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주간


분단된 한반도에서 통일은 설램이다. 간헐적으로 이 ‘통일설램’이 찾아온다. 한반도의 지도자라면 누구나 민족통일에 주춧돌을 놓은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바랄 것이다.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대통령이 남북대화를 주창하거나 북측 지도자와 직접 만나 통일을 논의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한반도를 온통 눈물바다로 만든 역사적 이벤트도 있었고, 꿈에도 그리던 금강산 관광도 한때 가능했었다. 개성에 남북이 공동으로 공업단지를 조성하여 5,6만명의 근로자들이 머리 맞대고 함께 상품을 만들고 달러를 벌어들여 민족 공영에 쓰이는 모습도 보였었다.

금새 한반도에 통일이 찾아와 전쟁 걱정 없는 세상에서 우리 민족끼리 오순도순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그러나 그때마다 빗나갔다. 통일로의 여정이 훤히 펼쳐지는 듯 하다가 어느 사이에 진전 없이 흐지부지 중단되기 일쑤였다.

이번엔 다를까. 아니 다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국민들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북한 김정은의 통 큰 딜, 파격적인 제안이 기대감을 한껏 높여준다. 여기에 미국 트럼프대통령의 화끈한 화답, 그의 참모들까지 속도조절을 요구할 만큼 적극적인 태도가 더욱 그렇다. 문재인대통령의 자세 또한 과거 지도자와 다르다. 투명하고 신속하며 공을 세우려 하기보다 일을 성사시키는데 더 열성적인 모습이 운전대에 앉은 그를 신뢰하게 한다.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이 올4~5월에 잇따라 성사되어 지금의 기대처럼 진전된다면 그야말로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오는 걸까. 문고리는 김정일이 먼저 잡아당긴 셈이다. 그는 왜 이러는 것인가. 북한은 핵 무력을 완성했다고 이미 선언한 바 있다. 그 완성된 핵을 이용해서 최대한으로 이득을 보려할 것이다. 남북한 대화는 물론 북미 수교 등을 통한 체제유지와 경제개발이 절대절명인 상황이다.

북한이 핵개발에 주력하면서 겪은 고통은 이제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미적거리던 중국까지 동참한 대북경제제재로 그들의 돈줄이 말라가고 있을 것이다. 석탄 등 북한의 주종 수출품목 수출길이 막혔고, 40억달러를 조금 넘을 것이라는 외환보유고도 올가을에 가면 바닥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핵개발을 빌미로 인민들에게 참아달라는 호소도 더 이상 지속이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다 강경 압박 일변도의 박근혜정부가 물러나고 대북 대화를 중시하는 문재인정부가 들어섬으로서 자연스럽게 대화환경이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적극적인 김정일과 트럼프, 그리고 운전사 문재인

그러면 트럼프대통령은 왜 이처럼 적극적일까. 북미정상회담 성사와 관련, 트럼프는 “나는 북한이 핵 폐기 약속을 지킬 것으로 믿는다. 북의 비핵화는 이미 손에 쥔 것이나 다름없으며 5월 김정은을 만나 확인하는 절차만 남았다”고 호언한다. 김정은이 궁지에 몰려 이처럼 대화와 비핵화 회담에 임하는 것은 미국의, 특히 트럼프대통령의 전례 없이 강한 대북 압박 때문인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 문재인대통령은 작년 7월 발표한 ‘베를린 구상’에서 이미 핵과 평화체제의 포괄적인 해결방안을 천명한 바 있다. ‘선(先)비핵화 후(後)평화체제’라는 종전의 전략에서 벗어나 남북정상회담에서 종전(終戰) 선언을 이끌어낸 뒤 미국과 중국 등을 참여시키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과거에는 남북정상회담에서 경제협력이나 이산가족상봉 같은 낮은 단계의 교류 협력으로부터 시작하여 종전선언을 포함한 평화체제 문제로의 접근 전략이었다면, 오늘날 문재인대통령의 대화전략은 핵과 평화체제 일괄타결 방식을 표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햇볕과 제재 투 트랙의 대북 대화와 압박전략은 그때그때 상황에서만 보면 실패작이었을지 모르나 사실 오늘의 김정은을 있게 한 원인이다.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북한을 1백퍼센트 신뢰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남북한과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 중국 러시아도 일단 긍정적인 시각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기대를 걸고 지켜볼 일이다.

그럼 통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대박인가 재앙인가. 통일은 대박이고 축복이라는 기대가 대세를 이룬다. 반면 동서독의 통일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점들을 들어 쉽게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재앙론도 만만찮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머리를 맞대고, 또 국제사회의 협력을 이끌어내면서 슬기롭게 대처한다면 두려워할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통일비용과 통일편익
여러 조사에 따르면 국민 70%이상이 통일에는 찬성하나, 통일세 등 비용부담에는 난색을 표명한다. 당연하다. 특히 통일비용에 대한 예측이 연구자마다 들쭉 날쭉이고 그 규모 또한 천문학적이어서 거부감이 먼저 드는 것은 사실이다. 통일 이후 통일 한국을 운영하기 위해 남한 국민이 부담하게 될 비용이 ‘통일비용’이고, 통일 한국이 되어 얻게 되는 모든 형태의 이익을 ‘통일편익’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비용은 우선 남측에서 볼 때 북한에 대한 SOC, 경제재건비용, 제도통합비용 등의 경제적비용과 사회적 혼란과 이념적 갈등 등의 해소를 위한 비경제적비용이 포함된다. 북측에서는 체제전환비용, 인플레이션, 노동력부족 등의 경제적비용과 국가체제의 격변, 사회적 혼란 발생, 소득격차 및 열등감 등의 완화를 위한 비경제적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통일비용 추정을 보자. 국회예산정책처는 2016년에 통일됐다고 가정, 향후 45년간 통일비용은 1경428조원으로 연평균 232조원, 10년간 약2,300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았다. 통일연구원은 수년전 연구보고서에서 2030년에 통일될 경우 향후 20년동안 통일비용으로 3,440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했다. 독일의 경우 1990년 동서독 통일 이후 약20년 동안 3,000조원을 쏟아부었다. 경제력이 우리보다 4배정도 큰 독일도 통일비용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을 감안할 때 우리의 통일비용 걱정은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통일에는 비용 못지않게 통일편익이 큰 것도 사실이다. 통일은 대한민국의 가장 큰 위협이자 취약점인 코리아리스크를 사라지게 함으로써 한반도에 대한 불안감 해소, 이에 따른 외국인투자 촉진과 신용등급 상승, 국방비절감을 가져옴으로써 그 편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날 것이다. 특히 인구가 1억명 가까이로 늘어나면서 규모의 경제가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물론 남한의 자본과 기술력이 북한의 자원과 저렴한 인력이 시너지효과를 낸다면 통일편익은 엄청날 것이다. 작금의 남북대화 움직임을 보면서 통일비용이니 통일대박이니 하는 담론은 너무 성급한 주제일 수 있으나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투데이코리아 논설주간>

필자약력
△전)동아일보사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재정경제부장관 자문 금융발전심의위원
△현)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관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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