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길 위에서 시 쓰기

각축

어미와 새끼 염소 세 마리가 장날 나왔습니다.
따로 따로 팔려갈지도 모를 일이지요. 젖을 뗀 것 같은 어미는 말뚝에 묶여 있고
새까맣게 어린 새끼들은 아직 어미 반경 안에서만 놉니다.
2월, 상사화 잎싹만한 뿔을 맞대며 톡, 탁,
골 때리며 풀 리그로
끊임없는 티격태격 입니다. 저러면 참, 나중 나중에서라도 서로 잘 알아볼 수 있겠네요,
지금, 세밀하고도 야무진 각인 중에 있습니다.

<2006 미당문학상 최종심 후보작>


지난달 22일 '미당문학상 2006' 수상집이 나왔다. 여기엔 미당문학상 최종심 후보에 3번이나 적을 뒀지만 아직 수상은 뒤로 남겨두고 있는 문인수(60) 시인의 시가 포함돼 있다.환갑에 이른 그는 시 쓰기 만큼은 한창 물오른 '청년'이다. 발표 편수도 부쩍 늘어 맛깔나게 잘 익은 시가 막 쏟아지는 격.

문 시인은 지난 85년 마흔의 나이에 '심상'의 신인문학상으로 늦깎이 등단을 했다. 그간 그는 '늪이 늪에 젖듯이(1986)''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1990)''뿔(1992)''홰치는 산(1999)''동강의 높은 새(2000)''쉬(2006)!'를 포함해 제6시집까지 선보였다. 바깥나들이에 나선 그의 시들은 '14회 대구문학상(1996)''11회 김달진문학상(2000)''3회 노작문학상(2003)' 등의 숱한 칭찬과 격려를 안고 돌아왔다. 오는 12월 시와시학사에서 주최하는 '2006 시와시학상' 수상도 이미 확정됐다. 지난 11일 본지와의 인터뷰를 가진 문 시인은 이같은 소식들에도 “인간적인 자존심은 강하나 작품에 대한 자부심은 없다”며 연륜이 빚어낸 겸양의 미덕을 지켰다.

길 위에서의 시 쓰기

시인 문인수, 그가 건넨 시에는 길 위에서 머물던 바람의 체취가 짙다. 그는 집보단 늘 길 위를 택해왔고, 시들도 그런 그를 꼭 빼닮았다. 올해 그를 미당문학상 최종심까지 올려준 작품 '각축' 또한 길 위에서 만난 시다. 경북 성주가 고향인 시인은 대구에 산다. 집 근처에 동대구역도 있고 걸어서 15분 남짓한 거리에 대구 근교 시골로 가는 버스정류장도 있어 바람 같은 그에게는 안성맞춤 풍수다. 아무 차나 잡아타고 면소재지나 읍으로 나가서 적게는 두어 시간에서 하루 종일 머물게 되고, 그러다 보면 '각축'같은 시와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기도 하는 것이다. 대구 근교의 청도 각북장에 나온 염소 모자가 문 시인의 눈에 띄었다. 염소 새끼들이 뿔을 맞대며 '각축'하고 있는 모습이, 곧 헤어질 서로를 '각인'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

문 시인은 특히 강원도 정선 땅을 '신(神)' 삼아 그리워한다. 이를 두고 그는 “성주가 내 몸과 영혼의 고향이라면 정선은 우리네 한의 발원지이며 내 전생의 고향일 것 같다”고 표현했다. 그에게 시란 '자기용서'인 즉, “나의 시는 나 자신으로부터 죄의 사함을 받은 뒤의 또 다른 내 모습”이다. 그래서 그의 시 쓰기는 “스스로의 결핍을 오래 들여다보는 복받치는 과정”이다. 문 시인은 그 결핍의 덩어리가 길 위에서 잘 보였고 정선에서 가장 잘 보였다며, 그 곳에서 자신의 헌 데를 천천히 모두 용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같은 고백은 그의 시에 절절히 녹아 있다.

“흐린 봄날 정선간다./ 처음 길이어서 길이 어둡다.// 노룻재 싸릿재 쇄재 넘으며/ 굽이굽이 막힐 듯 막힐 것 같은/ 길 / 끝에/ 길이 나와서 또 길을 땡긴다// 내 마음 속으로 가는가// 뒤돌아 보면 검게 닫히는 산, 첩, 첩,// 비가 올라나 눈이 오겠다.”('정선가는 길' 전문. 1992)

“문 밖은 비, 산엔 눈// 정선 산다.// 봄은 늘 온 적 없이 갔으나// 눈썹 아래, 위, 자꾸 빨랫줄 걸리는// 정선// 산엔 눈, 문 밖은 비”('정선 산다' 전문. 2000)

문 시인은 올려다 봤자 '하늘 세 뼘' 밖에 뵈지 않는 정선 풍광에 갇히러 간다고 했다. 그러면 제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고.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문 시인은 시골 특유의 토속적 소재 혹은 정감이 담긴 시들을 주로 다뤄왔다. 미당문학상이 줄곧 그를 주목해 온 데에는 이같은 미당과의 정서 공유도 한몫하리라. 정선 혹은 그 어디 길 위에 있어도 결국 문 시인은 자신의 생각의 본향인 '마음'으로 돌아왔으며, '몸과 영혼의 고향'인 성주에 마음 끝이 닿았다. 그가 쓴 시는 그런 마음들이 고스란히 담긴 결정체일 수밖에 없다.

문 시인은 도심의 아파트라든지 가로등 혹은 공중전화부스 등을 소재로 시를 시작해도 쓰다보면 결국 고향으로 가게 돼 있다고 했다. 이동전화단말기가 발달하면서 천덕꾸러기가 된 거리의 공중전화부스에 관해 시를 쓰던 참이었는데, 텅 비어 있어 시골 창고로나 쓰는 '헛간' 같더란다. 그러다보니 '시래기를 걸어야 한다'라는 시상에까지 이르게 되더라는 것. 그는 스스로 “참 촌놈이어서 어쩔 수 없구나” 싶었다고 우스갯소리를 건넸다. 제2시집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가 지난 8월 문학의 전당에서 재발간 됐는데, 문 시인은 고향으로의 회귀 의식이 이 시집 또한 관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 시인 특유의 툭, 툭 끊긴 행간에 들앉은 '긴 여운'의 문체도 그의 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다. 드물게, 아니 유례없이 시마다 쉼표나 마침표 사용이 잦다. 사실 호흡 문제 때문에 시 쓰기에서는 꺼려지기도 하며 매우 조심스럽게 쓰이는 것들이, 그의 시 안에서는 원래 그 자리에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마냥 천연덕스러울 만치 잘 어울린다. 문 시인은 표면에 드러난 문자 이상으로 낱말과 낱말 그 행간에 숨어 들앉은 의미를 주목한다. 그의 말을 빌자면 “도끼질로 신나무를 팬 것처럼 툭, 끊긴 호흡의 이 쪽 저 쪽 자리에 충분한 말을 숨겨 놓는 것”이다. 물론 독자들이 눈치 챌 수 있도록 빌미를 제공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독자에 대한 행패고 폭력이라고 문 시인은 덧붙였다.

이같은 문 시인의 문체는 역시 서사의 문제와 깊게 연관돼 있다. 최근 그의 시는 이야기 즉, 서사가 강하다. 그 또한 이에 공감하며 “서사를 다루지만 소설처럼 다 말할 수 없으니 다 말하지 않고도 더 크게 말할 수 있는 행간, 거기에 의미를 갖다 붓는다”고 서사와 시 호흡의 연관성을 짚었다. 굳이 문 시인의 이같은 설명이 없어도 시를 찬찬히 읽다 보면, 머물러 가는 쉼표나 마침표의 힘이 뒤이은 시어를 외려 더 강하게 끌어당김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굽이굽이 첩첩산중 정선의 길이 그의 깊은 내면에 잇닿아 시를 끌어내듯이.

어느덧 문 시인은 물들이지 않은 은회색 머리칼에도 바람이 머물러 가는, 바람과 친구삼은, 바람결 풍문의 시비에도 밝아진 이순(耳順)의 문턱에 접어들었다. 한층 깊어진 시문(詩門)이 여전한 길 위 바람을 몰고 온 그를 반가이 맞는다. 문 시인에게 한 발 한 발 다가올 시경(詩境)이 진경산수화 못지않게 아름다워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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