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매표소서 관람료 걷어 등산객과 마찰

[투데이코리아] 지난 1970년 도입된 국립공원 입장료가 새해 1월 1일자로 전격 폐지됐다. 이날 산행에 나선 이들은 '공짜'로 산세를 누려 한결 발걸음이 가벼웠을 것이다. 일부 매표소에는 '시인마을'도 조성돼 국립공원의 새출발 새단장을 실감케 했다.

그런데 이 기쁨도 잠시 다음날인 2일부터 전국 국립공원 매표소 여기저기서 불만의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조계종 측에서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와는 별도로 문화재관람료를 기존 매표소에서 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절에도 안 갈 건데 왜 문화재 관람료를 국립공원 입구에서 내야 하느냐”는 원성들이 쏟아졌고, 발이 묶인 일부 등산객들은 언성을 높이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등의 말썽을 빚었다.

이 논란의 핵을 쥐고 있는 환경부, 조계종, 문화재청은 지난 17일 회동에서도 아직 갈등의 실마리를 풀지 못한 상태다.

◇ “문화재관람료 어디 썼나”

이번 사태를 둘러 싼 논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됐는데 문화재 관람료를 따로 내야 하느냐는 방문객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이에 대해 조계종 측은 “지난 1970년 도입된 국립공원 입장료에 앞선 1962년부터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해왔다”는 역사성을 근거로 징수의 정당성을 내세우고 있다. 조계종은 방문자들의 편의를 위해 국립공원입장료와 문화재관람료를 통합해 받아왔는데, 국립공원입장료가 폐지됐으므로 자연히 문화재관람료는 별도로 징수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조계종 측은 또 “조계종의 사찰 중 문화재를 보유한 사찰이 507곳임에도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고 있는 사찰은 13.2%인 67개 사찰에 불과하다”면서 “관람료를 받는 사찰 67곳의 연간 문화재 유지 관리 비용은 807억원이나 관람료 충당 부분은 320억원” 밖에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문화연대는 지난 5일 성명을 통해 “현재 문화재보호법에 근거해 정부와 지자체에서 전국의 사찰에 지원되는 예산만도 1년에 2,000억원이 넘는다. 이밖에도 전통사찰보존법에 의한 예산지원, 행정자치부의 교부세나 템플스테이 지원 등이 사찰에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조계종의 호소에 맞대응했다.

문화연대는 또 “이런 상황에서 1년에 대략 500억원으로 추산되는 문화재관람료의 규모와 사용처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징수되고 사찰에 의해 운용되고 있다”면서 “불투명한 문화재관람료를 일방적으로 책정하고 징수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꼬집어 문화재관람료의 투명성을 도마에 올렸다.

이에 대해 김현각 정불원 원장은 “문화재관람료에 한해 사용 내역을 공개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으나 모든 내역을 공개하는 것은 다른 종교 단체와의 형평성과 함께 따져보아야 할 것”이라고 맞받아 쳤다.

◇ "매표소 위치로 밀고 당기기?”

특히 최근 논란의 화두로 떠오른 것은 왜 문화재관람료를 국립공원 매표소에서 징수하느냐는 것이다. 현재 전국의 국립공원 안 사찰 22곳이 기존 매표소 위치에서 문화재 관람료(1600~3000원)를 받고 있다. 문화재보호법 제39조(관람료의 징수) 제1항은 '국가지정문화재의 소유자·보유자 또는 관리단체는 그 문화재를 공개하는 경우에는 관람자로부터 관람료를 징수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다. 이는 '관람자만이 관람료 징수 대상'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국립공원 초입에 자리 잡은 기존 매표소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는 행위는 사찰을 둘러볼 마음이 없는 이들에게까지 일괄적으로 징수하는 것으로 법령에도 어긋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일부 국립공원 방문객들은 “사찰이 산적도 아니고 통행료 내라고 버티는 거냐”고 목소리에 날을 세웠다.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더라도 국립공원 이외 지역의 사찰들처럼 사찰 입구에 별도로 매표소를 설치해 관람료를 받으라는 의견이 대세다. 이 문제는 조계종 측에서도 일부 긍정하면서 한발 물러서는 듯했으나 일부 사찰들의 반발로 공식화하지 못한 상태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계종은 지난 12일 결의문을 통해 끝내 사찰의 국립공원 지정 해제, 사유지에 대한 임대료 보상, 소관 정부부처 이관 검토, 문화재보수 예산의 대폭 증액 등을 요구하면서, “문화재 관람료 매표소 위치는 상기 내용이 실현될 때까지 합리적으로 조정해 나가겠다”는 밀고 당기기 식의 애매한 조건부 자세를 취했다.

이 시점에서 조계종이 내세우고 있는 사찰 소유지의 국립공원 지정 해제와 이에 따른 임대료 보상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계종은 “1억1천만평에 달하는 사찰 소유 토지를 공원 부지로 무상 제공해 국립공원제도 정착 및 운영에 막대한 기여를 해왔다”면서 “이런 사실을 평가치 않고 사유권을 무시하며 마치 국립공원 구역이 국공유지인양 홍보하는 것은 부당하며 많은 오해를 초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조계종은 국립공원 지정 해제뿐만 아니라 문화재보호구역, 전통사찰보존구역, 역사문화보존구역 등도 국립(도, 군)공원지역에서 제척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조계종은 또 수행환경 침해와 자율적인 재산권 행사에도 제약을 받았다면서, 이에 대한 평가와 보상도 요청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지난 17일 이치범 환경부 장관은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과의 회동에서 환경부가 국립공원 내 사찰 토지에 대해 사용료를 지불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환경부는 일단 2억원의 예산을 확보한 상태임을 전했다. 그러나 조계종 측은 “전체적인 사찰 문화재 보존·관리비용엔 턱없이 모자란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 “조삼모사격 졸속 행정의 산물”

이번 국립공원입장료 폐지가 이같은 일련의 엇난 논란들을 가져온 것이 새삼스럽지 만은 않다는 반응도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국립공원입장료 폐지건이 헌법소원 제기된 지 1년이 다 돼 가지만 헌법재판소는 여전히 심리를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게다가 국립공원입장료 폐지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황에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운영비 230여억원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실시된 입장료 폐지가 출발부터 삐거덕거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이와 관련해 문화연대는 “조삼모사 격의 국립공원입장료 졸속 폐지는 전면 재검토 되어야 한다”면서 “운영비 보조라는 형태의 입장료 폐지는 그 자체로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일부 사찰의 문화재관람료 인상,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주차료 및 시설이용료 인상 등의 조치만 낳고 있을 뿐”이라고 신랄한 어조로 공세를 퍼부었다.

실제 국립공원입장료 폐지와 맞물린 각종 시설료 인상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 아니냐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게다가 이 틈을 타 지리산 화엄사와 속리산 법주사는 문화재관람료마저 2200원에서 3000원으로 성큼 올려 받았다.

이같은 졸속행정은 조계종이 주창하는 소관 정부부처 이전 문제와도 연계돼 있다. 환경부가 선뜻 일을 벌여 놓고 뒤처리를 못해 쩔쩔 매는 꼴이다. 이는 환경부 산하의 국립공원입장료 차원이 아닌 문화재청 산하의 문화재관람료 부분과 직접적으로 잇닿아 있기 때문.

지난 16일 조계종은 결의문을 통해 “국립공원 내 전통사찰이 자연공원법, 문화재보호법, 전통사찰보존법 등으로 중첩돼 규제·관리되고 있으며, 역사문화유산 관리를 위한 정부정책이 부재하다고 판단한다”면서 “이를 해소키 위해 전문성이 있는 기관이 관리할 수 있도록 소관 정부부처 이관 검토를 공식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는 국립공원 내 전통사찰을 환경부 소관의 자연공원법으로 관리 받는 것이 아니라 문화재보호법이나 전통사찰보존법에 따라 역사문화보존구역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소관부처를 문화관광부나 문화재청으로 옮겨달라는 요구이다.

특히 문화재관람료가 문화재보호법에 근거해 징수하는 것임을 감안할 때 환경부보다는 문화재청이 나서서 해결해야 될 문제라는 의견이 다수다. 지난 17일 환경장관과 조계종 총무원장과의 회동에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뒤늦게 합류한 것도 이런 여론을 감안해서일 것이라는 해석이다.

문화재관람료를 둘러싼 조계종, 환경부, 문화재청의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내려면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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