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나라당 이병석 의원>
만일 우리가 9288km에 이르는 철길을 따라 시베리아 대륙을 횡단하고 있다면, 어쩌면 우리도 그 땅의 원주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땅과 하늘이 맞닿은 평원 어디에 자작나무를 닮은 솟대 하나 세우고 싶어질 지도 모른다. 만일 우리가 해발 3454m 알프스의 거친 산정 융프라우 요흐 역(驛)에 오른다면, 톱니바퀴로 산을 오르는 기차를 타고 있다면 우리는 거친 산과 빙하가 만든 호수뿐인 곳에서 살아야했던 스위스 사람들의 오기를 같이 느끼게 될지 모른다.

남의 나라 용병으로 형제가 형제를 죽여야 했던 그들의 슬픈 역사를 기억하게 될지 모른다. 오리엔트 특급에서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 상류 사회의 화려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에어컨도 없는 1m 게이지의 협궤열차를 타고 느리고 느리게 벤하이강(Benhai R. 북위 17도)을 건너는 베트남 통일열차에서는 오래고 오래, 길고 고단한 독립투쟁을 했던 베트남 사람들 생각에 땀 대신 눈시울이 붉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기차를 탈 때마다 나는 아리랑 가락을 듣는다. 한강 철교위거나, 강 옆 산등성이를 끼고 지날 때 마다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기계음은 다양한 변주의 아리랑이다. 정선아라리처럼 유장하거나 밀양아리랑처럼 신명나는. 철로가 이 산하에 두 발을 딛고 있는 한 빠르거나 늦거나 상관없이 기차는 산하를 닮는다. 산하를 닮은 사람을 닮아 기차는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된다. 기차는 민족문화의 얼굴 그 자체다.

하여 우리 철도는 아리랑이다. 1899년 제물포와 노량진 사이에 처음 기차가 달렸다. 만주와 한반도 너른 들판의 곡식들을 다 일본에 내 주고, 주린 배를 쥐고 부르던 아리랑이다. 숨죽이고 부르는 독립군의 아리랑이다. 해방이 되고 전쟁이 나고, 끊어진 철교위에서 부르다 못다 부른 아리랑이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건설을 위한 장비를 싣고 내리며 부르던 아리랑이다. 자동차와 고속도로에 자식들 맡기고 우리 어머니들이 푸성귀 바구니 모아두고 두런두런 부르던 아리랑이다.

그렇게 110년이 지났다. 고속철의 시대가 되었다. 세계가 철도에 매진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어떤 아리랑을 불러야 할까?

첫째는 도시와 도시, 고을과 고을이 어깨 걸고 부르는 아리랑이다. 이를 위해선 철도망의 확충이 시급하다. 고속철도가 만드는 산하는 옛 산하가 아니다. 철도는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수단이 되었다. 따라서 거점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고속철도망과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철도 및 도로망을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구 1000명 당 철도 연장을 보면 영국 0.27km, 프랑스 0.47km, 이탈리아 0.28km 등이지만 한국은 0.07km에 불과하다. 면적 1000㎢당 철도 연장도 마찬가지. 영국이 67.2, 독일 94.9, 프랑스 54.2, 이탈리아 56.0이나 한국은 33.8에 지나지 않는다. 2008년 기준)

둘째는 남과 북이 함께 부르는 아리랑이다. 1950년 동해선이, 51년 경의선이 끊어진 이래 우리는 아직 아리랑을 못 다 불렀다. 2006년 5월 남북 철도(경의선, 동해선)의 시험 운행에 합의하고 시험 운행을 함으로써 변화는 시작되었다. 그 변화는 경의선을 통해 중국 대륙으로, 동해선을 통해 시베리아 대륙으로 나가는 출발점이다. 지금 비록 긴장 상태에서 진척이 더디다지만 긴장해소 이후의 사업이 아니라 긴장 해소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셋째는 세계 속에 울려 퍼지는 아리랑이다. 세계는 지금 철도의 친환경성과 낮은 비용, 대규모의 수송에 주목하여 철도망 확대 및 철도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도 활발한 해외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나이지리아에서 유전과 철도사업을 결합하기도 하고, 몽골에서 산과 철도를 결합하기도 한다. 해외진출을 위한 정부와 기업의 협력 작업은 절실하다.

과거 철도는 정치적·군사적 의미가 매우 강했다. 한국을 식민지로 만든 주요한 계기인 러일전쟁도 어떤 의미에서는 동청철도와 남만철도의 지배권을 둘러싼 전쟁이었다. 남북한 철도의 연결에는 여전히 정치·군사적인 의미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세계에서 철도는 정치·군사적인 의미보다 경제·문화적인 계기가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프랑스의 테제베(TGV)가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스위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 등의 나라에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프랑스의 위상이 어떨 것인지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철도는 시간과 공간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철도는 그 민족의 문화를 닮지 않을 수 없고, 그 철도가 달리는 모든 곳에 그 민족의 문화를 스며들게 한다. 우리는 매우 빠르게 고속철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그 빠르기만큼 철도문화가 무르익었는지를 짚어 봐야 한다. 철도는 단지 공간과 공간을 빠르게 이동하는 수단이 아니라, 이동 그 자체에 민족의 문화가 실려 있는 것이다.

우리의 철도 기술이 결코 세계에 뒤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이제 철도 아리랑을 힘차게 불러야 할 때가 아니겠는가? 고을과 고을, 도시와 도시, 그리고 대륙과 세계 속에서 뱃노래보다 더 힘찬 대화합, 대소통의 철도 아리랑이 울려 퍼지도록 하자.

이르쿠츠크에서 8월 한·몽골 철도·에너지 MOU를 체결했다. 다시 한국에서 어제, 한·몽골 합동 세미나를 열었다. 마침 철도 110주년이 내일이다. 철도가 만들어갈 민족문화의 대 영역은 상상만으로도 가슴 벅찬 것이 아닌가?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