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미플루 최대 30%까지 비축 관건 "근본적 대책 시급"

조류 인플루엔자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전문가들로 부터 나왔다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조만간 전 세계적인 대유행 전염병을 유발할 것이며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전문가들로부터 나왔다.

27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보건복지위 소속 열린우리당 양승조 의원 주최로 '신종인플루엔자 대비'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공청회에는 김우주(고려대), 이환종(서울대 의대), 손명세(세계법의학회 부의장) 교수를 비롯하여, 권준욱 질병관리본부 전염병관리팀장, 남희섭 변리사(한미 FTA 저지 국민운동본부 지재권분야 공동대표), 이진한 동아일보 의학전문기자가 참여했다. 이번 공청회는 최근 전북 익산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견된 직후 마련된 자리여서 시사 하는 바가 크다.

김우주 교수는 "지난 20세기에 3번의 대유행 전염병이 있었다. 이를 역학 통계조사한 결과 마지막 대유행인 1968년 홍콩 인플루엔자 대유행 이후 38년이 경과한 현재 대유행이 임박한 것으로 추측 된다"고 경고했다.

지난 1918년에 일어난 '스페인 인플루엔자'(H1N1) 대유행은 1차 세계대전과 겹쳐 4~5천만 명의 희생자를 초래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재앙으로 기록됐다. 이후 1957년'아시아 인플루엔자'(H2N2)와 1968년의 '홍콩 인플루엔자'(H3N2)가 20세기의 3대 대유행 전염병으로 기록되고 있다.

김교수에 따르면 1997년 홍콩에서 처음 발견된 H5N1 조류인플루엔자는 사람도 이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첫 사례로서 장차 대유행 전염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대유행을 대비해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조처가 취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방역을 비롯한 질병 관리체계는 그 수준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권준욱 질병관리본부 팀장은 "지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겪으며 질병관리체계의 전반적인 대응 수준이 높아졌다"며 "지난 8월에는 (질병)관리본부에서 종합 대책을 이미 마련해 대비해둔 상태"라고 말했다.

실제 이번 익산에서 발생한 AI의 경우 초기 방역과 살처분 등 '신속 대응'으로 큰 불길은 잡을 수 있었다는 게 대략적인 평가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람에게로 피해가 전해지지 않은 터라 향후 대유행 전염병이 일어날 경우에 대비한 병상과 의료진, 치료약 등의 준비가 충분한 지에 대해선 여전히 '불안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조류인플루엔자의 대응 논의의 핵심은 조류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비축량이다. 세계보건기구(WTO)는 전체 인구 20~30%의 조류 인플루엔자 치료제를 비축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2007년까지 7천500만 명분의 비축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 인구대비 20%의 비축을 하고 있는 일본 역시 2008년까지 2500만명분의 타미플루와 75만 명분의 리겐자(흡입제)를 보유할 계획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현재 전체 인구의 2%, 선진국의 10분의 1도 안되는 타미플루만을 보유하고 있다. 권팀장은 "현재 우리나라는 98만 명분의 타미플루를 비축하고 있지만 이미 그중 일부는 전북 익산 조류인플루엔자로 소모했다"면서 "연말이면 1000만 명분 정도의 타미플루를 보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1000만 명분의 타미플루를 비축하려면 약 2천 500억 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된다.

얼마 전 국내 제약사인 유한양행은 타미플루 제조사인 스위스계 다국적 제약사 '로슈'와 계약을 체결해 타미플루의 생산 공정에 참여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도 목표량을 달성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타미플루의 대량 보유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보다 이것의 원료 식물인 '아니스'의 공정과정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로슈는 3월에서 5월 사이에 수확한 아니스 열매를 정제한 뒤 10단계의 공정을 거쳐 타미플루를 생산한다. 김교수는 "(타미플루 원료) 자원이 한정돼 있고 공정 과정에서 폭발할 위험 등도 있어 (타미플루를) 만들기가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보다 타미플루를 둘러싼 '특허권' 문제가 국내 생산을 크게 발목 잡고 있다. 남희섭 변리사는 "국내 특허법 106조가 외국의 입법례에 비해 지나치게 정부 사용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특허법은 정부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특별히 필요한 경우 '강제실시'가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제 106조에 따라 정부의 특허사용을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시'일 경우에만 가능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미국은 반면 '특허된 발명이 상당한 조건으로 사용되지 않거나 공중의 건강이나 안전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연방정부가 개입해 강제실시를 행할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양승조 의원은 이날 "관련 법안의 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타미플루 비축 외에도 조류독감 예방을 위해 '국제적 공조'를 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었다. 손명세 교수는 "현재 이스라엘, 요르단, 팔레스타인은 서로 적대국임에도 조류독감에 대한 공동대처를 위한 협정까지 맺었다"며 "우리나라도 중국, 북한 등 인접한 나라들과의 공조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화로 인해 사람들의 국경이동이 자유로워지고 해외여행 인구도 급증하고 있는 현상을 볼 때 주변국과의 공조는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다.

한편 의료인들의 윤리문제도 함께 지적됐다. 막상 대유행 전염병이 발병하면 가장 큰 위험에 빠지는 사람들이 바로 방역원,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들이다. 이들은 자칫 바이러스에 전염될 것을 우려해 치료를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의료인들에게 법적으로 치료를 강제하는 것을 쉽지 않다.

다만 어느 정도 유인책은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중론이다. 권팀장은 "의료인들에게 타미플루를 우선 공급하는 방안" 등을 거론했다.

지난해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사망한 사람의 숫자는 1069명. 그러나 이후 또 한번 미 대륙을 급습했던 '리타'의 경우 사망자는 단 1명뿐이었다. 왜 이런 차이가 존재하는 걸까? 카트리나 당시 부시 행정부의 인사들은 태연하게 휴가를 즐기는 등 여유를 부렸다.

반면 리타 상륙을 앞두고는 '연방정부 총책임자'라는 직책까지 신설하며 정부와 국민이 하나가 돼 재해에 맞섰다. '철저한 대비'만이 재앙을 막을 수 있다는 교훈을 이번 조류 인플루엔자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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