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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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충식 편집국장규제 샌드박스가 시행된지 6개월이 지났다. 정부가 규제 샌드박스를 시행한 이유는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동안 기존 규제를 면제, 유예시켜 줌으로써 그동안 규제로 인해 출시할 수 없었던 상품을 빠르게 시장에 내놓을 수 있도록 한 후 문제가 있으면 사후 규제하는 방식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내놓은 규제개혁 방안 중 하나로 채택했다.
지난 16일 국무조정실은 규제 샌드박스 시행된지 6개월만에 총81건의 과제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주요성과 중 금융혁신 분야가 46%를 차지했고 중소기업이 전체의 80%를 차지했다. 또 공유경제, 블록체인, 빅데이터, 5G 등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의 시험 무대로 사회적 갈등과제 등 오랜기간 해묵은 과제들을 개선하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다소 아리송하다고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공유경제를 비롯한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의 시험무대라하면 이들이 기술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을 열어주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국내에서 공유경제의 핵심 사안으로 떠 오른 ‘타다’ 서비스의 경우 기득권층이 양보하지 않아 공유경제의 새로운 서비스가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정부가 앞으로 모빌리티 플랫폼 사업자도 제도권 안으로 편입해 운송사업 허가를 내주기로 하면서 플랫폼 사업자는 사업 규모에 따라 수익의 일부를 사회적 기여금 형태로 지불해야 한다. 정부는 이 돈을 이용해 매년 일정 규모의 택시면허를 사들이고 플랫폼 사업자에 배분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번 발표는 결국 렌터카를 활용한 운송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타다’는 제도권에 들어와 합법 영업을 하려면 차량 구입비, 면허 매입비 등 최소 1000억원이 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는 정부가 공유경제를 ‘정치논리’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앞선다. 타다에서 영업하는 사람들보다 택시 기사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논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정부의 이런 정책에 대해 이민화 교수(KAIST)는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의) 4차 산업 혁명은 죽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민화 교수는 “공유경제는 4차 산업혁명의 또 다른 이름이다. 공유를 통하여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새로운 혁신을 촉발하여 사회적 가치창출과 가치분배를 선순환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이 본질”이라고 설명하고 “기존 사업자의 지대(地代)추구에 정치권이 동조하는 환경에서 혁신의 씨앗이 자랄 수 없음은 불을 보듯이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방안이 발표되자 타다를 운영하는 VCNC 박재욱 대표는 “기존 제도와 기존 이해관계 중심의 한계가 있는 것을 보인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어 “기존 택시 산업을 근간으로 대책을 마련한 까닭에 새로운 산업에 대한 진입장벽은 더 높아진 것으로 생각한다”며 “향후 기존 택시 사업과 새로운 모빌리티 산업을 포함해 국민편익 확대 차원에서 새로운 접근과 새로운 협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규제로 인해 4차 산업 혁명의 대명사로 떠오른 ‘공유경제’의 흥망이 기로에 선 가운데 지난 17일 대한상의가 주최한 제주포럼 개막식에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규제가 기업인의 발목을 옭아맨다”고 호소하며 “한국 경제가 성장하려면 규제 플랫폼부터 재점검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제가 영국 재무장관을 만나서 규제 샌드박스를 설명했더니, 한국이 영국보다 광범위하게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한 사실에 대해서 놀라더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자랑스럽게 전했다.
박용만 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는 (규제 개혁을) 많이 했다(고 하고), 기업 입장에서는 체감하는 변화가 많지 않다고 한다”며 “이유는 그동안 (정부가)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규제만 없앴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기업과 정부관료와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나는 시각을 보여준 사례다.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기존의 장벽을 넘지 못하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가 없을 것 같다. 의료계가 반대하는 원격의료 서비스나 택시업계가 반대하는 공유 차량 서비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은 정부가 기존 기득권자 편에서 정치논리를 펼 때가 아니라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미래의 먹거리를 준비하는 기업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기다.
그런데 정부의 모습을 보면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게 문제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정부의 역할이 기업죽이기로 보여서야 되겠나? 규제하나 풀었줬을 뿐인데 박용만 회장이 "공무원 업고 다니고 싶다"고 한 말은 역으로 정부의 규제로 인해 사업을 펼칠 수 없는 환경이 지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를 해소하지 않으면 미래의 먹거리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