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커뮤니티 "회사가 항소로 얻는게 무엇??"

▲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제32차 한미재계회의 총회 2일차'에 참석해 고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에 대한 공로패를 전달받은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뉴시스
투데이코리아=김성민 기자 | “대한항공이 ‘항소 검토 중’? 이미 지난주(8월 8일)에 항소장 제출했다”
 
대한항공 ‘사내 성폭행’의 피해자지원연대 측은 “대한항공이 재판 과정을 투명하게 밝히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의아하다는 입장을 밝히며 이같이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2단독(유영일 판사)으로부터 지난 7월 21일 “피고(대한항공)는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판 결과에 대해 대한항공 측은 기자와 통화에서 “항소를 검토 중”이라고 어제(17일) 밝혔다.

반면, 법원 홈페이지 내 사건번호 조회 시스템으로 사건진행내용을 분석한 결과, 10일 전인 지난 8일 대한항공은 소송대리인(법무법인 한결 담당변호사 이경우)을 통해 항소장을 이미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지난 9일 대한항공 소송대리인 측은 보정명령 등본을 받은 상태다.

18일 대한항공 측은 기자와 통화에서 ‘항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어제는 항소를 검토 중이라고 밝히지 않았나’라고 묻자 “사건 조회해서 그렇게 나오면 그런가보죠”라며 일축했다. 항소장 제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재판 중인 과정이라 밝히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이어 대한항공 측은 당시 가해자를 징계하지 않고, 퇴사 처리한 이유에 대해 “피해자가 징계위 개최를 원치 않아 진행한 것이며, 고용노동부에서 작성한 직장 내 성희롱 예방 대응 메뉴얼에 반하지 않는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피해자지원연대 측은 "피해자가 사직에 동의했다고 가정해도 이는 대한항공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착오에 빠지게 함으로써 피해자가 회사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대 측이 주장하는 ‘잘못된 정보’는 대한항공 측이 사건 발생 이후 피해자 A씨에게 “성비위 사건을 해결했던 회사의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미뤄볼 때, 피해 직원이 2차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는 가해자를 ‘조용하게 사직처리’하는 것이 맞다”라며 A씨를 회유했던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대한항공)의 이 사건 강간미수의 가해자에 대한 사직처리는 법률대리인의 검토와 조력을 받아온 피해자인 원고의 의사와 희망을 반영하여 징계의 대안으로서 선택되어 진행된 것이므로, 고용·노동 관계법의 관점에서 위 권고사직에 관하여 어떠한 법률적 논의를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사건에서 원고가 주장하는 민사상 불법행위의 성립에 관하여 피해자인 원고의 동의를 얻고 그 희망을 반영하여 진행한 위 절차가 원고 자신의 사익을 해치는 위법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으며 그렇게 보는 것은 금반언과 신의성실이 원칙에도 반하므로 원고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 17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대한항공 직원으로 추정되는 이용자들이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투데이코리아DB
▲ 17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대한항공 직원으로 추정되는 이용자들이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투데이코리아DB
숨겨야 했나

사내 성폭력 피해자 A씨는 업무와 관련해 소통하자며 호출한 직장 상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2020년 7월 가해자와 대한항공(대표이사 조원태·우기홍)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2021년 1월 가해자의 요청으로 열린 조정에서 재판부의 강제조정을 가해자만 받아들이면서 피고는 대한항공만 남게 됐고, 2년 간 진행된 1심 재판의 결과는 '대한항공의 1500만 원 손해배상금 지급'에 머물렀다.
 
피해자지원연대는 지난 6월 ‘대한항공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엄벌 탄원서(연서명)’를 온라인에 올렸다. 7일 만에 국내외 2,260여명의 피해자 동료 직원과 시민이 연명에 동참했다. 탄원서에 기록된 피해자에게 보내는 응원과 회사, 가해자에 대한 규탄이 최근 재판 결과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 성폭행 사건은 2년에 걸친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다. 성비리 사건에 휩싸였던 다른 기업은 어떨까?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한 여직원은 자신을 성폭행·성추행·성희롱한 혐의로 지난 6월 7일 직원 4명을 경찰에 고소했다. 지난 15일 포스코에 따르면 이 회사는 6월 이후에 직장 내 성폭력 등에 대한 내부 신고를 받아 조사를 거쳐 최근 성희롱과 관련된 포항제철소 직원 2명을 정직 처분했다.
 
또 사건 피해자와 관련 직원에 대한 직·간접 관리 책임이 있는 포항제철소장 등 임원 6명에게 경고나 감봉 등 징계 처분을 했다.

당시 포스코는 김학동 부회장 명의로 두 차례에 걸쳐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대한항공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최근까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특히 피해자 A씨는 이전에도 회사의 미흡한 성비위 사건 처리로 인해 직장 내 괴롭힘, 부당한 인사조치 등의 2차 가해를 겪었다고 토로했다.
 
▲ 중부지방노동청은 대한항공에 ‘성희롱 행위자에 시정지시’, ‘조치 없는 퇴사 처리에 과태료 부과’, ‘직장 내 성희롱 재발 방지 및 상호 존중하는 직장문화 정착을 위해 조직문화 점검’, ‘맞춤 전문 교육실시’, ‘고충 상담 전담자 지정’ 등에 대하여 개선 지도를 통보했다. 자료=피해자지원연대
▲ 중부지방노동청은 대한항공에 ‘성희롱 행위자에 시정지시’, ‘조치 없는 퇴사 처리에 과태료 부과’, ‘직장 내 성희롱 재발 방지 및 상호 존중하는 직장문화 정착을 위해 조직문화 점검’, ‘맞춤 전문 교육실시’, ‘고충 상담 전담자 지정’ 등에 대하여 개선 지도를 통보했다. 자료=피해자지원연대
A씨는 이 같은 사실을 회사에 3차례나 진정한 끝에 조 회장에게 직접 의견서를 제출하고 나서야 소극적인 진상 조사를 받을 수 있었다. 이에 회사는 ‘정황은 공감하나 문제점이 없다’고 통보하는데 그쳤다. 사건에 대해 중부지방노동청은 대한항공에 ‘성희롱 행위자에 시정지시’, ‘조치 없는 퇴사 처리에 과태료 부과’, ‘직장 내 성희롱 재발 방지 및 상호 존중하는 직장문화 정착을 위해 조직문화 점검’, ‘맞춤 전문 교육실시’, ‘고충 상담 전담자 지정’ 등에 대하여 개선 지도를 통보했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대표 항공사가 한 여직원의 성폭행 피해 사실을 알고도 도의적 책임을 다하지 않고, 법적으로 해결하려는 모양새는 '땅콩회항사건'에 이은 ‘갑질 시리즈’를 잇기에 충분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편, 이날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는 본지가 지난 17일 보도한 '대한항공, ‘사내 성폭행’ 회사 책임 판결 불복?...“항소 검토 중” 검토' 기사를 읽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용자들이 ‘대한항공이 항소를 검토하고 있다’는 부분에 대해 도의적 문제점이 있다는 의견을 내세웠다.
 
이들은 댓글을 통해 “대한항공은 항소? 직장 내 성폭력 사용자 책임에 있어 번복(승소)가 매우 엄격하여 거의 불가능한데..”,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는 대한항공!!", "회사가 항소해서 얻는게 무얼까??"라 적으며 문제 제기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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