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논설주간.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이라는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는 사과를 두 번째 했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2.87%(240원) 오른 8590원으로 결정된데 대해 지난 14일 “대통령으로서 대국민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김상조 정책실장을 통해 말했다. 대통령은 작년 7월에도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목표달성에 실패했다며 사과했었다.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뒤늦게나마 인식하고 속도조절에 나섰음을 의미한다. 김 실장은 설명에서 “지난 2년간 최저임금은 ‘표준고용계약’ 틀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긍정적인 영향을 줬으나, 영세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 표준고용계약 틀 밖에 있는 분들에게 큰 부담이 됐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반성했다.
그는 이어 “건강보험료 지원 등을 통하여 보완책을 마련하고 충격 최소화에 노력했지만 구석구석 다 살피기에 부족한 점이 없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책 실패를 자인(自認)한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이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폐기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비롯, 주 52시간 근무,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화 등 사회적으로 어려운 계층을 위한 정책 중심의 ‘사람 중심 경제’(J노믹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핵심이다.
이들 주요 정책 추진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과 반발이 표출됐고, 사회적 갈등 또한 깊어졌다. 이들 정책의 긍정적인 효과도 많았겠지만 부정적인 목소리가 더 컸던 것은 정책 수립과 추진과정이 치밀하지 못했고, 현장을 경시한 정책당국자들의 자세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J노믹스의 원설계자로 김광두 서강대 석좌교수가 꼽힌다. 그는 문재인 대선캠프 경제팀의 좌장 격이었으며, 주요 공약 마련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는 대통령이 의장인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으로 정책입안과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빛을 보지 못하고 물러났다.
문 대통령 취임 후 2017년 12월 27일 열린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대통령은 “소상공인 중소기업 등에서 일자리 축소 없이 최저임금인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결과는 그 반대로 나타났고, 대통령의 사과로 이어진다.
선(善)한 의지, 그러나 세련함이 부족
김광두 교수는 “현 정부의 선(善)한 의지는 인정하지만 세련됨이 부족했다” “현 정부가 정책을 원(原)설계에서 많이 바꾼데다 실행 과정에서도 우리가 처한 시장경제질서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7월16일자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아픈 지적이다. 의도는 좋지만 이를 시행 추진하는 정책당국자들의 무능 때문에 긍정효과보다 부정효과가 더 두드러진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J노믹스의 설계자이면서도 비판론자인 김교수의 지적을 이 정부가 귀담아 듣지 않는다면 지난 2년여의 시행착오가 거듭될 공산이 크고, 그런 와중에서 상대적으로 힘든 계층의 어려움만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최저임금 정책의 문제와 관련, 초기 이 정책을 주도한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문제점을 꼽는다. “...장전실장은 원래 기업 내 분배 쪽에 관심이 더 많다보니, 분배에서 노동자가 너무 적게 받는게 아닌가, 그걸 고치는게 정의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인식이 조금 정확하지 못했던 게 우리나라는 영세 기업이 엄청 많다. 그들의 소화능력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 나타나는 부작용도 일자리 안정자금을 풀어 도와주면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한 게 아닌가..”라는 것이 김 교수의 지적이다.
사람중심 경제를 편다는데 왜 서민층은 더 힘들어 지는가. 원설계에서는 사람의 능력을 올려주면 근로자는 소득이, 기업은 경쟁력이 올라간다. 기업 경쟁력이 오르면 일자리가 늘어난다. 이렇게 가자는 것이 사람중심 경제인데 실제로는 임금 보조해주고 올려주는 식으로 바뀌었다.
임금을 올려주더라도 교육이나 직업훈련 등 사람에 대한 투자가 병행됐어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했다는 것이 김 교수 평가다.
누가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느냐에 따라 국가 경제는 방향이 갈린다. 지도자가 누구에게 이 중책을 맡기느냐가 중요하다. 잘못된 이념을, 아니 현실과 동떨어진 이념을 가진 사람이 주요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할 때 시행착오는 뻔하다. 시행착오 과정에서 피해는 어려운 계층일수록 더 크다.
필자약력
(전)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