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방안 빠진 자화자찬 대책에 의구심 커져

▲ 투데이코리아 김성기 부회장.
새해들어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여당 인사들이 경제전망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다분히 오는 4월 총선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이지만 내용은 딱히 잡히는 게 없다. 문 대통령은 2일 대한상공회의소 신년회에 참석, 권력기관 개혁과 경제성장을 새해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권력기관 개혁에 대해서는 법무·검찰을 겨냥해 분명한 수단과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경제성장에 대해서는 신산업육성과 규제혁신이라는 종전과 비슷한 방향을 제시하는 데 그쳤다.

문 대통령은 평택·당진항에서 열린 친환경차 수출행사에도 참석해올해 세계경제와 무역 여건이 지난해보다 좋아질 것이라며 지난달 수출감소율이 7개월만에 한자릿수(-5.2%)로 줄었다는 수치를 제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수출이 호전세로 반전하고 있다”며 지난달 대중국 수출이 14개월 만에 증가세로 바뀌었다는 평가를 했다. 여당 관계자는 지난해 물가 상승률이 54년 만에 가장 낮은 0.4%에 그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고 강변했다.

경제가 주체들의 심리에 따라 움직이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경제통계를 긍정적으로 해석해 여건을 호전시키려는 정부·여당의 다급한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자료의 기본 흐름을 호도하고 보고 싶은 부분만 과장하여 진단을 왜곡하는 주장은 경제회복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경제주체들의 판단을 그르쳐 걸림돌이 될 뿐이다. 디플레이션 조짐으로 우려를 낳고 있는 0%대의 침체형 물가하락을 정부의 성과로 포장하려는 주장은 쓰디쓴 헛웃음을 짓게 한다. 수출이 13개월 연속 마이너스로 떨어진 현실에서 기저효과로 나타난 ‘수출 감소율 한 자릿수’를 회복세라고 한 발언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명목성장률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저수준으로 급락했는데도 정부는 정책의 일관성이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경제현장은 활력을 잃어 기업들의 의욕 마저 찾기 어려워졌다. 제조업은 이미 중국 등 경쟁국에 밀려 가동률이 떨어지고 지난해 주요 대기업의 영업이익은 전년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 음식점과 상가 등 중소상인들의 터전은 영업부진으로 폐업한 곳이 눈에 띄게 늘었다.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억지가 되레 부아를 지를 뿐이다.

우리 경제는 ‘새해에는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격려와 기대만으로는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에 빠져 있다. 정확한 현실 진단과 이에 맞는 처방이 적시에 따라야 탈출이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정부 대책을 보면 진단부터 잘못돼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규제혁파와 혁신성장, 공정을 강조하지만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구체적인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상반기에 예산을 쏟아부어 정부 주도로 경제를 끌어가겠다는 대책 정도가 고작이다. 그나마 경제가 어렵거나 선거를 앞둔 시기에 늘 들어본 소리다.

중동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국제유가가 급등하는 등 대내외 여건이 다시 악화되는 절박한 시기다. 정부가 대통령 공약이나 이념 프레임에서 벗어나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대다수 경제전문가와 기업인들은 지금까지 성향에서 과감하게 선회한 시장친화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새해 인터뷰에서 “경제가 정치에 휘둘리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경식 경총회장은 정책 기조가 기업의 활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에너지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이 강력히 추진해온 탈원전을 과감하게 포기해 상징적인 정책 선회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지금까지 정부가 줄곧 강경기조를 이어온 시책이지만 이를 포기함으로써 결단을 보여 줄 때 문 대통령 임기 후반기의 경제살리기가 가능하리라는 전망이다. 기업인들은 주 52시간 근로제를 대체할 유연근로제를 더욱 활성화하고 성과와 임금체계를 연계하는 내실 있는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2007년 노무현 정부 임기 말은 세계경제가 위기 전야로 치달으면서 국내경제도 심각한 어려움에 빠져들던 시기였다. 그해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재산형성 과정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경제난에 짓눌린 민심은 ‘경제만 살릴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다’는 쪽으로 기울어 기업인 출신의 이 후보를 압도적인 몰표로 당선시켰다. 문 대통령 임기 후반기까지 경제난이 지속되면서 민심은 다시 요동칠 조짐을 보인고 있다. 당장 4월 총선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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