4월 9일로 바짝 다가온 총선이 문제다. 한 달여 남은 총선 마당에 검찰이 '기획입국 의혹'을 솔솔 피우면 그 파장은 고스란히 통합민주당 등 야당이 뒤집어 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검 “기획입국설,손도 못댔다”

당초 이른바 이명박 특검 추진을 놓고 한나라당이나 당시 대통합민주신당(현 통합민주당) 모두에게서 '이쯤에서 덮자'는 기류가 일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나라당으로서는 말할 것도 없고, 공격측인 현 통민당측 역시 지나친 공격을 퍼붓고 더욱이 특검이 기소를 했다가 무죄판단이 나오는 경우, 돌이킬 수 없

는 후폭풍을 맞을 것이 예견됐기 때문이다. 이미 대선에서도 진 마당에 특검을 해서 '정치적으로는' 얻을 바가 적고 위험 부담은 많다는 문제를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전반적인 정치 상황은 특검 추진을 강행하는 방향으로 흘렀고, 현재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이 벌어진 상태다. 통민당으로서는 부메랑처럼 돌아온 '당시 여권(현재는 야권으로 입장이 바뀐) 고위층에 의한 기획입국설' 때문에 힘겨워질 수 있다.

이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미 특검은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면죄부를 주면서, “기획입국설 부분은 시간 부족으로 손도 못 댔다”는 묘한 말을 남기고 물러갔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이번에는 검찰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 부분에 대해 수사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미 BBK로 인해 검찰에 쏟아졌던 각종 비난은 특검이 검찰의 수사결과를 대동소이 되짚고 일을 끝냄으로써 상쇄돼 버렸다. 이 상황에서 미진한 요소를 남겨놓고 특검이 떠났으니, 최고사정기관인 검찰로서는 기획입국설 부분을 부담없이 캘 수 있는 상황이 된 셈이다.

더욱이 검찰로서는 자신들이 피의자에 대해 회유와 협박을 일삼는 양 '메모 파동'까지 일으켰던 김경준에 대해 추호도 봐 줄 생각이 들 리 없다. 그렇다고 통합민주당으로 간판을 바꾼 구 대통합민주신당측의 검찰 규탄 분위기에 대해서도 고맙게 여기지 않는다. 검사 탄핵 추진이라는 사상 최대의 대치 분위기에 검찰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대로 입었다.

이런 상황에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이 기획입국 부분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것은 검찰이 BBK 문제를 BBK 소유관계만으로 끝낼 생각이 없음을 방증한다. 검찰은 27일, “김경준 씨가 미국 연방교도소에 수감됐을 당시 접견한 면회객들의 명부를 미국 법무성으로부터 넘겨 받았다”고 '간단한' 공식입장을 전했다. '여권 실세'니, '기획입국'이니 하는 표현이 일절 배제된 상태에서 수사의 실마리이자 단서를 얻었다는 표현 외에는 군더더기(혹은 트집거리)가 없는 표현이지만, 사람들은 여기서 현 통합민주당 연루 가능성에 대해 시끄러웠던 지난 대선 정국의 각종 언론보도를 되짚어낼 것이다.

◆검찰 마음대로 끝낼 수도 없다?

그렇다고 검찰의 고도의 판단에 의하여 이번 총선 정국이 지나갈 때까지 이 사건을 '호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4월 이후 수사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총선 정국에서 '기획입국 여부와 관련한 잡음이나 특정 정당이

억울하게 표를 잃는 등'의 문제 없이 정국이 평화로울 지도 모른다.그러나 이런 가능성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미 한나라당에서만도 수많은 사람이 기획입국 부문에 대해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박계동 의원의 경우 27일경 미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계동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26일 본지 기자들의 확인에 대해 “BBK 관련으로 미국에 간다”고 답했다. “교도소 접견자 조사차 방문”이라는 이야기다.같은 당 홍준표 의원 역시 미국에서 같이 옥살이를 하다가 우리 나라로 송환된 신 모 씨 관련 의혹을 조명한 정치인이다. 신 모 씨의 경우 미국까지 날아갈 필요도 없이 지방으로 조사를 하러 가라고 검찰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한나라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안상수 의원도 이 BBK 문제에 대해 “정치 공세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며 통민당 의원들을 벼르고 있는 태세다.

결론적으로 검찰이 어떤 판단으로 속도 조절을 하고자 해도, 한나라당이 원하는 바에 따라 검찰이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고 그러다 보면 결국 4월 총선을 앞두고 이 기획입국설에 대한 바람이 이리저리 정신없이 불게 될 공산이 크다.

◆전면적인 공개보다는 건드리는 선에서 '스톱'

하지만 이 바람은 결정적으로 지붕을 날려버릴 듯 거세게 4월초까지 한달여를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으로서는 현재 당내 공천 분쟁을 미처 다 매끄럽게 정리하지 못한 상태다. 3월 초 공천 확정과 이 과정에서 벌어질 친이-친박간 잡음을 막는 데에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

에 '여권 실세 개입설'을 조명하기 위해 지난 대선에서 BBK를 놓고 두 당이 치열하게 맞붙었을 때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욱이 과연 검찰이 쥐고 있는 자료에 어떤 내용이 포함되었는지를 모두 알 수 없는 상황에 섣불리 공세적 태도로 들이대는 것도 무리수다. 그 동안 이 문제를 놓고 여러 의원이 여러 경로와 정황으로 의혹을 제기했지만, 막상 정확한 실체가 있는지에 대해서 자신있게 구슬을 꿸 적임자를 선뜻 꼽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한나라당은 적당히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이번 검찰의 명단 입수 상황이 이어져 나가기를 가장 바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만 해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난국에 빠진 통민당의 총선 대책에는 상당한 출혈이 될 것이다. 대선 승리 후 지난 두 달여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나 한나라당 사정으로 까먹은 점수를 만회하고도 남을 만한 소재다. 이런 호재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서는 지난 두 달간 지지율 하락으로 까먹은 약 20석을 복구하고도 남음이 있다. BBK 기획입국의혹의 칼날에 찔리거나 코너에 몰려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결백입증을 위해 쓰게 될 통민당으로서는 아프디 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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