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직 논설주간
▲ 권순직 논설주간

 

문재인대통령은 지난 7일 신년사를 발표, “ 우리 경제의 활력을 되찾고 나아진 경제로 확실한 변화를 체감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9000여 자 분량의 신년사중 절반이 넘는 4600여 자를 경제와 민생 분야에 할애했다. 그만큼 우리 경제가 어렵고, 서민생활이 힘들어지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라고 본다.

대통령의 신년사는 매우 중요하다. 대통령의 통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올 한해 국정의 중점을 어디에 두고,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이를 추진할지가 담겨있다. 국민과 기업들은 이를 믿고 계획을 세우며 희망을 갖고 새해를 맞게 된다.

 

대통령이 올해 신년사에서 강조한 내용은 - 40대와 제조업 고용부진 해소 등 일자리 확대, - 벤처 창업과 성장 지원 및 소재 부품 장비산업 경쟁력 강화, - 저소득 취약계층과 자영업자 소상공인 지원 확대, - 어린이안전과 미세먼지 대책, - 권력기관 개혁과 부동산투기 억제 등 공정사회 구현, - 남북관계 개선 및 올림픽 공동개최 추진 등이다.

 

이 모든 것들이 대통령의 뜻대로 성취되기를 기대한다. 적어도 민생 분야에서만은 대통령이 제시한 목표들이 달성되도록 각계각층의 국민들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다만 신년사에서 보여준 정부, 대통령의 시각에 많은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고용문제만 해도 지난해 신규취업자가 크게 늘고, 청년고용률도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등의 수치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
 
지니계수가 호전되어 상대적 빈곤이 줄고 분배가 개선됐다거나, 규제가 완화되어 기업들이 활력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등의 자화자찬(自畵自讚)은 납득하기 힘든 요소가 많다.

 

이 정부 들어 자주 지적되는 얘기 중의 하나는 ‘필요한, 입맛에 맞는 통계수치’만 골라 경제현상을 설명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전제하에서 수립되는 정책은 의도와 빗나갈 가능성이 높다. 현실을 직시하고, 성찰할 것은 성찰하는 가운데 나온 정책이라야 올바른 것이다. 정책의 시행착오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계속 밀어붙이면 그 폐해는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 우리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 청년 일자리를 포함한 고용문제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의 과제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이 정부가 지금까지 펴온 소득주도성장 정책이나 최저임금인상 근로시간단축 등은 일부 긍정성과에도 불구하고 부작용이 더 많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상에 치우친 정책의 부작용을 인정, 정책의 과감한 궤도수정이 필요한데도 겉으로는 ‘수정’이지만 실제로는 ‘마이웨이’다.

 

매일 매일 국민의 삶에 직접 와닿는 미세먼지 문제만 해도 지난 3년간 나아졌다는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 마스크를 끼지 않으면 당장 견디기 힘든 젊은이들의 지하철 출근길 모습을 정책 당국자들은 보는가.

 

인구 구조의 노령화와 저출산 가속화는 국가 사회의 존속 문제와도 직결된다. 이런 문제들이 국가 정책의 주요 이슈가 되지 않는 이유를 모른다.
 
과거 정권에선 그래도 한두 가지씩의 미래먹거리 산업 육성에 주력했다. 이 정부의 미래먹거리 산업 육성 타깃은 뭔가. 벤처 산업 지원은 정부 할 일도 아니다. 이것저것 걸림돌만 치워주면 우리의 벤처기업인들은 펄펄 난다.

 

소재 부품 장비산업 등 3대 신산업 분야 육성에 지원을 강화한다는 것도, 기업에선 이미 열심히 하고 있는 것들이다. 정부 간섭만 없으면 된다.
 
집권 3년 차인 이 정부의 대표적인 치적이 뭘까 생각해 본다.

 

남북문제가 맨 먼저 떠오른다. 김정일과 만나 손잡고 많은 대화를 했다. 전쟁의 위협에서 국민들을 보호하는 것만도 큰 치적이라고들 한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고, 미국 등 주변국들과 얽힌 문제이지만 어쨌든 우리는 인내심을 갖고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문제 접근을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집권 초기 시작된 적폐청산 문제는 2년여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적폐가 청산됐는지, 또 다른 신(新)적폐가 쌓여가고 있는지 고개 갸웃하는 이들이 많다.
 
조국 사태는 작년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자부하고 또 믿어온 이른바 민주화 세력의 민낯이 드러났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청렴하지도, 도덕적이지도 않다는 걸 조국 사태에서 보여주었다.
 
그걸로 끝났으면 다행일 것을, 온 국민들 피곤하고 화나게 만들었고, 종내는 둘로 쪼개놓고 말았다. 일주일 내내 직장에서 시달렸을 시민들, 교실에서 책과 씨름했을 학생들, 편히 쉬어야 할 노인들이 주말만 되면 서초동이다 광화문이다 대한문이다 이런 곳으로 몰려 아우성을 쳐야 했다.

 

곰곰이 생각하면 조국 사태는 간단하다. 핸섬하고 이름 있던 조국 교수가 민정수석에 이어 법무부장관에 임명되면서 생긴 문제인데, 핵심은 염치없는 내로남불의 상징이 된 그를 장관에 앉히려는 데서 발단한 것이다.
 
말과 행동이 수없이 달라 도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그를 왜 꼭 장관을 시켜야 하는지, 그리고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조국을 수호해야 하는지 국민의 절반가량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정치인들과 이른바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의 옹색한 말싸움도 지난해 국민들을 괴롭힌 일이다.
 
국가 지도자는 눈앞의 현안을 슬기롭게 풀어나가는 것 못지않게 먼 장래의 국가 사회를 내다보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둘로 갈라진 국민들을 한데 어울리도록 지혜를 발휘해야 지도자다. 국민들은 지금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 말고도, 우리의 자손들이 살아가야 할 먼 미래를 걱정한다. 국가의 리더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해야 한다.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다.

 

 

필자약력

 

(전)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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