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관련 논란, 우왕좌왕
정부, 정치권 등 인식, 2018년에 머물러...
제도 정비 고민해야 할 시점
한국은행, 가상화폐 대체할 디지털 화폐 준비...

▲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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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코리아=서용하 기자 | 가상화폐가 내재가치 없는 자산인지 신사업으로 봐야 할지 논란이 뜨겁게 일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서 가상화폐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쏟아낸 후 논란이 가속화되고 있다. 정치권에선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젊은 층의 표심을 의식해 은성수 금융위원장을 때리는 데에만 몰두해 있는 모양새다. 가상화폐 관련 투자의 위험성에 관한 논란만 무성하지 정작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이 연관해 미래 성장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누가 가상화폐 논란에 불을 지폈나
은 위원장은 지난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최근 암호화폐 열풍과 관련해 “가상자산에 투자한 이들까지 정부에서 다 보호할 수는 없다”며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이야기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암호화폐는 법정화폐가 아닌 내재가치가 없는 가상자산에 불과하다는 게 우리 금융 당국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가상화폐가 투기자 투자냐 보호 대상이냐 아니냐 등 논란이 증폭되는 중심엔 정부와 정치권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논란이 커지기 전 정작 대부분의 가상화폐 투자자들이나 거래소는 조용했다. 내년 가상화폐 관련 과세방침에도 어느 정도 수긍했던 투자자들은 “정부가 가상자산을 법정화폐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내년부터 기타소득으로 분류해 과세한다”라며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

투자자 보호는 '특금법'으로 이미 시작
'반 제도화?'


홍남기 국무총리 대행은 지난 27일 “자본시장육성법상 자산, 대상 자산은 아니지만, 거래소에 관한 규정을 통해서 보다 투명하게 거래될 수 있도록 했다”며 “그걸 제도화라고 하면 제도화라고 할 수 있는데, 반 정도 제도화다”라고 밝혔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지난 3월 25일부터 '특정 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인 특금법 개정안 시행에 따라 은행으로부터 발급받은 실명 확인 입출금 계좌를 필수로 갖춰야 한다. '특급법'에 따라 사실상 가상화폐 거래소들의 '종합 검증' 역할을 시중은행이 맡은 셈이다. 만일의 금융사고 책임에 대한 부담 탓에 매우 깐깐한 심사도 예상된다. 현재 시중은행 중 실명계좌를 트고 영업하는 거래소는 빗썸(농협), 업비트(케이뱅크), 코인원(농협), 코빗(신한은행) 단 4곳뿐이다. 4개 거래소는 오늘 9월로 다가온 신고 마감일까지 무사히 안착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 특금법으로 투명하지 못한 거래소들은 자연스레 문을 닫게 된다.
 
가상화폐 투자 수익자 내년부터 세금 낸다
‘과일’은 아니라면서 먹기 위해 배 가르는 격?

가상화폐에 세금이 부과된다. 2022년부터 250만 원 이상의 초과소득에 대해 세금이 부과된다. 1년에 1천만 원을 번다면 250만 원까지 공제되고 나머지 750만 원의 20%인 150만 원 세금으로 내야 한다. 금융당국은 수익이 있는 곳에 세금을 부과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지만 제도권 진입을 암묵적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정부가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세금만 챙기겠다면 ‘도둑심보’ 정권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한 의원도 “정부가 금융상품이 아니란 이유로 투자자 보호는 외면하면서 내년부터 투자수익에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중잣대”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가상화폐 자산에 과세하려면 미국·영국·일본 등과 같이 가상화폐의 발행·유통에 관한 제도 및 가상화폐 업권에 대한 특별법을 마련해야 한다며, 관련 제도 정비가 이뤄지기 전까지 과세 유예 조치를 해야 한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정부는 모르쇠, 정치권은 대책 마련 줄줄이...
정치권 앞다퉈 선거전략으로만 이용?, 비판 여론도...

더불어민주당이 암호화폐 투자를 ‘잘못된 길’로 표현한 은성수 금융위원장을 일제히 때리고 있다. 내년 대선을 위해 2030 마음잡기에 나선 것이다. 민주당 이광재 의원은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를 목표로 한 2018년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과 2021년 은 위원장의 발언을 두고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렸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노웅래 의원도 “가상화폐를 먹거리로 활용할 생각은 안 하고 단지 투기 수단으로만 폄훼하고 규제하려는 것은 기존 금융권의 기득권 지키기이며 21세기판 쇄국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청년 세대의 가상자산 투자가 불가피한 현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과 소통의 필요성도 공감했다”는 당 차원의 공식 입장을 내놨다. 이를 공감대 삼아 민주당은 가상화폐 대응 기구를 별도로 설치해 관련 대책 마련에 나설 예정이다.
 
국민의 힘도 나섰다

국민의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최근 ‘가상화폐 논란’과 관련해 가상화폐 제도화 및 투자자 보호 방안 마련을 위한 테스크포스(TF)를 꾸린다고 밝혔다. 주호영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은 지난 26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암호화폐 문제를 놓고 정부와 여당이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고 있다”고 비판하며 이같이 밝혔다. 주 권한대행은 “정책은 고사하고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할 것인지조차 입장을 못 정하고 있다”며 “암호화폐 투자자가 25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진 마당에 실제 국민의 자산이 얼마만큼이나 암호화폐 시장으로 유입됐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암호화폐를 인정할 수도 없고 투자자를 보호할 수 없다면서 소득에는 과세한다는 앞뒤 맞지 않는 논리에 열풍처럼 암호화폐 투자에 나섰던 2030 청년들이 어처구니없는 배신감과 억울함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엄포만 놓을 것이 아니라 암호화폐를 제도화할 것인지, 투자자 보호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전문가들과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도 정비부터 고민해야...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은성수 금융위원장을 때려 2030의 마음을 살려고 할 것이 아니라 없다시피 한 암호화폐에 대한 제도 정비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당장 어느 부처가 이 문제를 주도할지에 대한 합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21일 열린 당정 협의에 참석한 한 의원은 “내년 1월 가상자산 세금을 거두기 전에 주관 부처부터 결정해야 한다고 정부에 조언했다”면서 “지금은 국무조정실이 7개 부처와 상의하는데, 주관 부처가 정해져야 제도가 정비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컨트롤타워가 만들어져야 관련 법과 제도도 정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 위원장의 발언을 문제 삼을 게 아니라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제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블록체인협회 관계자는 “거래소는 가상화폐 상장을 결정할 때 여러 가지 약관을 보고 자체적으로 결정하지만 일관된 기준이 없어 주먹구구식의 결정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주식시장도 정확한 상장기준이 없으면 가상화폐 거래소와 어떤 차이가 있겠나, 하루빨리 가상화폐 상장 조건과 관련한 법적 제도적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 자세로 논의 시작해야...
가상화폐 관련 전문가들은 가상화폐 시장이 2018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히 커졌다며, 가상화폐 열풍이 세계적인 현상으로 떠오른 만큼 정부가 가상화폐를 금융자산으로 인정할지부터 '열린 자세'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우선 가상화폐 관련 전문가들은 가상화폐 열기가 뜨거웠던 2018년과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는데도 정부의 인식이 2018년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가상자산 발행을 연방법 차원에서 규제하고, 증권거래법상 '투자계약' 개념에 따라 가상자산 거래를 대다수 증권규제 대상에 포함했다. 뉴욕주는 2015년 세계 최초로 가상자산 특화 법률 '비트 라이선스'(BitLicense)를 제정해 이용자 보호, 공시 의무, 불법 자금세탁행위 예방 등을 규제하고 있다. 일본은 가상자산 교환 업자(거래소)에게 면허를 발급한다. 가상자산을 상장하려면 금융청 사전 심사를 거쳐야 한다. 2017년부터 가상자산 거래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잡소득'으로 분류, 최고 55% 세율로 과세한다.
 
가상화폐 이제 본질에 집중할 때다
모 대학 교수는 “젊은 층이 가상화폐를 투자대상으로 삼고 있는 가상화폐 '한탕'을 노리는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세계적으로 풍부한 유동성에 부동산, 주식 등 자산 투자가 열기를 띠면서 젊은이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하지만 상대적 박탈감과 가상화폐 투자와 연계해 바라보는 것 자체가 본질에서 벗어났다. 오히려 한국은행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관련 오는 6월부터 내년 1월까지 CBDC가 통용되는 가상환경을 구축해 실전 모의실험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가상화폐와 관련해 투자자들이 제기하고 있는 거래소 내 부정이나 비리들은 법적으로 조사하고 처벌하면 된다. 가상화폐는 미래이기 전에 현실이다. 블록체인 관련한 전문가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통화(화폐)도 신뢰가 없다면 한낮 종이 쪼가리밖에 되지 않는다. 가상화폐도 화폐 가능 여부에 대한 신뢰이지 누가 화폐냐 아니냐 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투자자들은 보호해 달라고 하지 않는다. 단지 법적 제도적으로 완비해 정상적인 거래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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