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전 화근 부른 거대 여당, 정책 전환 단행해야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지난 7월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임대차 3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될 즈음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당시)는 “논의보다 속도다”라고 강조했다. 4월 총선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아 거대 여당이 된 만큼 민의에 부응해 전·월세 시장을 세입자 위주로 확 바꿔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임대차계약갱신청구권(2+2년)과 전월세상한제(5%) 등을 골자로 한 개정안이 전격 시행될 경우 시장에 주는 충격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각계에서 빗발쳤지만 여당은 귀를 닫았다. 그리고 국회 상임위원회에 상정한 지 4일 만에 소위원회도 생략하고 국회 본회의 통과를 거쳐 시행하게 된다.
 
정부와 여당은 임대차 3법 개정에 따른 충격을 제도 변경에 따른 일시적 진통쯤으로 가볍게 여긴 것 같다. 그러나 학계와 언론, 부동산 업계가 우려했던 대로 세입자를 막다른 처지로 내모는 충격파가 바로 찾아왔다. 특히 전세는 시장에 새로 나오는 집이 격감한 반면 신혼부부와 이사 수요는 여전해 아파트 전셋값이 단번에 몇 억원씩 치솟는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규제 위주의 주택정책으로 인해 청약 대기수요가 몰리면서 강세를 보여온 전셋값은 임대차 3법 영향으로 더욱 치솟아 서울에서 68주 연속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계약갱신청구권을 피하거나 재건축 요건 등을 맞추기 위해 집주인들이 들어와 살겠다는 곳이 늘면서 아예 전셋집이 사라진 아파트단지가 많다고 전했다. 전셋값이 문제가 아니라 전세 공급이 사실상 끊겼다며 어쩌다 나오는 집이 있으면 주인이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한다. 경제정책의 수장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내년 1월 서울 마포구 전셋집의 계약 만료를 앞두고 인근에 나온 아파트가 드물어 고심하고 있다는 뉴스가 전세대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지금 사는 단지 내 34평형 아파트 전세값도 2억원 이상 급등했다고 한다. 지난 13일 온라인커뮤니티에 한 시민이 올린 아파트 문 앞 줄서기 사진은 대란의 실상을 더욱 절감하게 했다. 전세 나왔다는 소식에 9개팀 10여명이 몰려 줄을 서서 아파트를 돌아보고 제비뽑기로 계약자를 정했다는 내용이다. 부르는 값 모두 주고도 제비뽑기 행운까지 따라야 전셋집을 구할 수 있는 분통 터지는 현상이다.
 
홍 부총리야 연봉도 높고 은행대출도 수월한 입장이니 아파트만 구할 수 있다면 전셋값 오른 수준은 큰 걱정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저금리 시대라 해도 평범한 가장들에겐 한꺼번에 몇 억원씩 오른 전세값은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5대 시중은행의 9월말 기준 전세자금대출 잔액이 전월보다 사상 최대수준인 2조6911억원 올라 99조1623억원에 달했다는 소식도 예사롭지 않다. 문재인 정부 들어 거듭된 소득주도성장 등 경제실정에 코로나19 위기까지 겹쳐 폐업한 수많은 중소상공인들에게는 악몽 같은 세월이 아닐 수 없다. 일반 가계도 주거비 부담 급증에 감당하기 버거운 빚을 더 떠안게 됐다. 폐업에 전세대란까지 겪게 된 난민들에게 몇 푼의 재난지원금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트롯 열풍이 큰 어려움에 처한 분들에게 그나마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남진과 나훈아 등 트롯의 전설과 후배 가수들이 삶에 지친 국민에게 작은 소망이라도 안겨드리겠다며 무대에 서는 모습이 그래서 살갑다.
 
그런데 이토록 어렵고 혼란한 시기에 속도전으로 임대차 3법을 밀어붙여 대란을 키운 민주당 의원들과 정부 책임자들은 별 반응이 없다. 임대차 3법 개정을 선창했던 박주민 윤후덕 박홍근 백혜련 의원과 민주당 지도부는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도입 등으로 세입자 보호에 큰 진전을 이뤘다고 자랑할 뿐 시장에 역행해 자초한 전세대란 후폭풍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민주당은 전세시장의 동향을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태스크 포스(TF)를 운영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실효성 있는 수습방안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전세시장의 혼란을 직접 겪은 홍 부총리도 곧 보완대책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가 부동산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번에 또 무슨 엉뚱한 정책이 나와 혼란을 더할지 걱정이 앞선다.
 
지금 추세로 가면 전세대란은 내년에도 완화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와 여당은 규제와 세금 폭탄으로 부동산 매매와 전월세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망상에서 벗어나 과도한 국민 부담을 경감하는 방안을 서둘러 추진하는 정책 전환을 단행해야 한다. 임대차 3법 등 전세 난민을 양산한 법규를 서둘러 개정 또는 폐기할 필요가 있다. 엄연히 존재하는 전세 수요를 입법을 통해 돌려놓겠다는 과욕과 집착을 반성, 수요에 맞춰 공급을 확대하는 대책을 서둘러 마련하기 바란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 약력
△전)국민일보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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