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를 통일한 것은 유방의 냉정함과 현실 감각
초나라 항우의 군대에서 인정받지 못한 그는 한나라로 넘어와 대장군이 되고 엄청난 승리를 세워갔다.
그런 그가 고향에서 별 볼일 없이 살던 시절의 이야기다.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기고 다니던 한신. 언젠간 큰 꿈을 이루겠다는 걸 보여주듯이 큰 칼을 차고 다녔다.
하지만 그 꼴을 아니꼽게 본 동네 불량배들이 한신에게 시비를 걸었다. "내 가랑이 밑으로 지나가면 봐주겠다"는 협박에 한신은 두말없이 그렇게 한다. 싸움을 피한 것이다.
이 일은 두고두고 그를 따라다니는 이야기가 된다. 싸움을 피한 겁쟁이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사소한 일에 대장부의 칼을 꺼내지 않는 진정한 용기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기도 했다.
안 후보는 끝내 "유선 여론조사 수용한다. 유세차 가동 전 단일화하자"는 뜻을 밝혔다. 그러자 홍준표 의원이 안 후보를 한신에 비유한 글을 썼다. 더 큰 목표를 위해 작은 일은 털고 갈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 생각된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몰아내야 당에 복귀할 여지가 생기는 홍 의원으로서는 안 대표가 지원군으로 보일 것이니 이런 비유도 무리는 아니다.
문득 한신과 유방, 그리고 항우가 천하를 호령했던 2200년 전 중원을 생각해봤다. 한신은 패배를 몰랐다. 유방의 휘하에 들어가 한나라 장수가 된 한신 덕에 일개 시골 마을 파출소장쯤이었던 유방은 항우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신은 필요할 때는 소중히 여기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린다는 토사구팽 兎死狗烹이라는 사자성어의 주인공이 된다. 한신은 신출귀몰한 능력은 옛 제나라 지역을 정복하기에 이른다.
우쭐해진 한신은 유방에게 편지를 보낸다. "제나라를 수습하고 완전히 복속시키기 위해서는 왕 자리를 비워둘 수가 없으니, 이번의 공로를 치하하시어 본인을 임시 제왕으로 임명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당시 유방은 항우와 싸움에서 피가 마르고 있던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한신의 `뒤통수`는 뼈아픈 것이었다. 만일 한신이 자신을 배신하고 독자 세력이 된다면 생각만 해도 눈앞이 캄캄했다.
분노해서 길길이 날뛰던 유방은 결국 한신 없이 천하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임시 제왕이 다 뭐냐. 임시가 아닌 제왕으로 봉한다"고 답변한다.
하지만 항우는 명문 귀족이라는 프라이드에 젖어 유방을 무시했다. 범증의 충고도 무시했다. 그런 시골 출신 무지렁이를 비겁하게 죽이는 것쯤은 자신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항우는 결국 한때는 천하를 호령했지만 수십 명의 경호원과 함께 쫓기는 신세가 된다. 사방에서 항복한 초나라 병사들이 부르는 초나라 노래가 들려왔다(사면초가).
사랑하는 여인 우희도 도망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항우의 목에 달린 현상금을 노린 한나라 군사들에 의해 그의 시신은 갈가리 찢겨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결국, 승자는 유방이었다. 술과 여자를 좋아하고, 배운 것도 없고 병법에도 능하지 않았던 유방의 무기는 현실적인 감각과 정치력이었다. 그는 자신을 죽이려는 항우 앞에서 능청스럽게 바보 연기를 했다.
한신은 "얼마나 많은 병사를 지휘할 수 있느냐"는 유방의 질문에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다다익선)"고 답했다. 그러자 유방이 "그런데 왜 내 밑에 있느냐"고 다시 묻자 "폐하께서는 저보다 병사를 잘 거느리지 못하지만 대신 장수를 잘 거느린다"고 답했다.
능력 있는 부하 한신에게는 전권을 주고 활약하게 한 다음, 나중에는 제왕의 칭호와 부대를 모두 빼앗아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했다. 평화로운 시절이 오자 가장 먼저 한신을 죽였다.
유방이 한신처럼 불량배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이 된다면 어땠을까. 의미 없는 가정이지만 아마 유방은 우선 그들과 주막에서 술 한잔을 나누면서 친구가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들이 잘하는 것을 할 기회를 주었을 것이다. 동네 아전이었던 소하를 기용해 한나라의 재상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하지만 그와 함께했던 이들은 더는 그와 같은 배를 타고 있지 않다. 최측근으로 분류됐던 금태섭 전 의원과는 서울시장 경선에서 맞붙기까지 했다.
안 후보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한 번, 문재인 대통령에게 또 한 번 양보를 한 독특한 정치 역사를 썼다. 이번 단일화 여론조사가 또 다른 양보의 역사가 될지 아니면, 마지막 기회가 될지는 지켜봐야 알 일이다.
토사구팽당한 한신이 되지 않으려면 정치는 `따뜻함`이 아니라 `냉정함`의 영역이라는 것을 그는 가슴에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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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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