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직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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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그 충격은 향후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코로나 사태가 일단 진정된다면 그 후(포스트 코로나, Post corona) 인류는 어떤 상황에 직면할 것인지에 대한 담론(談論)이 활발하다. 포스트 코로나에서부터 BC(before corona)-AC(after corona), BC-AD(after disease)등 그 용어도 다양하다.
우리네 소소한 일상을 다양하게 변화시켜놓은 것은 물론, 극심한 경제 불안정으로 일자리와 삶의 불안은 극으로 향하는 중이다.
이러한 가운데 세계 내로라하는 석학이나 언론들은 코로나 이후 국제질서에 일대 변화가 초래될 것으로 예측한다.
서양우월주의가 쇠퇴하고, 미국 유럽이 주도해온 국제질서가 개편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물(微物) 바이러스가 가져올 문명사적 변혁에 대한 담론이다.
바이러스가 몰고 온 삶의 변화
연초부터 몰아닥친 코로나가 우리 삶에 가져온 변화는 엄청나다. 기업들은 재택근무와 유연근무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효율도 높였지만, 그간 지나쳤던 낭비와 인력과잉 등을 발견했을 터이다.
이에 따른 자동화와 인력감축이 뒤따를 것이고, 이는 반대로 근로자 입장에서는 ‘일자리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다. 실재로 재택근무중인 회사원이 느끼는 불안이다. 이보다 더 큰 재앙은 없다.
각급 학교의 휴교로 온라인 원격수업이 이뤄지면서 가져올 변화가 주는 충격파도 크다. 결혼식은 미루거나 가족끼리 치르고, 친지 장례식장에도 가기가 꺼려진다. 우리네 전통인 경조사 풍경이 바뀐다. 웬만한 약속은 미루거나 취소한다.
반가운 사람과 만나 악수와 포옹은 옛일이고 주먹인사 눈길 주고받기가 일상화되고 있다. 길거리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과 거리 띠우느라 눈치 보며 걷는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개인과 개인 관계를 예전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바꾸어 놓았고, 생활 패턴을 변화시켰다. 화상면접 전화진료 언택트택배 등 등 언택트(비대면,非對面)이코노미가 성행한다.
암울한 경제 전망
이런 가운데 경제 전망은 암울하기 짝이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크리스탈리 기오리기에바 총재는 최근 “전 세계가 리세션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경기침체를 뜻하는 리세션은 경제활동이 활기를 잃어 규모가 전반적으로 축소되는 상황이다. 그는 “IMF역사상 이처럼 세계경제가 멈춰 선 경우가 없었다”고 말했다.
어떤 저명한 교수는 세계경제가 급격히 수직 하락하는 'I곡선‘을 그릴 것이라는 최악의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반면 벤 버냉키 미국 연준(聯準)의장과 골드만삭스는 잠시 침체 후 곧장 반등하는 ‘V곡선’을 예측한다. 각국의 적극적인 재정 및 통화정책이 그 같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희망 반 예측 반이다.
양 극단적인 예측도 있지만 경기 침체 상태가 좀 더 이어지다가 서서히 회복세로 상승하는 ‘U곡선’, 하강 경기가 장기간 이어지는 ‘L곡선’, 급속한 침체 이후 느리게 회복한다는 ‘나이키 곡선’ 등 전문가들마다 다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코로나 사태는 세계경제의 수요와 공급을 동시에 위축시켜 가져온 실물경제 위기다. 따라서 금융위기로 초래된 IMF사태(1997년)나 국제금융위기(2008년)가 V자를 그리며 비교적 단기간에 경제가 복원된 것과 달리 이번엔 침체국면이 길어질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경제 침체 국면의 장기화로 ‘기업은 약한 순서대로 도산’하고 ‘인간은 약한 순서대로 죽는다’는 극단적이고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빈곤은 배가(倍加)되고 경기는 장기침체 국면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우려 속에 대량 실업쇼크, 일자리 대란(大亂)이 걱정된다.
코로나 사태 이후 국제질서 재편될 것
코로나 사태는 삶의 소소한 변화와 경제활동에서의 고통 수준을 넘어선, 훨씬 큰 인류문명에의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코로나19로 세계질서가 바뀔 것”이라며 “자유질서가 가고 과거의 성곽시대가 다시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코로나 사태가 인류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시장을 붕괴시키며, 정부의 무능을 드러나게 한 것처럼 국제사회에 정치 경제적 파워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게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영국의 가디언은 “서양이라는 브랜드의 권위가 사라졌다. 코로나 사태는 서양이 갖고 있던 영향력을 급속하게 동양으로 이전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양 우월주의 쇠퇴할까
서양 우월주의가 과연 종말을 고하고, 국제질서에서의 무게 추가 동양으로 옮겨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서양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이 같은 문제 제기가 이뤄지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그들이 지적하는 서양 리더십 약화에 대한 몇 가지 논거는 이렇다.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미국은 초라했다. 질병의 위협에서 무력했고,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국제적인 지도자로서의 책임감도 보여주지 못했다.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거대 국가들도 무력했다. 유럽연합(EU) 각국은 바이러스 공격에 속수무책이었고, 공동체정신은 사라진 채 서로 국경을 닫아걸고 협력을 찾아볼 수 없었다.
과거 200여 년 간 세계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자랑해온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바이러스에 맥없이 주저앉는 민낯을 보임으로서 글로벌 리더십을 스스로 반납했다.
그런 와중에서 제 역할을 했어야 할 세계보건기구(WHO)는 무력했고, 과거 같으면 역할이 많았을 UN은 있으나 마나 존재감을 찾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중국을 위시한 동양으로 국제질서의 핵심역량이 오리라는 전망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와중에서 우리는 어찌해야 할 것인지 지도자들은 고민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필자 약력
(전) 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 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위원
(전) 한국언론진흥재단 기금관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