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민 기자.
▲ 이정민 기자.
지난 11일 오후 3시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동료 기자와 식사를 했다. 다소 늦은 점심시간이라 내부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옆 테이블, 뒤 테이블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다.

한참 밥을 먹고 있는데 의도치 않게 바로 왼쪽 테이블에서 "나도 넣고 싶은데, 더 이상은 안돼. 시어머니 용돈도 드려야하고..."라고 말하는 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앞에 앉아있던 다른 여성이 "그래도 이거봐. 아깝잖아"라며 핸드폰을 보여줬고, 그 여성은 "어머, 주가 많이 올랐네. 더 끌어다가 쓸 수도 없고"라며 탄식했다.

일주일 전 또 다른 식당에 갔을 때도 옆 테이블에 있던 20대 커플이 "나 바이오 쪽 말고 다시 시작하려고" "어디? 삼전?" "같이 해야지. 삼전은 계속 오르잖아" 라는 대화를 듣기도 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주변에 주식을 한다는 사람은 보지도 듣지도 못했는데 우연히 그것도 2주 연속으로 주식투자와 관련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고, 또 듣게된 것이다. '빚투', 주식시장 폭증 관련 쏟아지는 뉴스들이 온몸으로 체감된 순간이었다.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다"고 느꼈다.

'빚내서 투자'라는 의미를 지닌 빚투는 지난해 여름 가계빚이 사상 최대치를 돌파하면서부터 생겨난 신조어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충격으로 유동성 공급을 위한 초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가계대출을 폭증하는데 증권, 투자 시장의 자금 유입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일관해왔던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마저 15일 주식 시장의 과열 양상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그는 "주가 동향을 판단하는 여러 지표를 보면, 최근의 주가 상승 속도가 과거보다 대단히 빠르다는 건 사실”이라며 "과속하게 되면 작은 충격에도 시장이 흔들릴 수 있어 주가가 급격히 조정을 받을 경우 발생하는 시장 불안에 대해 항상 유의하고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00년 닷컴버블 당시 투자자들은 인터넷 혁명으로 인해 조만간 완전한 새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기대했고, 흔히 닷컴 기업이라 불리던 관련 기업들에 자금을 쏟아 부었다. 실제 가치보다 과도하게 오른 주식은 거품처럼 순식간에 꺼져 버렸고, 많은 기업들과 투자자들은 파산을 면치 못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낮은 금리에 은행들이 무분별하게 대출을 내주면서 풀린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과도하게 몰리면서 발생한 자산 버블이었다.

최근 미국 뉴욕 증시의 계속되는 역대 최고치 돌파, 코스피 3000시대 개막, 7만고지를 넘다 못해 12만원까지 넘보는 삼성전자 주가, 부동산 집값 상승률 9년만에 최고치 기록 등 불과 몇 개월 안에 쏟아진 자산시장 관련 호황 기사들을 봤을 것이다.

반면 가계부채는 불어나다 못해 국내총생산(GDP)을 추월한지 오래며 지난해 은행의 가계대출이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섰다. 빚투 규모도 최근 20조원을 넘어선 데 이어 5일 만에 21조도 육박한 수준으로 치솟았다. 현재 글로벌 부채 수준이 2008년 금융 위기 직전보다 더 높은 상황에서 이 모든 시그널들은 과도한 빚으로 쌓아올린 자산시장의 모래성임을 증명해주고 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쉽게 손을 떼지 못하고 있다. 1년 치 연봉을 한 번에 벌었다는 사례를 접하면서 '안하면 나만 손해볼 것 같다'는 박탈감에 따른 '패닉 바잉'(공황구매), 흐름을 놓치거나 소외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뜻하는 '포모증후군'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 코로나19로 못 나가고, 못 먹고, 못 놀면서 모인 자금이라면, 막힌 국경만 아니었어도 진즉에 다 쓰고도 남았을 것이라면, 그래서 다 잃어도 아무 이상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어디에 그 돈을 쓰던지 누구도 말릴 자격은 없다. 돈을 쓰는 자유는 개인에게 있다.

그러나 정말 '빚투' 했다면, 이제는 알고리즘의 세계가 보여주는 시장의 낙관론을 세상이라 여기는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현실을 다시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미 우리는 코로나19만으로도 충분히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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