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무 회장


5월 5일은 어린이날입니다. 1975년에 공휴일로 지정, 올해는 토요일이라 대체공휴일까지 쉴 수 있게 되었지요. 많은 사람들이 이 날을 애들 데리고 놀러가는 휴일 정도로 생각하고, 정작 ‘어린이’라는 말의 유래나 ‘어린이날’의 제정 경위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기 쉽습니다. ‘어린이’는 1632년 ‘가례언해(家禮諺解)’와 1656년 ‘경민편언해(警民編諺解)’에 ‘나이가 어린 사람’을 뜻하는 말로 나옵니다. 그러나 그 당시는 물론 그 이후에도 이 말은 일상적으로 사용되지 않았고, 대신 어린애, 애녀석, 아들놈, 딸년, 심지어 애새끼 등이 보통이었지요. 즉 어린이의 인격은 존중하지 않고 오히려 멸시, 하대하면서 어른들의 종속물로만 인식했었다는 것입니다.

이 ‘어린이’라는 말은 1920년에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 선생이 ‘어린 아동들을 늙은이,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인격체로 보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번역 동시 ‘어린이 노래: 불 켜는 이’를 발표할 때 처음으로 사용한 말이었습니다. 소파 선생은 1920년대 ‘개벽’이란 잡지를 통해 전통사회에 만연한 어린이에 대한 윤리적 억압을 배제하고, 어린이의 무한한 가능성과 미래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어린이의 권익보호를 위해 본격적으로 활동하였습니다.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선포하고 세계명작 동화집 ‘사랑의 선물’을 출간, 1923년, 순수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하고 ‘색동회’를 조직, 1925년, 동화 구연대회와 아동예술 강습회를 개최, 1928년, 세계아동예술전람회와 소년문제강연회를 개최하는 등등이 그분의 주요 활동이었습니다. 매년 70회 이상 동화 구연을 하였는데, 이야기 솜씨가 워낙 뛰어나서 듣는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고 하지요.

방정환 선생은 1899년에 서울 야주개(현재 종로구 신문로)에서 태어나서 1917년에 3·1운동 민족대표 손병희 선생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그 이듬해 보성전문 법과에 입학하여 청년구락부를 조직하였고, 1919년 3·1운동 때는 독립선언문을 등사판으로 인쇄 배포하다가 체포되기도 했다지요. 1920년 일본 도요(東洋)대학에 유학하여 아동문학과 아동심리학을 전공하였고, ‘개벽’지의 동경 특파원으로서 수필, 시, 소설 등을 발표하였습니다. 1921년에는 “씩씩하고 참된 소년이 됩시다. 그리고 늘 사랑하며 도와갑시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천도교 소년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그때부터 그분은 조국의 미래를 위해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 ‘미래의 희망은 어린이’라고 믿고 1931년 33세로 요절할 때까지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아동문화운동가, 사회운동가로 헌신하였습니다.

1923년 개벽 1월호에 게재된 ‘어린이 예찬’의 일부를 인용합니다. “고운 나비의 날개, 비단결 같은 꽃잎, 이 세상에 곱고 부드럽다는 아무 것으로도 형용할 수 없이 보드랍고 고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을 보아라” “죄 많은 세상에 나서 죄를 모르고, 부처보다도 예수보다도 하늘 뜻 그대로의 산 하느님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해 5월 1일에 발표된 ‘어린이날 선언문’에는 다음과 같은 ‘어른에게 드리는 글’이 들어있습니다. “오늘이 어린이날, 희망의 새 명절 어린이날입니다. 우리들의 희망은 오직 한 가지, 어린이를 잘 키우는데 있을 뿐입니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십시오. 어린이를 어른보다 더 높게 대접하십시오. 어린이를 결코 윽박지르지 마십시오. 어린이의 생활을 항상 즐겁게 해주십시오. 어린이는 항상 칭찬해가며 기르십시오. 어린이를 책망할 때에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자세 타일러주십시오” 어떻습니까? 그 시절에 벌써 이런 정도였다니 참으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어린이날은 애초에 천도교 소년회 창립일인 5월 1일로 정했는데 메이데이와 겹쳐서 1928년에 5월 첫째 일요일로 바꾸었다가 일제의 강압으로 1938년에 폐지되었습니다. 광복 후 1946년 5월 첫째 일요일, 어린이날이 부활한 날짜가 5월 5일이었지요. 1948년에는 윤석중 작사, 윤극영 작곡으로 ‘어린이날 노래’가 탄생하였고, 1957년에는 ‘새싹회’가 조직되어 ‘소파상’을 제정, 시상하게 되었습니다. 1978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방정환 선생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고, 1980년에는 건국포장이 수여되었습니다. 망우리에 있는 소파 선생의 묘소에는 ‘동심여선(童心如仙), 동심은 신선과 같다.)’ 이라는 비석이 서 있다지요. 어린이날을 앞두고 소파 선생의 업적과 사상을 새롭게 재조명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투데이코리아 회장>

필자 약력
△전)농림수산부 기획관리실장
△전)세계식량농업기구(FAO)한국협회 회장
△전)농어업농어촌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
△전)한국농어촌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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