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생활과 직결된 정책, 수단 아닌 국정 최우선 과제

▲ 김성기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정부와 여당이 지난 추석명절을 앞두고 ‘민생 경제’를 들고 나왔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으로 출렁거리는 반발여론을 잠재워 추석 민심을 다독여 보자는 속셈으로 보인다. 상가와 전통시장이 썰렁할 정도로 이미 경기가 심각하게 추락해 휴폐업한 점포들이 즐비한 판국에 갑자기 민생을 운운하는 모습이 어색하기 짝이 없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을 비롯해 시장기능에 역행하는 정책들이 잇달아 추진되면서 민생이 걷잡을 수 없는 내리막 길로 들어선지 오래다. 급격한 최저임금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가 고용을 위축시키고 식당, 소규모 점포 등 자영업자들을 한계 상황에 몰아넣었다. 중소기업 가동률이 급락하더니 미-중 무역마찰로 수출이 위축되면서 대기업들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한-일 무역갈등의 부정적 영향이 점차 커져 경제가 안팎으로 난관에 봉착했다.

정부는 고용 부진과 경기 위축이 심각해지자 공공 일자리를 만들거나 보조금을 늘리는 등 재정 투입을 확대하는 정책에 급급할 뿐 시장기능 회복을 통한 근본적인 경제 대책에는 미흡했다. 정부는 지난 8월 고용동향에서 고용률(61.4%)과 실업률(3.0%)이 개선돼 신규 취업자가 45만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신규 취업자는 대부분 60세 이상(39만1천명)이 차지했고 30대와 40대 취업자는 오히려 감소했다. 공원과 가로청소 등 공공부문의 단기 일자리가 취업자를 올리는 데 영향을 준 셈이다. 게다가 지난 8월 물가 상승률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서 디플레이션 조짐까지 보이고 수출은 9개월째 감소세다.

내년 예산안은 513조원의 ‘수퍼 예산’으로 편성됐다. 대내외 시장이 모두 어려운 여건에서 재정을 늘려 돈을 많이 쓰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수퍼 예산을 편성하면 대규모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고 국가채무 비율이 급등해 결국 세금을 더 걷어 구멍을 메워야 한다. 지난해 우리 국민의 조세부담률은 26.8%로 18년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재산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에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등 준조세 부담까지 늘어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위협하고 있다. 정부는 세금으로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있지만 투자, 소비 등 민간의 경제활동은 위축돼 오히려 경제회복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동안 소주성에 탈원전 등 여론반발을 외면하고 시장기능에 역행하는 정책을 강행해온 정부 여당이 조국 장관 임명으로 뒤숭숭한 민심을 달래겠다며 새삼 ‘민생 경제’를 외치는 심사가 되려 민심을 들쑤시고 있다. 국민 생활, 생존과 직결되는 민생은 정부가 늘 세심하게 챙기고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 목표이어야 한다. 조 장관 임명을 둘러싼 갈등으로 악화된 여론을 ‘민생 경제’를 내세워 달래겠다는 발상은 절박한 민생을 우는 아이 달래주는 장난감쯤으로 인식하는 게 아닌지 되묻고 싶다.

민생은 어르고 달래는 대상이 아니다. 백성이 먹고사는 문제는 예로부터 나라의 존립을 좌우하는 기본으로 여겨져 왔다. 얄팍한 진영논리에 이용할 수단이 아니라 시종여일 신중하게 챙기고 무겁게 여겨야 할 과제다. 민생을 당리당략이나 정쟁의 수단쯤으로 인식하는 발상은 오히려 여론을 악화시킬 뿐이다. 여당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반일감정을 앞세워 지지표를 결집하고 남북관계 개선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내면 유리한 여론을 조성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 같다. 그러나 민생이 어려워질수록 국민은 역대 주요 선거를 통해 그 책임을 분명히 물었다. 수사는 검찰이 하고 검찰개혁은 조 장관이 하고 또 민생은 누가 한다는 식의 역할 배분이 참 한가한 처방으로 들린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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