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논설주간
▲ 권순직 논설주간
정부가 정책을 입안(立案)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결과 또는 나쁜 결과가 나타났다고 하자. 입안 과정에서 잘 모르고 저지른 실수에 의한 과오는 무능(無能)이거나 과실(過失)이다.

하지만 알면서도 또는 고의로 정책의 과실이 발생한다면 이는 범죄라고 보아야 한다. 설령 정책의 실패에 형사책임을 묻지 못한다 해도 역사에 두고두고 남을 죄일 것이다.
 
이 정부 들어 유독 통계 시비가 끊이질 않는다.

‘선택적 통계 인용’ ‘통계왜곡’ ‘통계마사지’ ‘통계물타기’ ‘맞춤통계’ ‘통계분식’ ‘코드통계’ ‘보은통계’ 등등의 낯부끄러운 비난이 자주 등장한다.

통계의 중요성, 엄중함 때문에 통계에 대한 비판과 시비가 잦은 것이라고 본다.
 
최근의 통계 논란은 주택시장과 관련된 것이다.

올 들어 서울 아파트 가격상승률(누적)이 한국감정원 통계는 0.62%, KB국민은행 통계로는 7.04%다. 조사대상 방식 등의 차이는 있겠지만 편차가 11배나 되니 심하다.
 
그간 두 기관의 통계는 오래 된 국가가 공인한 통계다. 그런데 정부는 갑자기 “민간(국민은행) 통계는 믿을 수 없다”고 선언한다.

부동산 대책을 펴 집값을 안정시켰다는 정부 정책에 숫자가 맘에 안든 탓이다. 부동산 공시가격이나 세금을 매기는데 정부가 지금껏 활용해 온 통계를 갑자기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 맘에 안들면 ‘못믿을 통계’
 
그러면서 내놓은 방안이 ‘전세가격 통계 개편’이다.

홍남기경제부총리는 “현행 전세 통계는 확정일자를 받은 임차가구 등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통상 확정일자를 받지 않는 갱신계약은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다”며 “신규와 갱신 계약 모두를 포함하는 통계조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어떻게든 전세가격 상승률을 낮춰 정책효과를 드러내 보려는 계산이다. 전월세상한제 전월세전환율 규제 등의 시장개입 효과를 통계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통계왜곡이라고 지적한다.

“시장가격 통계에는 기본적으로 ‘통제된 가격’은 포함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전월세 상한제나 전월세 전환율 규제로 ‘통제된 갱신계약’을 포함하는 시장통계만 생산된다면 시장정보를 심각하게 왜곡하게 된다”

“정부가 원하는 숫자를 얻기 위해 시장통계를 왜곡하려는 시도는 하지 말아야 한다”(이창무한양대교수)

통계왜곡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사례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작년 봄 발표된 고용통계에 비정규직 근로자 수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이 정부로선 난감했으리라.

이에 강신욱통계청장의 해명은 통계사(史)에 길이 남을 ‘명언’ 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실제로는 비정규직이 아닌데 “통계조사 때 내가 언제까지 일할지 모르니까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이라고 답변했기 때문에 비정규직 숫자가 늘었다는 설명이다. 코미디 수준이다.
 
지난 2018년 8월의 얘기다. 통계청은 ‘실업자가 7개월째 100만 명을 웃돌고, 전년도 월평균 30만개가 늘던 일자리가 10만개 선으로 급감했다. 빈부격차는 역대 최악’이라는 통계를 발표했다.
 
일자리정부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우고 추진해온 정부로선 부끄럽기 한이 없는 수치. 이 통계를 생산 발표한 황수정 통계청장은 재임 13개월 만에 경질됐다.

정책 잘못의 책임을 입안, 집행자에게 묻지 않고 통계작성 책임자에게 묻는 어처구니없는 처사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황 청장은 이임식 내내 눈물을 흘렸다. 그의 이임사 일부다.

“통계청장 재직 중 통계의 독립성, 전문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았다”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내가 정부의 말을 그렇게 잘 들었던 편은 아니었다”
 
통계 신뢰 상실 = 정책 불신 직결
 
왜 유독 문재인 정부에서 통계 시비가 잦은걸까.

경제정책의 잇단 실패로 자신이 없어지고, 초조해진 정책 책임자들의 불안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볼 뿐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정당화하려고 분배통계를 손질하거나 편의적으로 인용하고, 비정규직을 많이 줄였다고 생색내려고 비정규직 증가 통계를 궁색하게 설명한다.

의욕적인 부동산 안정화 정책이 실패를 거듭하자 통계를 마사지하여 정책효과를 돋보이게 하려는 시도도 통계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통계청의 8대 국가통계 기본원칙 중 으뜸 기준이 ‘공공재(公共財 )로서 중립성 보장’이다.

통계는 모든 정부정책을 세우는데 기초다. 통계가 현실 있는 그대로를 반영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정책을 수립하기 어렵다.

정부의 공식 통계를 믿을 수 없게 되면 모든 경제정책의 신뢰도 무너지고 만다.

만에 하나 통계를 왜곡하거나 변조 조작하는 시도가 행해진다면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정부는 부디 통계의 엄중함을 되새기길 바란다.

그리스 정부는 과거 재정적자 등 각종 국가 기본통계를 조작하다가 들통 나 국제사회로부터 외면 받으면서 국가부도를 맞았다.
 
아르헨티나 역시 정부가 물가상승률을 조작하고 빈곤율 등 불리한 통계를 감추거나 조작, 부실국가로 낙인찍혔다.

공공 통계 신뢰의 실추는 상상 외로 그 영향이 크다. 당장 눈앞의 인기를 위해 통계의 엄중함 중립성을 훼손하면 크게 후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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