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무죄 무전유죄’ 비난 커진다

<사진 = 정몽구, 김승연, 최태원>

정부는 “광복 63주년 및 건국 60주년을 맞아 경제 살리기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화합과 동반의 시대'를 열기 위해 정치인, 경제인, 생계형 민생사범 등 34만여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특별사면ㆍ복권을 15일자로 단행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특별사면 대상에 정몽구 현대차 회장, 최태원 SK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등 형 확정이 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재벌총수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는 것에 대해 야당과 시민단체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며 강하게 반발해 특별사면을 둘러싼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여론 보다는 경제'

8.15 특사가 거론되기 시작될 때만 해도 청와대 안팎에서는 국민 여론 악화를 이유로 반대의견이 만만치 않았다. 가뜩이나 민심이반이 심각한데 재벌 총수들을 사면할 경우 여론악화가 우려된다며 경중을 가려야 한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사면이 임박한 11일 “경제도 좋지만 국민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만한 일을 할 수 있겠냐”며 사회적 물의를 빚은 일부 재벌 총수의 사면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여론보다는 경제를 선택했다. 국민여론 악화를 감수하고서라도 경제회복 의지를 보이겠다는 것이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광복절 특사'와 관련 “건국 60주년을 맞아 국민 대통합의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당면 최우선 국정과제인 경제살리기, 일자리 창출에 기업인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힘 모으는 계기 만들자는 뜻에서 단행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형확정이 얼마 안된 대기업 총수가 대거 사면 대상에 포함된 것과 관련 이명박 대통령은 “일각에서 비판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고심이 많았고, 나도 개인적으로는 부정적”이라면서도 “하지만 기업인들이 해외 활동에 불편을 겪고 투자 심리가 위축되는 점을 감안해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재계에 “이번 사면을 계기로 대기업들이 보다 공격적 경영에 나서 투자 늘리고 중소기업들과 고통 분담하는 자세로 상생 협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엇갈리는 여야반응

이번 사면에 대해서 한나라당은 “관용과 용서를 보여준 조치”라며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한나라당은 윤상현 대변인을 통해 “건국 60년을 맞이하여 반목과 갈등을 치유하고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자 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고뇌에 찬 큰 결단으로 받아들이며 환영한다”고 논평했다.
윤 대변인은 “특히 현 정부 출범 이전의 범법행위로 사면대상을 제한한 것은 향후 법질서 확립에 대한 대통령의 분명한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이해한다”면서 “비록 기업인들에 대한 사면에 부정적 인식이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지만, 사면은 용서와 관용의 결단”이라고 청와대를 보호했다.

그는 “이번 대통령의 기업인 사면은 그분들로 하여금 세계로 뛰어나가 국가경제를 살리는 일에 헌신하는 것으로 국민들께 보답해달라는 배려”라며 “이제 대기업들도 이런 사면의 정신을 이해하여 정직하고 투명한 경영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야권은 이번 경제인 사면조치를 “비리 경제인.정치인 사면은 법치주의 무시”하는 조치라며 강도높게 비난했다.
김유정 민주당 대변인은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지 않은 인사를 비롯해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인사, 사회적으로 커다란 물의를 일으킨 재벌 총수들이 포함된 사면은 국민적 반감만 불러 일으킬 뿐”이라며 “청와대는 이번 경제인의 대거 사면을 두고 국민통합과 경제살리기용 사면이라고 강변하지만, 이는 특정 계층을 위한 국민 분열용 사면이고 서민 기죽이기용 사면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이어 “대통령의 사면권은 사회적 합의와 국민적 공감을 바탕으로 이뤄질 때만 국민이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대변인도 “역대 정부가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사면권을 숱하게 남발해 왔지만, 결과적으로 특별사면으로 경제가 활성화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라며 “이번에는 반사회적인 폭력행위자까지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사면을 했는데, 이런 사면권행사에 누가 공감하고 납득을 하겠는가”라고 질타했다.
박 대변인은 이어 “부정부패 사범, 반인륜 범죄 사범, 형기의 3분의 1을 마치지 않은 자 등에 대해서는 사면권이 원천적으로 배제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제인 사면 그 실익

과거 김영삼 대통령은 9차례 사면을 단행했고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 역시 임기 중 8차례 나 사면을 단행했다. 그때마다 나왔던 명분은 역시 '경제살리기'라는 이유로 경제인에 대한 사면이 대거 포함됐다.
하지만 사면 이후 뚜렷한 지수 개선이나 경기활성화는 일어나지 않았고 '용서와 관용'의 취지인 사면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업인들의 범죄는 과거보다 점차 증가되는 있다.
8.15 사면에 포함된천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과 1조5천억원대 분식회계로 구속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건 등이 경제계 비리의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방만경영과 과도한 차입으로 기업을 부도내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시켜 '경제망치기'에 일조한 과거 기업인들에 대한 사면도 이뤄져 '경제 살리기' 사면의 취지를 무색케 했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나승렬 전 거평그룹 회장, 장치혁 전 고합그룹 회장, 엄상호 전 건영그룹 회장 등이 그 예다.
김경환 법무부장관은 “경제인들에게 형사처벌에 따른 법적 제약을 해소해 줌으로써 일자리 창출 등 경제 살리기에 매진할 수 있는 여건 마련해주고자 한다”며 사면의 취지를 밝혔지만 이번 기업인 사면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국민 여론악화를 상쇄할 만큼 뚜렷한 경제효과를 보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전웅건 기자 k2prm@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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