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의 반란전과와 예우
‘춘추’는 서기전 719년 위나라 환공의 시해를 시작으로 서기전 487년 제나라 진걸이 그 임금을 시해한 사건까지 242년 동안 24건의 반란 사건을 기록했다. 이 중에는 백성의 봉기, 중신의 지혜, 패권국가의 개입으로 평정된 사건도 있는데 특히 위나라 환공을 시해한 주우의 처단은 멸친대의 고사를 남겼다. 위나라 중신 석작(石碏)은 아들 석후(石厚)가 반란의 특등공신이 되자 ‘천자를 알현해야 정국이 안정된다. 그러자면 천자의 신임이 두터운 진(陳)나라를 먼저 예방해 교분을 맺으라’고 조언한 뒤 먼저 진나라로 사람을 보내 “두 사람은 역적이니 잡아서 처단하십시오.”라고 통지해 평정한 사례다. 그 밖에 성공한 반란이라 할지라도 ‘춘추’는 ‘아무개가 그 임금을 시해했다’고 범인의 이름과 사건을 낱낱이 기록에 남겼다.
40년 전 5월 18일 광주에서 전두환 신군부에 대한 시민항쟁이 일어났다. 그 끔직한 총질을 명령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 날 이후 사라진 행불자들의 유골은 어느 진토 속에 묻혀있는지 모른 채, 어김없이 진달래는 피고 져서 40년이 흘러 그 때, 그 광장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유족, 여야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거행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발포의 진상과 책임자를 반드시 규명하겠다고 다짐했다. 아마 마흔 번째 다짐일 것이다. 그 나마 올해는 조금 나아졌다.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기념식에 참석해 주먹을 쥐고 흔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부르지 못하게 했던 노래다. 주호영 대표는 행사 후 희생자 유가족들과 만나 공식 사과도 했다. 주 대표는 이어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인정해 극우세력과는 선을 긋는 발언도 했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주 MBC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그동안 광주에 대한 왜곡과 폄회는 경쟁관계에 있는 정치세력 간의 시각차이 정도가 아니다. 이들은 여전히 ‘5.18 광주’를 북한과 연계해 40주년 기념식 전후에도 SNS를 도배하고 있는 ‘빨갱이’, ‘좌파’ 등 몽유병자 같은 말을 공공연하게 퍼뜨리고 있다.
그 뿌리는 단연코 전두환 씨다. 그가 북한 개입설을 최초로 입에 올리기도 했지만 애초에 광주 유혈사태가 신군부의 집권 시나리오에 의한 기획의 산물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시나리오는 군사독재 세력의 권력유지에도 유용한 카드였다. 그 날의 총성, 유혈을 알 까닭이 없는 비호남과 이를 직접경험하고 직접들은 광주와 호남의 정서적 단절을 이용, ‘호남 대 비호남’ 구도를 만들고 나아가 <호남=김대중=민주=진보=좌파> 등식을 만들었으니 오늘날 진짜 보수도 아닌 보수파에서 문재인 정부를 좌파로 모는 연원이 여기에 있다.
전두환 씨는 1997년 6월 군사반란 내란 내란목적 살인죄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는 자서전에서 당시 헬기 사격을 증언한 작고한 신부를 위선자로 공격하고 그 부인은 그를 민주화의 아버지로 추켜세운다. 그러니 시민들이 그의 흉상 머리를 뿅망치로 두들겨 패는 퍼포먼스를 벌일만도 하다. 이를 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모르는 ‘좌파들의 소행’이라고 하지만 국가 보훈처의 유권해석이 아니어도 사면되었다고 해서 그의 반란, 내란, 내란목적 살인 수뢰의 전과 사실이 소멸되지는 않는다.
반란의 주범에 대해서 ‘춘추’는 어떻게 기록했는가? 반란의 수괴에 대해서는 그가 군주의 신분으로 피살되었더라도 ‘위나라 주우(州吁)’, ‘제나라 무지(無知)’ 식으로 속명(俗名)을 써서 천하게 취급하고 사건을 다수 국민의 의거로 만들었다. 이를테면 이복 형 환공을 죽이고 군주자리를 찬탈한 주우의 경우 사실은 중신 석작이 주도한 사건인데 <9월에 위나라 사람들이 주우를 복 땅에서 죽였다(九月衛人殺州旴于濮)>라고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