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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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부 유한일 기자.지난주 정부가 국가 역량을 결집해 인공지능(AI)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내용의 ‘AI 국가전략’을 발표했다. 정부는 ‘IT 강국을 넘어 AI 강국으로’라는 비전으로 2030년까지 디지털 경쟁력 세계 3위, AI를 통한 지능화 경제효과 최대 455조원 창출, 삶의 질 세계 10위를 목표로 설정했다. 이를 위해 3대 분야 9대 전략과 100대 실행과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의 말대로 지금 세계는 AI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산업과 사회 전반에 걸친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과거 산업화 과정에서 기계가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체했다면 이제는 AI가 인간의 지적 기능도 수행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AI가 앞으로 모든 영역에 걸친 패러다임 변화를 촉발할 것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이미 전 세계가 AI 기술 우위를 점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한국의 AI 경쟁력은 주변 선진국들보다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얼마 전 발표된 한국경제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AI 인재 경쟁력은 미국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일본과 중국 등 경쟁국에도 뒤처져 있는 상황이다.
비록 우리는 후발주자지만 정부가 국가 차원의 AI 경쟁력 확보에 두 팔을 걷어 부친 건 긍정적인 신호다. AI 국가전략의 과제와 목표가 체계적이고 차질없이 추진된다면 우리나라의 AI 경쟁력은 빠르게 신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AI 국가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AI 발전의 필수 조건인 ‘데이터’를 묶고 있는 족쇄를 풀어줘야 된다는 건데, 가장 실질적인 법안인 ‘데이터 3법’이 1년 넘게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데이터 3법이란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의 개정안이다. 데이터를 자유롭게 활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인 개인정보보호와 관련해 중복 규제를 없애고, 데이터 활용 범위를 명확하게 함으로써 기업이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폭을 넓히는 것이 골자다.
데이터는 AI를 학습시키고 고도화하는 핵심 요소이자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다.
예를 들어 사물이나 데이터를 군집화하거나 분류하는 데 사용되는 ‘딥러닝’은 사람이 물건이나 사진을 구분하듯 AI가 데이터를 구분해 분류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양질의 데이터를 많이 수집해 AI를 학습시켜야 하는데, 현재 국내 데이터 관련 제도로는 개인정보보호로 인해 대규모의 데이터를 활용하는 데 제한이 있다. AI를 학습시킬 재료가 부족한 셈이다.
데이터 3법은 AI를 비롯해 드론, 바이오헬스, 핀테크 등 4대 신산업 발전을 가로 막는 ‘대못규제’로 꼽힌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신산업 규제트리와 산업별 규제사례’ 보고서를 보면 4대 신산업 19개 세부분야에서 63%에 달하는 12개 분야가 데이터 3법에 의해 막혀있다.
AI는 4차 산업혁명의 ‘두뇌’라고 불린다. 미래 산업을 구현하고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똑똑한 두뇌를 가져야 한다는 건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AI의 원유인 데이터를 수집조차 못하게 규제하고 있는 현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정부는 AI 국가전략에 양질의 데이터 자원 확충을 위해 공개 가능한 공공데이터를 전면 개방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데이터 개방·유통 계획도 결국 데이터 3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그 규모가 제한되고 한계에 직면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산업계와 학계에서는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해달라며 국회에 데이터 3법 통과를 강력하게 촉구해왔지만 희망고문만 이어지고 있다. 20대 국회 여야 대표는 지난 11월 데이터 3법을 민생법안으로 보고 신속한 법안 처리를 시도하겠다고 했지만 정국 경색으로 현재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데이터 3법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법안에 허점이 있어서가 아니다. 여야 이견이 없는 비(非)쟁점법안이지만 정치적 충돌로 막혀있다. 만약 올해도 처리가 무산될 경우 데이터 3법은 통과를 위해 1년 이상을 더 기다려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의 AI 경쟁력은 경쟁국에 뒤처져 있다. 국가 차원의 전략도 발표되긴 했지만 늦은 게 사실이다. 이제서라도 앞서 나가는 주자를 잡기 위해 정부는 달릴 채비를 마쳤지만 정작 국회에서 발목을 잡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 AI 국가전략은 본격 실행된다. 데이터 3법이 통과되지 않는다고 AI 국가전략이 마비되는 것은 아니지만, 통과될 경우 AI 국가전략과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올해가 며칠 남지 않은 오늘도 아수라장인 국회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그래도 계속 기대를 해본다. 데이터 3법 통과로 AI 국가전략이 가속화할 수 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