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전쟁은 없다


전쟁의 기원(紀元)은 동서양 공히 아득한 신화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그 기원(起源)은 사뭇 다르고 기원은 달라도 결과는 같아 이기든 지든 백성의 피가 제물이다.

서양사의 기원인 트로이 전쟁이 스파르타 왕비 헬레네가 트로이 왕자 파리스와 눈이 맞아 그를 따라 가버린 부적절한 애정행각에서 비롯되었다면 삼황오제시대의 황제는 불장난을 일삼는 염제를 응징하고 전욱은 물장난을 일삼는 공공을 물리친 것이 전쟁사의 시작이다.

동양에서는 삼황오제의 치적을 성전(聖戰) 혹은 정벌(征伐)이라고 말한다. 무엇을 기준으로 전쟁과 정벌을 구별하는가? 폭군 걸(桀)이 ‘하늘의 해가 없어지지 않는 한 나는 건재 한다.’고 하자 하(夏)나라 백성들이 ‘저 해는 언제 없어지려나?’라고 탄식했고 무왕(武王)이 폭군 주(紂)를 칠 때 동쪽으로 가면 서쪽 백성들이 원망하고 서쪽으로 가면 동쪽 백성들이 ‘왜 이 쪽을 먼저 정벌하지 않은가?’라며 원망했다.

이처럼 거병이 백성에게 해방의 희소식일 때 정당성이 확보되며 그래야 정벌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득한다. 그러나 명실상부한 정벌은 주(周)무왕의 은나라 정벌이 마지막이며 주나라가 견융(犬戎)의 무리에 쫓겨 낙양으로 동천(東遷)한 후로는 패자(覇者)에 의한 명목상의 정벌뿐이었다.

춘추시대 242년의 기록에는 296회의 전쟁이 나온다. 뭉뚱그려 전쟁이라고 할 수 밖에 없지만 춘추서법으로 분류하자면 벌(伐,정벌) 침(侵,침략) 전(戰,전쟁) 입(入,무혈입성) 위(圍,포위) 등 다양하다. 맹자는 이를 통틀어 <춘추에 의로운 전쟁은 없다. 다만 이 전쟁보다 나은 저 전쟁이 있을 뿐인데 예를 들자면 제 환공이 주 왕실에 공물을 바치지 않은 초나라를 정벌한 전쟁이다>라고 했다.

어떤 전쟁이 의로운 전쟁인가? 첫째 대의명분이다. 서기 전 651년 제나라 환공이 패자로 등장해 지금의 유엔총회와 같은 제후회의를 소집해 5개항의 맹약을 채택했다. ∆천왕에게 조회한다. ∆첩을 처로 세우거나 세자를 까닭 없이 바꾸지 않는다. ∆대부를 세습하지 않는다. ∆흉년에 식량의 수출입을 막지 않는다. 등인데 이를 어기면 정벌의 대상이 된다.

다음은 적법한 절차다. 어느 나라가 위 5개항을 어기면 패자인 제 환공이 천왕의 윤허를 받아 연합군을 편성해 정벌에 나선다. 이 때 반드시 북을 치며 들어가되 성 아래 10리 밖에서 군사를 멈추고 통고한다. 통고를 받은 제후가 한 쪽 어깨를 드러낸 옷차림으로 성을 나와 사죄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면 회군하고 통고한 시한까지 무반응이면 성내로 진격해 징치한다. 마지막으로 지켜야 할 금도는 농번기에는 군사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피아간에 농사시기를 놓치면 백성의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적이 농성으로 버틸 경우에도 30일이 지나면 포위를 풀고 회군한다.

맹자가 ‘이 전쟁보다 나은 저 전쟁’이라고 평가한 제환공의 초나라 정벌은 서기전 656년 제 환공이 8개국 연합군을 이끌고 채나라를 정벌한 다음에 초나라 도성에 이르러 출정이유를 전달하고 30리 밖에 주둔, 초나라의 맹약을 받고 돌아온 사건이다.

이 전쟁을 끝으로 그나마 형식요건을 갖춘 ‘정벌’은 없었다. 제 환공의 규구회맹, 진 문공의 천토회맹 이후에는 방백(方伯)의 영(令)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천하는 천왕을 정점으로 대국과 소국이 아끼고 섬기는 피라미드 질서와 평화가 무너지고 약육강식의 숲이 되고 말았다. 결국 공자의 덕으로 다스린다는 왕도정치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고 불가능하기 때문에 영원한 이상이다.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라던 윌슨 대통령의 1차 대전 참전선언이 말한 본인도 속은 거짓말이었듯이 전쟁의 명분은 아무리 그럴듯해도 헛소리다. 아지랑이 꽃에서 복숭아를 따겠다는 발상이다. 그래서 평화를 위한 노력이야말로 가장 품위 있는 전쟁이다.

전쟁을 정치의 연장이라고도 하고 정치가 전쟁의 연장이라고도 한다. 둘 다 인욕(人慾)의 춤판이니 속성은 같겠지만 그래도 피를 요구하는 전쟁보다는 정치로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의로운 전쟁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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