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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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기 부회장장마철에 태풍까지 불어오면서 집중호우가 내려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농작물 피해가 많이 발생했다. 제7호 태풍 ‘쁘라삐룬’이 우리나라에 직접 상륙하지 않고 동쪽으로 비껴가 그나마 걱정했던 수준보다는 피해가 덜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집중호우를 동반한 태풍에 큰 뚝이 무너지고 경작지와 거주지가 물에 잠기는 물난리를 겪는 경우가 잦았지만 그동안 물관리 등 재해재난 대책에 힘써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위력적인 태풍이 한반도를 직접 강타할 경우를 상정하면 아직 대응력이 크게 못 미친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기상이변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 집중호우에 대비한 물관리와 기반시설 강화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은 수질관리라는 측면보다는 물관리에 중점을 둔 초대형 공사였다. 한강과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 4대강과 섬진강에 16개의 보(洑)를 설치하고 댐과 저수지를 만들어 홍수와 가뭄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22조원이 넘는 사업비를 투입했다. 사업목적에 생태복원과 수질개선이라는 명분도 내걸었지만 실상은 물관리에 우선을 두었다.
이명박 정부가 물러날 즈음 감사원은 4대강 사업에 대한 2차 감사에 나서 공사비 낭비와 무리한 공기단축, 부실 설계를 지적했고 최근 녹조발생과 수질 악화에 따른 비난 여론이 높아져 급기야 16개 보를 모조리 헐어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6월부터 1년간 16개 보 가운데 10개 보 수문을 개방해 분석한 결과 녹조가 크게 줄었다는 보고서를 지난 달 29일 발표했다. 수문을 완전 개방한 금강 세종보와 공주보 영산강 승촌보 등 3개소는 개방 전에 비해 조류의 엽록소 농도를 보여주는 클로로필-a가 37~41% 감소했다고 전했다. 보를 개방하면서 물 체류시간이 29~77% 감소하고 유속이 빨라진 덕분에 수질이 좋아졌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올 하반기 나머지 보를 추가로 개방해 관찰한 다음 내년 6월 ‘국가 물관리위원회’를 구성, 보 철거 등 처리방안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환경부가 주도한 이번 발표를 보면 수문을 열었더니 수질이 좋아졌다는 내용만 있을 뿐 홍수나 가뭄예방에는 어떤 영향을 주고 주변 경작지와 지하수에 가져올 변화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수문을 열어 고인 물을 흘러 보내면 수질이 좋아진다는 사실은 구태여 대규모 실험을 해보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다. 4대강 인근 주민과 국민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부분은 ‘밥 먹으면 배부르다’식의 뻔한 소리가 아니라 수문을 완전 개방하거나 보를 헐어낼 경우 홍수와 가뭄에 미칠 영향에 있다. 또 4대 강 유역에 들어선 비닐하우스와 농지는 어떻게 되고 지하수 수위는 어떤 변화를 보일지에 있다.
한강에 이포보와 여주보 등이 들어서면서 강변 경작지에서 채소류 등을 경작하던 일부 농민들은 이를 포기해야 하는 난관을 겪었다. 반대로 자주 물난리를 겪어온 인근 주민들은 돌아가던 물길이 바뀌어 물난리 걱정에는 벗어나는 큰 혜택을 보았다. 보를 완전개방하거나 헐어내게 되면 수위가 바뀌고 물길이 달라져 인근 주민들은 또 다른 난관을 겪게 될 수 있다.
이번 수문개방 관찰 과정에서도 지하수 수위가 내려가 농사짓기가 어려워진 농민들이 강력 반발해 일부 지역은 수문개방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주민들의 피해 민원이 30여건 이상 제기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환경단체들은 수질이 악화돼 부분 수문개방으로 미흡하다며 상시 완전개방이나 철거를 요구하지만 대부분 주민들은 농업용수 확보와 홍수 및 가뭄 대비를 위해 보를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수문 개방의 수질개선 효과만 강조하는 보고서를 낸 것을 보면 보 철거를 염두에 둔 발표가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이어 감사원은 지난 4일 서울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4대강 사업성과를 분석한 결과 홍수피해를 막는 치수효과의 편익이 ‘0원’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스스로 ‘치수효과를 분석할 만한 적절한 여건과 자료가 부족했다’고 밝혔다. 감사원 평가 자체에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4대강 사업에 부실요인이 크다면 면밀히 조사해 이를 시정하고 책임자를 가려내 후일을 경계하는 게 타당하다. 그러나 과거 정부가 시행한 사업을 적폐청산으로 몰아 주민 요구를 외면하고 무리하게 철거하려 한다면 그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으리라고 본다. 수질 개선을 위한 수위조절과 시설보강에 나서면서 보 기능을 효과적으로 살릴 방안을 모색하는 지혜가 아쉽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