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성노동자회 신상아 회장 “중장년 층의 경우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것은 사실”
서혜진 변호사 “‘짧은 치마 입어서’, ‘밤늦게 돌아다녀서’ 등...사건 축소 시켜 2차 가해”
한국여성의전화 송란희 상임대표 “피해자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 사진=픽사베이(pixabay)
▲ 사진=픽사베이(pixabay)
투데이코리아=박희영 기자 | 여성 노동자 4명 중 1명이 직장에서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고, 직장인 10명 중 1명은 사내에서 원치 않는 구애 행위로 고통받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회사 대표인 가해자가 권력을 이용해 비정규직원을 협박하는 등 생계를 위협하는 사례도 있어, 피해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 속에 갇힌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노무사와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민간 공익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 10월 14일부터 21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경제활동인구조사 취업자 인구 비율 기준에 따라 ‘사내 성비위 문제’를 주제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여성 노동자 4명 중 1명(25.8%)은 직장에서 성추행·성폭행을 경험했고, 3명 중 1명 이상(37.7%)은 성희롱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10명 중 1명(11%)은 회사생활을 하면서 원치 않는 상대방에게 구애를 지속해서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성(8.1%)보다는 여성(14.9%)이, 정규직(9.2%) 보다는 비정규직(13.8%)의 응답률이 더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실제 사례를 전한 A씨는 “회사 대표가 저에게 사귀자고 했으나 이를 거절했더니 (대표가) 저에게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 없다’라고 했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원래 맡던 업무는 다른 직원에게 넘어갔고, 대표에 의한 성추행과 폭언도 있었다”라며 “그만두고 싶어도 실업급여조차 못 받을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다니고 있다”라고 말했다.
 
직장갑질119와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2021년 발표한 ‘직장인 성희롱, 괴롭힘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11월부터 2021년까지 접수된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제보 중 ‘성희롱 발생 후 신고하지 않았다’라는 비율이 62.6%로 집계돼 압도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직장 내 성희롱 신고 후 묵인, 방치 등 사업주가 조치 의무를 하지 않았다는 제보 건수는 41.5%이며 징계, 따돌림 등의 불리한 처우를 당했다는 제보는 58.5%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치 의무 위반과 불리한 처우를 모두 겪었다는 응답률은 35.7%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다른 피해자 B씨는 “직장 상사가 사적으로 접근하는 행위가 부담스러워 이를 피하자 ‘(자신을 만나주면) 정규직으로 채용해주겠다’라고 회유했다”라며 “제안을 거절하고 피해 다니자 상사가 저의 행동을 지적하는 이메일을 보내왔고, 이를 견딜 수 없어 도망치듯 퇴사했다”라고 털어놓았다.
 
‘정부가 직장 내 성범죄로부터 잘 보호하는지’에 대한 질의에 ‘그렇지 않다’는 74.5%로 집계됐다. 특히 강남역 살인사건, 신당역 스토킹사건 등으로 인해 여성 노동자들의 응답률(86.5%)이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사내 성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신고 절차 및 후속 대응’과 ‘정부의 성 문제 해결 시스템 결여’가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강은희 직장갑질119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투데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현재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은 이전보다 나아진 경향이 있지만, 직장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 중 일부는 이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많은 회사와 기업이 성폭력 발생 시 대처 방안 매뉴얼을 제작하고, 성폭력 예방 교육을 시행하는 등 성폭력과 관련한 규정이 존재하지만, 막상 피해자가 (성폭력을) 신고할 경우, 조사과정이나 절차에서 피해자 신변이 보호되지 못한다”라며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많은 제보자가 성폭력 발생 시 신고하지 못하는 구조적 환경에 놓여 있다”라고 덧붙였다.
 

사회 구성원의 낮은 성 ‘인지(認知)’ 문제점은 기업과 정부의 과제

▲ 지난 1일 연세대학교 공학원 대강당에서 데이트폭력 고민상담 토크쇼 '당신의 느낌을 믿어요'가 개최됐다. 이날 패널로는 (오른쪽부터)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송란희,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서혜진, 배우 손수현, 싱어송라이터 이랑이 참여했다. 사진=투데이코리아
▲ 지난 1일 연세대학교 공학원 대강당에서 데이트폭력 고민상담 토크쇼 '당신의 느낌을 믿어요'가 개최됐다. 이날 패널로는 (오른쪽부터)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송란희,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서혜진, 배우 손수현, 싱어송라이터 이랑이 참여했다. 사진=투데이코리아
성차별에 대한 구조적 환경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데 있어 ‘성인지 감수성 부족’이 해당 주장에 힘을 실었다. 집단에서 발생한 성 문제 신고 절차를 개선하고, 정부가 매뉴얼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성에 대한 인식부터 바로 잡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 또한 성폭력 및 성희롱 가해자들은 성에 대한 인식이 낮아 이와 같은 사건이 반복하는 것이라고 입 모아 설명했다.

서울여성노동자회 신상아 회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특히 사회 구성원 중 중장년층의 경우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1년 실시한 ‘성희롱에 대한 국민 의식 조사’에 따르면 성희롱에 대한 오해 및 편견(성희롱은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않은 사람의 책임이 크다, 성희롱 피해는 과장되는 경향이 있다 등)은 여성보다 남성이, 특히 연령대가 높을수록 큰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60대 남성과 10대 남성의 성 인식 정도가 낮은 반면, 20대 여성과 30대 여성은 성 인식에 대해 높은 이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이에 신 회장은 가해자가 본인의 언행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해서라는 이유를 가장 크게 꼽았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기업과 국가를 구성하는 개개인 스스로가 성평등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신 회장은 성평등 문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성폭력 관련 내부 매뉴얼을 제작해 배포하는데 끝날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문화를 설립하고 확장시킬 수 있는 제도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 서혜진 대표 변호사 또한 지난 1일 데이트폭력 고민상담 토크쇼 <당신의 느낌을 믿어요>에 패널로 참여해 국민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으로 인해 성폭력 피해자에게 추가로 발생하는 피해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성폭력 사건에 있어 제3자가 문제의 원인을 ‘여자가 짧은 치마를 입어서’, ‘밤늦게 돌아다녀서’ 등 피해자의 탓으로 돌리고, 피해 사실을 축소 시켜 2차 가해를 가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가 성폭력을 대하는 대표적인 인식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토크쇼를 주최한 한국여성의전화 송란희 상임대표는 “무기력, 우울, 대인 기피 등 전형적인 ‘피해자상’이 아직 사회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라며 이를 박멸하기 위해 “사회가 더 많은 피해자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사내 성비위 문제가 비일비재한 현실에서 구조적 성폭력이 없다고 외치는 대한민국의 민낯이 드러났다. 모두가 안전하고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제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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