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부상자에 사과 후 승무원 영웅 만들기 몰두가 이치에 합당
[투데이코리아=강정욱 기자] 몇 년 전의 일이다. 가까운 날짜에 이미 친척 분의 생신이 예정된 상황에서 막역한 벗이 부친상을 당했다. 공교롭게도 두 일은 한 주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어느 곳에 가야할 지 많은 고민을 한 끝에 무속에 조언이 깊으신 집안 어르신께 조언을 구했다. 집안 어르신은 필자의 우문에 본래 초상집이나 경사집에 가면 그와 관련된 신들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두 곳에 모두 갈 수는 없다는 현답을 주셨다.
이어 사안의 경중을 스스로 판단해 결정하라고 덧붙이셨다. 이에 어르신의 조언에 따라 심사숙고한 끝에 친척 분에게 어렵게 양해를 구하고 벗의 부친상에만 얼굴을 비추었다.
이렇게 초상과 경사가 겹치면 어떤 것을 우선해야 할까?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한 이유는 최근 아시아나 항공 사고 수습에서 이와 비슷한 면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18년 만에 발생한 아시아나 사 항공기 충돌사고로 중국인 2명이 안타깝게 사망했다. 동시에 이번 충돌 사고로 사고 항공기에 탑승했던 승무원들은 영웅으로 부각됐다.
아시아나에게도 초상과 경사가 한꺼번에 찾아온 격이었다.
이에 아시아나 측은 중국인 사망자와 관련된 사과를 우선적으로 하기보다는 승무원 영웅 만들기에 먼저 몰두하는 행보를 보였다.
도의적차원에서 아시아나 측은 우리나라에서 대국민 사과를 한 시점과 비슷하게 공식적으로 중국 사망자들에 대한 공식적인 애도를 표했어야 했고 수많은 중국인 부상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했어야 했다.
또한, 사고 발생 직후 사장이 직접 현지로 출발해 현장에서 모든 상황을 진두지휘(陣頭指揮)하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금호 아시아나의 윤영두 사장은 중국인 사망자 2명이 발생했다는 말만 했고 바로 미국행에 오르지도 않았다.
특히 이번 사고가 지난 1993년 목포사고 이후 아시아나에서 발생한 18년 만의 비행기 사고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미국행이 지연된 대목에서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윤 사장은 지난 8일(한국 시간) 오후 5시 25분에야 사고 현장인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한편 사고발생 후 일정 시간이 지나자 미국 현지에서는 미국 연방 항공안전위원회(NTSB)의 주도아래 사고 항공기의 블랙박스 분석을 통한 사고 원인 조사가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사고기를 운행했던 기장이 타 기종으로는 상당한 베테랑으로 인정받았으나 해당 기종 운행 경험이 짧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처음 착륙시도를 했다는 점이 집중조명받아 '조종사 과실론'이 제기됐다.
게다가 충돌 직후 비행기의 속도가 평균적 수치보다 낮았다는 NTSB의 발표가 이어지면서 현지에서 '조종사 과실론'은 기정사실(旣定事實)화 되기 시작했다.
이에 발맞춰 현지 언론 역시 조종사 과실론을 중점으로 보도를 했으나, 국내 언론은 다른 입장차를 견지했다.
항공사고의 특성상 다양한 요소가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하므로 성급하게 원인을 예단할 수 없다는 것이 입장의 골자였다.
이에 호응하듯이 아시아나 측은 미 현지에서 제기되는 '조종사 과실론'에 맞서 '교관 책임론'을 초기에 내세웠다. 교관이 탑승할 시 발생한 사고에는 교관이 모든 책임을 진다는 입장을 전한 것이다.
이에 따라 사고기에 탑승한 교관이 무한책임(無限責任)을 져야 한다는 것이 아시아나 측 주장의 요지였다.
이는 회사 조직내 모든 행동에는 그에 따른 결제서류가 있고 결제권자가 따로 존재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한 듯한 비상식적인 태도였다.
이후 아시아나의 '교관책임론'은 해당 교관의 교관 경력이 짧다는 사실이 언론에 의해 알려지면서 급격히 사그라드는 운명을 맞이했다.
이렇게 여론이 좌지우지(左之右之)되는 동안 중국인 사망자 2명에 관한 문제와 이와 같이 수반되어야 할 아시아나 측의 사과문제는 국내에서 완전히 잊혀진 듯 했다.
하지만 수면 아래에 침잠해 있던 '중국인 사망자 문제'는 한 종편 채널 앵커가 "사망자 2명이 모두 중국인으로 확인됐다. 우리입장에서는 다행"이라는 망언을 방송중에 하면서 급부상했다.
이 소식이 중국 내에 급속히 퍼지면서 이번 사고로 중국인 소녀2명이 사망한 사실이 중국 네티즌들에게 급속도로 확산된 탓인지 이후 중국 네티즌들의 분노어린 성토가 해당 종편 채널에 빗발쳤다. 이에 우리 외교부가 공식 사과 입장을 전달하는 지경까지 사태는 악화됐다.
이와 관련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9일 정례브리핑에서 "최근 국내(언론)의 보도로 인해 논란이 있었다"면서 망언 논란을 간접적으로 거론하며 해당 언론인과 언론사 대표가 사과한 것을 알리며 중국 국민이 사과를 받아들여 주길 희망한다고 언급했다.
외교부의 진화는 적절했지만 아시아나는 늦었다.
외교부 입장이 공개되자 그제서야 아시아나도 본격적인 '중국 민심 달래기'에 나섰기 때문.
이에 대한 일환으로 아시아나 윤영두 사장은 직접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 중국인 유가족들을 만나 진심으로 사죄했다. 하지만 이번 사과를 피해를 당한 중국인 승객들과 유가족들이 받아줄 지는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이번 아시아나의 사과가 지나치게 뒤늦은 감이 없잖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이번 사고 발생으로 사고 항공기의 승무원들이 영웅으로 부상한 것은 분명 초상보다는 경사에 가깝다. 이는 “위기는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익히 알려진 명언을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외국인들이 부상 당했고 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가 난 직후라면 응당 모든 취재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어야 했다. 특히 이번 사고로 두 10대 꿈많은 중국인 소녀는 인생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채 각각 'GO'와 '4444'라는 짧은 메시지만 유언으로 남긴채 세상을 하직했다.
그러나 승무원 자신이 진짜 영웅이라도 된 것마냥 기고만장(氣高萬丈)한 탓인지 일부 언론의 편향된 보도로 초래된 일인지 관련된 인터뷰와 언론보도에서는 사망자와 부상자에 대한 애도를 찾을 수 없었다.
단지 구조 과정에서 그들이 기울였던 노력에만 모든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항공기 승무원들은 재난 상황에 대비해 수많은 훈련을 받으며 이에 따른 메뉴얼을 갖추고 있는 직업이라는 사실을 상기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들은 이와 같은 위험 부담의 대가로 평소에 급여 외 수당을 지급받고 있다.
물론 이번 '영웅' 발언은 한 외신 인터뷰에서 현지 소방국장과 소방관이 한 말에서 인용된 것이다. 게다가 승무원들의 헌신적인 행동이 피해 감소에 일조한 면은 분명 팩트(fact)에 가깝다.
하지만 일부 소방관계자의 발언만으로 해당 승무원을 '영웅화'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위험이 크다. 그리고 칭찬에 인색한 동양문화권과 달리 외국 문화권은 칭찬을 다소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고려해 '영웅 만들기'에 대해 자아성찰을 할 필요가 있었다.
결론적으로 아시아나 항공은 이번 사고 대처에서 사안의 경중을 혼동하는 초보적인 미숙함만 보인 꼴이 됐다.
만약 아시아나 측이 제때 중국에 공식 사과를 전달했다면 종편방송 앵커가 망언을 했어도 단순한 개인의 인성 문제로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망언이 이번사고에 대해 중국인들이 가졌던 드러나지 않던 반감을 밀집시키는 작용을 했고, 이후 중국 네티즌들의 불만이 점화돼 우리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중국에 대한 사과를 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야말로 나라망신이 따로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