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복수하고 싶다" 北에 도움 요청.. 정부·당국 몰랐나

[투데이코리아=오주한 기자] "탈북녀와 (결혼을 꿈꾸며) 사귄 남한 남자다. 끝까지 비밀로 하자 했다. 그런데 딴 남자에게 가 버렸다. 정말로 복수하고 싶다. 죽이고 싶다"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시위와 맞물려 다시금 표면화된 종북(從北)·친북(親北) 진위여부 논란, 중국 북한식당 여종업원 탈북으로 인한 탈북여성 인권 문제가 재점화된 가운데 한 남성이 탈북여성을 "죽이고 싶다"며 북한에 신고한 것으로 22일 본지가 단독확인했다.
종북·친북 세력 존재를 입증하는 계기로, 또 항시 암살·재납북 위협에 노출되고 있는 탈북여성 인권 문제의 심각성이 재차 부상하는 계기로 될 전망이다.
지난 6월 7일, 북한 대남(對南)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 독자투고 게시판에 '남한 노동자'라는 익명의 인물의 글이 올라왔다.
게시물 제목은 "죽이고 싶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조회수는 우리민족끼리에서는 보기 드물게 1400명 이상을 돌파했다.
통상 우리민족끼리 독자투고 게시판에서 남한은 북한식인 '남조선'으로 표기된다. 이 남성은 '남한'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에 따라 한국인으로 위장한 조선족이나 해외교포가 아닌 진짜 한국인임을 드러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남한에 사는 남자다. 탈북녀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었는데 처음에는 남한을 동경해서 왔다고 했다"
"언제 술먹고 고백하는데 실수로 사람을 죽여 도망나왔다더라. '남한에서는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으면 너가 살인한 거 모른다. 이건 끝까지 비밀로 하자'고 했다"
"그런데 바람 나서 나 버리고 딴 남자에게 가 버렸다. <중략> 그 탈북녀에게 정말로 복수하고 싶다"
정황상 이 남성(이하 A)은 탈북여성과 결혼을 꿈꿀 정도로 사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여성이 다른 남자를 선택하자 살해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탈북여성들은 적잖은 수가 홀로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다.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탈북했다 해도 인신매매 조직에 의해 이리저리 팔려나가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 다반사다.
때문에 남한에서는 연고(緣故)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 이에 비례해 살인협박 등 강력범죄에 노출되도 상대적으로 도움을 받지 못한다.
각 경찰서 보안과에서 담당형사들이 배치되지만 1명당 많게는 수십 명의 탈북자를 관리해야 하기에 역부족인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 본지가 확인한 A의 살해협박 사건이 갖는 더 큰 문제점은 A가 '북한'에 치정관계였던 탈북여성 존재를 신고하고 '지원'을 호소했다는 점이다.

북한은 남한 정착 탈북자를 정치범으로 규정한다. 중국행 등 단순탈북의 경우 노동단련대 등에서의 평균 5년 수감 처벌을 내리지만 남한행 탈북자의 경우 봐주지 않는다.
북한은 이들의 실명과 같은 신상정보, 남한 내 거주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 혈안이 된다.
확인할 경우 북한에 남은 가족친지를 인질로 잡아 강제로 편지을 보내거나 전화를 걸게한 뒤 중국으로 꾀어내 납치한 후 재납북시킨다.
재납북된 탈북자는 남한 정부·당국을 비난하는 기자회견에 동원된 뒤 대부분 비참한 말로를 맞는다.
정치범수용소(관리소)에 수감돼 죽을 때까지 강제노동에 시달리거나 비밀리에 처형당한다. 여성의 경우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의 성(性)범죄에 노출되기도 한다.
용케 목숨을 건진다 해도 본인 의사와는 다르게 북한 대남 당국의 스파이가 되어 평생 다른 탈북자들을 납치하는 공작에 동원된다. 그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에 의해 사망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A는 우리민족끼리 게시물에서 결혼을 꿈꿨던 '탈북녀'의 실명은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남한행 탈북자 색출에 혈안이 된 북한이 '기회'를 놓칠 리는 만무하다.
북한 당국은 IP주소 추적 등을 통해 A와 이메일 또는 기존 대남간첩 등 인편(人便)으로 접촉했을 가능성이 크다. 피해 탈북여성의 신상정보가 모두 북한에 넘어갔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나아가 난수표를 전달한 뒤 최근 16년만에 재개된 난수(亂數)방송으로 탈북여성에 대한 증오에 사로잡힌 A를 '탈북녀 사냥꾼'으로 활용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A는 전 날(6월 6일) 독자투고 게시판에 올린 '유인납치 피해자들의 한국상황'이라는 또다른 글에서 "원수님(김정은)의 전사"가 되고 싶다는 뉘앙스의 의지를 드러냈다.
"(탈북자들은) 우선 한국에 오면 국정원에 감금돼 조사받고 또 오랜 기간 하나원에 감금돼 교육받는다"
"교육 수료 후 정착지원금을 받고 사회로 나와 남한 사람들과 섞여 산다. 정착지원금은 절반 이상이 북에서 남한으로 올 때 도와준 프락치(탈북브로커)에게 주어진다"
이미 널리 알려진 것들이라 기밀사항은 아니지만 이러한 세세한 부분까지 북한에 '보고'하는 데서 "김정은의 하수인이 되고픈" A의 의지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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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과 탈북자 간 접촉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점에서 북한에 의한 A 포섭은 심각성이 높다.
2016년 7월 기준으로 국내 최대 탈북자 밀집촌은 인천 남동구 논현동, 서울 양천구 신정동이다. 이곳 아파트 단지 거주자 대부분은 탈북자다.
탈북자들은 보통 낯선 사람을 극도로 경계한다. 하지만 A는 결혼 직전까지 갔던 탈북여성과의 관계를 통해 탈북자 심리를 어느 정도 꿰뚫어 접근이 용이할 것으로 보인다.
탈북자들도 심리적 안정기간(평균 5년)이 지나면 남한 사회에 어느 정도 동화되고 사람을 그리워하게 되기 때문에 A에게 마음을 열 여지가 크다.
잘 알려지지는 않지만 탈북자 납치 피해는 매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분명 이들도 한국 국적의 "한국인"이지만 중국 당국은 탈북자 납북을 눈감고 있는 실태다. 우리 외교당국의 조치도 없다시피 하다.
한 남성과 탈북여성의 치정극으로 드러난 탈북자 위기 실태 앞에 "통일 대박"을 주창한 박근혜 정부와 관계당국의 세심한 주의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로 다가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