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번 늙어보고 싶어요. 부디 삶을 즐기면서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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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은 나날이 저리 많은데, 저한테는 허락하지 않네요. 내 아이들 커가는 모습도 보고 싶고, 남편에게 못된 마누라도 되면서 늙어보고 싶은데, 그럴 시간을 안 주네요. 살아보니 그렇더라고요.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일어나라고, 서두르라고, 이 닦으라고 소리소리 지르는 나날이 행복이었더군요. 살고 싶어서, 해보라는 온갖 치료 다 받아봤어요. 기본적 의학 요법은 물론, 기름에 절인 치즈도 먹어보고 쓰디쓴 즙도 마셔봤습니다. 침도 맞았지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귀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례식 문제를 미리 처리해놓고 나니 매일 아침 일어나 내 아이들 껴안아주고 뽀뽀해 줄수 있다는 게 새삼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얼마 후 나는 그이의 곁에서 잠을 깨는 기쁨을 읽게 될 것이고, 그이는 무심코 커피 잔 두 개를 꺼냈다가 커피는 한 잔만 타도된다는 사실에 슬퍼하겠지요. 딸 아이 머리 땋아줘야 하는데…, 아들 녀석 잃어버린 레고의 어느 조각이 어디에 굴러 들어가 있는지는 저만 아는데 그건 주가 찾아줄까요.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22개월 살았습니다. 그렇게 1년 보너스로 얻은 덕에 초등학교 입학 첫날 학교에 데려다 주는 기쁨을 품고 갈 수 있게 됐습니다. 녀석의 첫 번째 흔들거리던 이빨이 빠져 그 기념으로 자전거를 사주러 갔을 때는 정말 행복했어요. 보너스 1년 덕분에 30대 중반이 아니라 30대 후반까지 살고 가네요. 중년의 복부 비만이요? 늘어나는 허리둘레, 그거 한번 가져봤으면 좋겠습니다. 희어지는 머리카락이요? 그거 한번 뽑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살아남는다는 얘기잖아요. 저는 한번 늙어보고 싶어요. 부디 삶을 즐기면서 사세요. 두 손으로 삶을 꼭 붙드세요.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2. 일본인 미즈노 겐조(水野源三) 씨. 그는 1937년에 태어나 1984년 4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나가노현 사카키라는 작은 농촌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4학년인 11세에 예기치 않은 뇌성마비로 전신마비는 물론 언어 능력도 상실하게 된다. 그로부터 4년 후, 마을에서 전도활동을 하던 미야오 목사를 통해 하나님의 복음을 듣게 되었다. 미즈노 겐조는 성경을 읽으면서, 자신이 살아 있어야 하는 존재의미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했다. 그가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얼굴에 웃음을 지어보이는 것과 눈을 깜박이는 것뿐이었다. 그는 일본어 50음도를 벽에 붙여놓고 어머니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글자에서 원하는 글자에 눈을 깜박여 단어를 만들고 글을 만들었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그가 만든 350편의 시는 한 권의 책으로 엮어져 ‘감사는 밥이다’라는 제목으로 지난 10월 중순 출간됐다. 이 책은 미즈노 겐조 씨의 행복한 아픔과 감사를 가감 없이 솔직하게 표현했고, 그 무엇 하나 자신의 힘으로는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극한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과 가까워지기를 힘썼다. 그리고 밥을 먹듯 자신의 일상으로 하나님과 가족과 그 외 모든 것에 감사했다.
이 두 사람과의 만남은 추수감사주일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다. 이들의 기구하고도 짧은 생애는 나를 하루 종일 멍하게 했다. 엊그제 내린 가을비와 바람이 나무들을 홀쭉하게 만들었듯이 이들의 이야기는 나를 사정없이 매질하며 속을 비워내게 했다. 나는 여태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왔는가라는 물음에 답해지는 부끄러운 자화상에 종일 몸이 옴츠려들 수밖에 없었다.
갈비뼈가 미어터질 것 같은 출근길 지하철과 교통체증의 짜증도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일이다. 지불해야할 세금이 있다면 나에게 재산과 직장이 있다는 것이고, 파티를 하고 치워야할 것이 많다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옷이 몸에 조금 낀다면 그것은 내가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고, 깎아야할 잔디, 닦아야 할 유리, 고쳐야할 하수구가 있다면 나는 나의 집이 있다는 것이다.
주차장 맨 끝 먼 곳에 겨우 한 자리의 주차공간이 있다면 나에게 차가 있다는 것이고,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면 그건 내가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 뒷자리 아주머니의 엉터리 찬송이 영 거슬린다면 나에게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는 것이고 세탁 후 다림질해야할 옷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면 나에게 입을 옷이 많다는 것이다. 온 몸이 뻐근하고 쑤신다면 내가 열심히 일을 했다는 것이고 이른 새벽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깼다면 그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이메일이 너무 많이 쏟아지거나 정리해야할 주소록과 명함첩이 많다면 나를 알고 생각해주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우리가 얼마나 복된 자이고 행복한 자인지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은 생각이나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또 그 사람의 얼굴의 모습과 성격을 바꾼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은 누군가 그렇게 원하던 하루였다.
샬롯 키들리 씨는 해 볼 것 다해봤는데 결국은 소용이 없었고, 결국은 체념하면서 죽음을 받아들였지만 1년을 더 살게 된 것에 감사했다. 그녀의 마지막 소원은 거창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흔전만전 누리고 있는 이 시간들을 조금 더 갖고 싶다는 것 뿐 이었다.
미즈노 겐조 씨는 그는 마지막 소원을 이렇게 적었다. 『‘고맙습니다’하고 소리 내어 엄마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소리 내어 나를 찾아오는 분들께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라고 소리 내어 크게 불러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