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광고사진가협회(KAPA) 부산지부고문 황성준씨(황스튜디오 대표)

[부산= 박진영 수습기자] 부산사진예술계는 1968년 서울에서 온 한 젊은 사진작가에 의해 시작됐다.

현재 한국광고사진가협회(KAPA) 부산지부 고문이자 '황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황성준(75)대표가 주인공. 부산 대신동 동신초등학교 정문 앞에 위치한 그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사진과 함께한 긴 세월을 말해주듯 스튜디오 안에는 손 때 묻은 낡은 장비부터 최신 디지털 카메라까지 다양한 기구들로 가득했다.

황 작가와 사진의 오랜 인연, 그 시작이 궁금했다.
"서울 경신고등학교를 다닐 적에 사진보도부 활동을 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교장 선생님이 총천연색 사진이라는 것이 일본에서 들어왔다며 전교 학생들에게 보여주었죠. 그때 난생 처음 본 총천연색 사진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버렸죠. 그 후 본격적으로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건 형님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의 형은 작년에 작고한 '월간사진'의 초창기 발행인 고(故) 황성옥 씨다. 일본 동경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수재로 사진에 대한 열정 또한 남달랐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한글로 된 사진 전문 서적이 없었기 때문에 외국어 서적을 읽으며 독학을 했는데 형님께서 번역을 많이 도와주었죠. 첫 카메라도 형님이 사주었어요."

황 작가는 '월간사진'에서 사진 기자 활동도 수년간 했다며 빛바랜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출입증을 꺼내 보였다. 출입증에 붙어있는 흑백 증명사진. 그 곳엔 오로지 사진을 향한 열정과 사랑으로 가득 찬 젊은 날의 그가 있었다.

그의 주된 경력은 광고 사진이다. 45년이라는 긴 세월. 그가 광고 사진을 시작한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당시 부산에는 국제상사 같은 큰 기업들이 많았는데 수출을 하려면 외국 바이어에게 보여 줄 컬러 사진이 필요했어요. 그때 부산에서 컬러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사람이 흔치 않았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광고 사진을 시작하게 됐어요. 광고 사진 촬영의 재미는 아직 출고되지 않은 제품을 누구보다 먼저 볼 수 있다는 것이죠."

인터뷰 도중 황 작가는 문득 40년 이상 된 오래된 흑백 사진을 보여주며 추억에 잠긴 듯 보였다. 잠시 과거를 추억하던 그가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1960대부터 20년 가까이 신문사 전용기를 타고 전국을 돌며 항공사진을 촬영했습니다. 당시 활발했던 건설 산업으로 인해 육지 모양이 자주 변해서 항공사진이 중요했지요. 회사의 전경 사진에도 쓰였고요. 그 때는 비행기 문을 열고 로프 하나에 몸을 의지하고 찍었는데 내가 아니면 아무도 찍을 수 없다는 생각에 두려움도 잊었던 것 같아요"

비행기에 걸린 줄 한 가닥에 목숨을 걸고 사진을 찍었다는 황작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장면이다.

"그 때는 사진만큼 재밌는 것이 없었습니다. 힘든 순간 속에서도 내일이면 다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았어요. 그 열정 덕분에 저의 인생에는 후회의 순간이 없습니다"

진지한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미소를 띤 황 작가는 오래된 필름 한 장을 보여줬다. 수백 대의 택시가 도로에 밀집해 있는 사진이었다.

"김현옥 부산시장 재임 시 동래산업도로가 개통됐는데, 그 때 시장님이 개통을 기념한다고 부산시에 있는 택시들을 총 동원해서 사진을 찍게 했죠. 젊은 사람들이 이 사진을 보면 합성한 사진이라고 할지도 모르겠군요"

사진 합성. 말이 나온 김에 사진예술 역사의 산 증인인 황 작가에게 '사진 합성'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디지털 카메라와 영상 소프트웨어의 발전으로 작업의 속도가 빨라졌을 뿐 작업 과정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요. 사실 촬영은 카메라뿐만 아니라 조명도 중요하거든요. 다만 필름이 사라져 가는 것이 안타깝죠. 필름 사진의 정교함은 디지털 사진보다 훨씬 뛰어나서 아직도 그림 같은 예술 작품은 필름으로 찍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디지털로 바꿔야 할 겁니다. 더 이상 필름을 생산하는 곳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의 말끝이 흐려졌다.

"흑백 사진 또한 마찬가지죠. 앞으로는 박물관에서나 흑백 사진을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흑백 사진만큼 꾸밈없고 섬세한 사진은 없습니다. 흑과 백의 대비만으로도 천연색 사진보다 더 다양하게 표현 할 수 있는 거죠. 빛에 따라서 색 조절이 무한대로 가능한데 흑백 사진이야 말로 '빛의 예술' 입니다. 필름 사진이나 흑백 사진은 무엇보다 작가의 열정이 중요합니다. 카메라 기술의 발전으로 사진을 더 편리하게 찍을 수 있을지 몰라도 모름지기 사진작가의 열정이 담겨 있어야만 깊이 있는 사진이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앞으로도 영원히 사진만 찍고 싶다고 말하는 황 작가. 그의 세월과 함께한 수많은 작품과 장비들을 보며 흥미롭게 이어온 인터뷰의 마지막을 위해 물었다. 사진의 숙명은 무엇일까.

"사진은 꾸밈이 없어야 한다는 거죠.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합니다. 사진을 최대한 돋보이게 할 필요도 있지만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것만이 사진의 존재 이유고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컬러 사진 한 장 인화 할 수 없었던 부산의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도 후배 양성에 힘쓰며 작은 카메라 렌즈에 부산의 역사를 담아온 황성준 작가. "내일이면 새로운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아간다"는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내일'을 맞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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