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소통이 있는 카페, the 다락 - ‘상처받은 영혼들의 작은 쉼터’

[투데이코리아=김태현기자] 휴대폰 가게가 많기로 유명한 부산대 앞거리. 시끌벅적한 거리를 등지고 어둠침침한 건물 안에 들어서자 마치 세상과 단절된 듯 적막감이 밀려온다. 마치 옥상을 오르듯 마지막 계단을 오르자 그곳에 친구네 다락방 같은 카페, 'the 다락'이 보인다.

밖에서는 간판도 잘 보이지 않고, 그나마 건물 계단 입구는 휴대폰 가판대로 반쯤 가려져 있다. 그 흔한 전단지 광고 한번 낸 적도 없다. 게다가 엘리베이터 없는 4층. 계단 오르기 싫어하는 여대생들을 위한 배려도 없다. 이래서 장사가 될까?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다락엄마' 박찬일씨(31)가 반갑게 맞이한다. 한창 손님들과 보드게임 '텀블링 몽키즈'를 하던 중이었다. 아내와 8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이곳을 찾은 조성우씨(33, 재송1동)는 스스로 '5년 단골'이라며 이번에도 '상담'을 받았다고 한다. 카페에서 무슨 상담을?

'the 다락'은 여행카페다. 여행사에 다니던 박씨가 독립해 이곳에 여행사를 차린 것은 2007년, 카페로 리모델링한 것은 작년 12월이다. 여행카페(Travel cafe)라는 개념으로 영업을 해온지 딱 4개월째다. 여행사 직원시절에 인연을 맺었던 고객들 중에는 조성우씨처럼 '단골'로 남아 여전히 여행 상담을 하러 이곳에 오는 이들이 꽤 있다.

카페를 연 후에 생긴 단골들도 있다. 부산대 환경공학과 학생들 몇 명은 거의 과 학회실 드나들 듯 매일 '출석체크'를 한다. '다락엄마'라는 별명도 이들이 붙여준 것. 손님의 대부분은 기존 단골이 데리고 와 이곳을 처음 알게 된 사람들, 다시 그들은 '단골'이 된다. 굳이 광고를 내지 않아도 손님은 꾸준히 늘어간다.

“인연 닿는 이들과 좀 더 최선을 다해 정(情)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박씨는 이곳을 '상처받은 영혼들의 작은 쉼터'라고 소개한다. 테이블은 고작 4개뿐이고 낮에도 어둡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여기저기 널린 쿠션들에 기대어 발 뻗고 앉으면 옆 테이블 대화가 다 들린다. 교수님 '뒷담화'부터 연애고민, 연예인 스캔들, 음악, 정치 이야기까지 혹여나 옆 테이블 이야기가 관심을 끌면 불쑥 끼어들어 한마디 거들어도 되는 분위기.

때로는 테이블 간에 보드게임 한판을 벌이기도 하고, '다락엄마' 주선으로 즉석 미팅이 이뤄지기도 한다. 막차를 놓치면 찾아와 밤을 보내는 이도 있고, 그러다보면 예기치 않게 처음 보는 사람과 밤새 함께 영화를 보는 경우도 있다. 한 공간에 사람들이 있고 소통이 있다.

박씨에게 자신의 상처에 대해 묻자, 대뜸 '날선 관계'라는 말로 여행업에 대해 소개한다.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여행을 마칠 때까지 고객의 불신이 가득해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단다. 그러면 자신도 진심으로 고객을 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 더 잘해줄 수 없었고, 결국 상처로 남는 기억이라고. 'the 다락'은 수익창출보다는 '좋은 인연'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자신과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열었다.

벽과 천장에 빼곡히 붙인 2,000여 장의 사진들은 대부분 박씨가 직접 여행 중에 찍은 것들이다. 해외 유명 관광지 사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자기가 가봤던 곳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카페라지만 메뉴에는 술이 더 많다. 이곳만의 독특한 메뉴가 있는데 그 이름도 희한한 '귤가든'. 단순히 생맥주에 감귤주스를 섞은 술이다. 색이 뿌연 것이 호가든 맥주와 닮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 단골인 환경공학과 학생들이 MT 때 먹던 것이란다.

세상사에 지칠 때면 한번 들러보자. 바깥에는 '여행사' 간판이 큼직하게 달려있다.

위치: 부산대 지하철역 1번 출구에서 부산대 방향으로 200 미터. 문의(051-515-0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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