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경 작가
▲ 조은경 작가

 

경북 영천의 용전리로 귀촌한 지 꼬박 2년이 지났다. 처음 일 년은 자연의 품에 안겨 자못 어리둥절하고 신기한 한 해였다면 다음 일 년은 앞으로의 생활 계획을 숙고하면서 지냈던 한 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부부는 조상께서 물려주신 3500평의 땅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로, 결론적으로 합의했다. 그 일을, 여생에서 이루고 싶은 평생의 사업으로 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 땅에 갖가지 과일 나무를 심어 과일 농원을 만들어 누구나에게 무료로 개방하자는 계획이다. 귀촌 3년차가 되는 이제, 조성하기로 예정한 농원의 이름을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원래는 남편의 법명을 따서 –동림 농원-이라 하기로 하였는데 오솔길을 내고, 그 길 가에 갖가지 꽃을 심고 싶은 내 계획대로라면 –동림 정원-이라고 해야 할 듯도 싶었다. 하지만 남편은 쉽게 동의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타협안으로 절충한 것이 –동림원-이다. 한자로는 -東林苑-으로 쓰기로 하였다. 이름이 정해지자 남편도 나도 만족했다. 우리가 사는 고경면이 영천시의 동쪽에 있어 2중의 의미가 돋보여 흐뭇하였다.

2019년 올해 한 해는 동림원 예정지 주변으로 울타리 대신 조경수를 심을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지난 늦가을 아주 운 좋은 일이 생겼다. 건설 일을 하는 남편의 지인 한 분이 아파트 재개발 현장에서 치워야하는 나무들을 무상으로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1차로 작은 소나무 다섯 그루와 호랑가시나무 두 그루가 오손도손 중장비에 실려 왔다. 크리스마스 나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호랑가시나무는 흔한 나무가 아닌데 연말을 앞두고 우리 식구중 하나가 된, 우연 아닌 우연이 예사롭지 않았다.

행운의 일곱 나무를 심고 보니 드디어 동림원의 첫 삽이 떠졌다는 실감이 났다. 내친 김에 아름드리 팽나무와 150살이 넘어 보이는 위엄 있는 소나무를 적당한 자리에 옮겨 심으면 어떨까? 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 두 나무는 동림원 예정지 끝 부분 두충나무 숲 속에 버려진 듯 숨어 있었다. 인부들이 말하길 그 큰 소나무는 임자만 잘 만나면 몇 천 만원 값어치가 되는 나무라고 한다. 또 팽나무는 한반도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보호수 중 하나란다.

조상님들의 시대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지만 변방에 버려져 있던 두 그루의 나무를 동림원의 중심 부분으로 옮겨 심는다고 마음먹으니 생각만으로도 벌써 짜릿했다. 일을 맡게 된 분은 그 쪽 업계 용어대로라면 ‘극한 작업’을 거쳐야 이 두 나무를 ‘무사히’ 옮길 수 있다고 했다. 이곳에 귀촌한 지 1년이 지난 그 때라도 두 나무의 가치를 알아본 것이 다행스럽고도 감사하다.

이 두 나무의 이식 작업은 추운 겨울의 한 가운데인 지난 1월 25일부터 시도하게 되었다. 동면 상태로 들어가 있는 그 시기가 나무에게 가장 피해를 적게 주면서 옮길 수 있는 때라는 것이다. 소파에서 곤히 잠 든 사람을 깨지 않도록 조심해서 침대로 옮겨 눕히는 작업을 상상하면 될 것 같다. 200톤 짜리 크레인이 동원되는 등 힘든 작업이 계속되는 와중에 무사히 두 나무가 옮겨졌고 여름에 이르는 지금까지 무난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림원 예정지의 중심에 옮겨진 나무들은 하늘을 우러러 받치듯 큰 키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동네 사람들은 –이 나무들이 그 구석진 곳에 있었단 말야? 우린 있는지 알지도 못했는데...- 라고 말한다. 길을 지나갈 때마다 나는 두 나무를 향해서 가슴에 손을 모은다. 탈 없이 자리 잡아 방문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기를 비는 마음 가득하다.

이럭저럭 봄이 되어야 시작하려던 일들이 이미 출발이 되어 버렸다.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풀려 가는 듯싶다. 매듭진 실타래의 한 끝이 스르르 풀리듯 앞으로의 일들도 잘 풀려갈 것 같다. 아마 우리가 하려는 일이 자연스럽게 주위 사람들의 감응을 이끌어 내는가 보다.

그렇게 보면 남편은 정말 운 좋고 복 많은 사람이다. 복 많은 사람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 또한 운이 좋다. 별장을 직접 소유하는 것 보다 별장을 가진 친구와 친한 것이 더 좋다고 하지 않는가? 부부 사이라면 더 좋다. 남편의, 또는 아내의 복을 공짜로 나눠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 생애를 관조해 보면 남편은 어렸을 적에는 어지간히 복이 없었다. 아기일 때 부모를 다 잃어서 두 분의 얼굴은 사진으로만 알 뿐이며 첫 번째 소생이라 당연히 형제도 없었다. 연로하신 조부모가 거둬 주시지 않았으면 생존 자체가 어려웠을 정도로 복이 없었다. 그러니 사람의 일평생을 따져 본다면 덧셈, 뺄셈, 합해서 대충 복의 정도가 비슷비슷할 것이라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나로 본다면 부모님은 계셨지만 떨어져 산 적이 많은데다 형제가 많아 특별히 사랑받고 컸다는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내가 어린 시절에 받은 교육이 유별나고 특수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혜택 받고 성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 복을 많이 받았지만 무지 때문에 복이 복인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깨닫지 못했어도, 인정하지 못해도, 복은 복인 것이다. 그러므로 주관적인 평가와는 별도로 평생의 복은 개인에게 여러 방면으로 이미 많이 주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복 받았지만 자기가 원하는 분야가 아니어서, 그 복을 무시하고 싫어하는 사람에게 남은 세월 동안 또 다른 복이 찾아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미 많이 받았기 때문에, 원했던 아니했던 간에, 남은 것은 불운이 될 확률이 크다.

그러니 지금 가지고 있는 작은 행운에라도 불만을 품지 말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자.

아껴가며, 주위의 많은 사람에게 그 복을 누리는 행운을 나눠 주고 싶다.

<작가>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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