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자신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지적돼온 '다변(多辯)'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노 대통령이 지난 12월 28일 정책기획위원회 위원들과 가진 오찬에서 민주주의의 향후 과제 중 하나로 '소통'에 대한 견해를 얘기하면서 "대통령이 말이 많다"는 비판에 반론을 편 것이다.

청와대는 2일 청와대 브리핑에 올린 '소비자주권의 시대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노 대통령의 오찬 발언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이 글에서 노 대통령은 "말을 줄이라"는 언론의 충고에 대해 "독재자는 힘으로 통치하고 민주주의 지도자는 말로써 정치를 한다"고 반박했다.

노 대통령은 말을 잘해 성공한 지도자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꼽으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말 못하는 지도자는 절대로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클린턴에 대해 "말의 달인, 말의 천재 아니냐"며 "말만 잘한 게 아니라 그런 말을 할 만한 사고력을 가지고 말을 한 것이며, 그 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지적 능력과 사고력과 철학의 세계가 있으니까 그의 말이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노 대통령은 자신에 대해서도 "말로써 토론하고 그렇게 해서 성장하고, 말로써 선거하는 것"이라면서 "내가 선거할 때 말 못하게 했으면 대통령이 어떻게 되었겠느냐"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다시 '말을 줄이라'는 비판을 "대통령에 당선된 그날 입을 딱 다물어버리느냐.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일갈한 뒤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수단 가운데 중요한 것이 인사권과 말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 가운데 말하지 않는 지도자가 어디 있는가"라며 블레어가 처한 영국의 정치환경을 소개했다.

영국 총리가 매주 목요일 오후 2시에 국회의사당에 나와 야당 지도자와 토론하면서 "치고 받고, 반박하고 비꼬는 말도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그 속에서 정치가 이루어지는 것인데, 날더러 말을 줄이라고 한다. 합당한 요구가 아니다"면서 "환경이 이렇다 보니 부득이 저도 온몸으로 소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온몸으로 소통을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오찬 이틀전인 26일 국무회의에서 "앞으로는 하나하나 해명하고 대응할 생각이다. 할 일도 열심히 하고 할 말도 다 할 생각"이라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노 대통령 스스로 '다변'을 인사권과 함께 권력을 운용하는 대통령의 주요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공언했다는 점에서 임기말 예상되는 정치권의 공세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이날 오찬에서 열린우리당 노선갈등의 씨앗이 된 기간당원 문제에 대해 "우리당이 가장 고통스러운 실험을 하고 있다"며 상황인식과 해법을 밝히는 등 선명한 자기 목소리를 냈다.

노 대통령은 기간당원제도에 대해 "당원협의회가 그(당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권한을 갖는 순간 경우에 따라 스스로 권력이 되어버리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기본 인자들이 상향식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민주적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그래서 지금 정치는 많은 견제와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간당원제가 상징하는 상향식 민주주의는 내부적 역량이 우선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는 취지다. 이는 노 대통령이 기간당원제에 대해 '바꿀 수 없다'는 식의 원칙론을 고수하는 것처럼 비춰져왔다는 점에서 인식변화로 해석될 수 있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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