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춘추필법으로 본 미·중 전쟁
"경제가 나빠지면 미국은 정권이 불안하고 중국은 체제가 불안"
정나라 유지 비결... 큰 나라를 섬기되 작은 나라와도 친선 유지
국경 없는 코로나 재앙이 인류에게 공조의 지혜를 제공할 것이라는 석학들의 예측은 공염불이 되었다. 오히려 미국은 코로나 문제로 유럽국가로부터 눈총을 받는 중국을 더 거칠게 몰아세우고 중국 또 한 그냥 당하지 않겠다는 자세여서 긴장감이 더 높아졌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미·중 관계 40 여 년만의 결별(Decoupling)로 규정했듯이 미국과 중국은 ‘대중국 전략 보고서’(5월 20일)와 홍콩보안법 제정(5월 28일)에 이어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 세계보건기구(WHO)와 관계 청산을 주고받았다.
미국은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일본을 일본 경제에 제동을 걸었다. 마찬가지로 2018년 7월 미국이 ‘관세 폭탄’ 투하로 중국과 무역전쟁을 선포한 것은 미국을 넘보는 중국을 주저앉히려는 사다리 걷어차기였다. 그런 점에서 무역을 넘어 군사 과학기술, 이념문제까지 들고 나오는 미·중 전쟁은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계속될 전망이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현재 미국 GDP의 65~70% 수준이다. 중국은 2년 전에 2040년이면 중국 경제가 미국을 앞지를 수 있다고 호언했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중국답지 않게 너무 빨리 속내를 드러내 미국의 견제를 자초했기 때문이다.
15억 인구의 중국은 내수경제 규모가 커 일본과 다르다고 하지만 2001년 WTO 가입 후 중국 내수경제도 이미 세계시장과 깊이 연계돼 있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경제 원리상 어느 한 쪽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으면 그 반대편도 일정한 타격을 입기 때문에 극한 대결을 무한정 끌고 갈수는 없다는 것이다. 경제가 나빠지면 미국은 정권이 불안하고 중국은 체제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곤혹스러운 입장은 한국이다. 미국은 글로벌 공급망의 탈(脫)중국을 겨냥하는 ‘경제번영네트워크(EPN)’에 한국 참여를 요구한 데 이어 군사·안보 영역에서도 ‘중국 고립’ 전략에 동참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은 군사 안보의 혈맹이며 자유시장 경제구조의 모든 표준을 거머쥐고 있는 미국의 그늘을 벗어나기 어렵다.
중국은 중국대로 등 돌리기 어려운 처지다. 한국의 대 중국 수출이 전체 수출의 26%를 차지한다. 2015년 사드 배치이후 중국의 보복으로 남대문, 동대문시장의 불황에서 겪었듯이 선뜻 미국의 대중국 고립에 동참하기는 쉽지 않다.
약육강식은 동서고금이 같다. 춘추시대 정(鄭)나라는 진(晉),초(楚) 두 강대국 사이에 낀 중원의 작은 나라로 33회나 외침에 시달리면서도 전국시대 말기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비결은 큰 나라를 섬기되 작은 나라와도 친선을 유지하는 현명한 처신이었다. 특히 정나라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국정을 담당했던 자산(子産 BC580~552)은 진나라는 따르고 초나라와는 친하게 지내는 ‘종진화초(從晉和楚) 때로는 종초화진(從楚和晉) 외교노선을 취택, 안보와 자주를 지킨 인물로 유명하다.
자산은 평소 ‘소국이 대국을 섬기는 것은 예(禮)다. 대신에 대국도 소국에 지켜야 할 예가 있다.’는 지론을 폈다. 자산은 기원전 549년 패자인 진(晉)나라가 제후국들에게 무리한 헌납을 강요하자 진나라 재상 범선자(范宣子)에게 서신을 보내 <제후들의 재화가 진나라 공실에 쌓이면 제후들은 두 마음을 품을 것이다. 코끼리는 값나가는 상아 때문에 죽는다.> 라고 직언하자 진나라가 기꺼이 공납금을 줄였다.
자산은 또 진나라 사신 한기(韓起)가 옥가락지 한 쌍을 구해 줄 것을 요구하자 거절했다. 유길(遊吉)이라는 대부가 걱정하자 ‘대국이라고 해서 까닭 없는 요구를 들어주면 끝이 없다.’며 못들은 체 했는데 이 사건도 나중에 사신 한기의 사과로 끝났다.
공자는 일찍이 자산을 평하여 “개인행동은 공손하였고 윗사람에게는 공경스러웠고 백성에게는 은혜로웠고 사람을 부리는 데는 옳은 길이었다”고 칭찬했다. 반면에 정나라를 놓고 다툰 진·초 두 강대국은 준엄하게 성토했다. 춘추 242년 동안 진나라가 정나라 정벌 5회, 침입 2회, 정벌 후 정나라 임금을 인질로 잡아간 사례가 1회, 초나라는 정벌 9회, 침입 1회, 그밖에 정나라 사신을 인질로 억류한 사례가 1회다.
춘추는 거의 모든 사례에서 진나라와 초나라 군주의 작위를 삭제했다. 예를 들면 <진나라 사람이 정나라를 정벌했다.(晉人伐鄭)> 진나라는 공(公),후(侯),백(伯),자(子),남(男) 다섯 품계 중 후작(侯爵)국이고 초나라는 자작(子爵)국이다. 그러나 춘추는 군주의 작위를 삭제함으로써 그 사건이 불의를 만세에 전했다. 춘추필법으로 미·중전쟁을 쓴다면 미·중을 어떻게 평가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