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직 논설주간
▲ 권순직 논설주간

 

경제부총리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반갑고 바람직한 신호다.

문재인 정부 첫 경제부총리였던 김동연은 들릴 듯 말 듯 목소리를 내다가 소신대로 경제정책을 이끌지 못하고 물러났다.

개선장군처럼 군림하던 운동권 내지는 좌파성향의 청와대 경제참모들에 맞서 나름대로 버텨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뒤를 이은 홍남기부총리도 ‘예스 맨’ 꼬리표를 털어내지 못하고 고군분투해왔다. 그러던 그가 얼마 전부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경제부총리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경제정책 수립과 집행 과정에 부총리와 부처 역할이 살아나고 있음을 뜻한다.
 
경제부총리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경제정책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경제부총리가 맡는다는 것은 경제가 정치논리에 지나치게 함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징후다.
 
그렇게 되면 경제의 효율성이 향상된다. 자원배분의 효율이 높아진다. 최적배분(最適配分은) 아닐지라도 극심한 자원배분 왜곡만은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경제가 정치논리에 좌우되면 극심한 포퓰리즘에 빠져들 공산이 크다. 그 결과는 남미나 유럽 일부 국가의 경제파탄에서 수없이 증명됐다. 경제가 망하는 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고, ‘코로나 뉴딜’이라고 명명한 대규모 재정정책을 발표했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55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자동차 정유 항공 등 기간산업 붕괴를 막기 위해 40조 원 규모의 안정기금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세계적인 대공황 비상시국에 초유의 대규모 재정 정책을 마련했다. 당장 시급한 일자리를 공공부문에서 창출하고 기업을 지원해 민간부문에서의 고용 증대도 유발시킨다는 내용이다.
 
이와 함께 눈에 뜨이는 대목은 지난 3월19일부터 한 달 여 대통령이 직접 주재해온 비상경제회의를 대신해 앞으로는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주재하는 경제중앙대책본부가 맡는다는 것이다.
 
고용대란에 대응하고 국가 기간산업 회생과 중소·중견·자영업의 회생을 동시에 추진함으로써 미증유의 경제대란에 대응하는 체제를 갖췄다.
 
이로써 코로나 난국에 대응한 국가 대처 시스템은 정세균 총리가 주재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홍 부총리가 주재하는 경제중앙대책본부 두 컨트롤타워로 이원화했다.
 
그간 당정청(黨政靑) 협의 과정에서 홍 부총리의 존재감은 미약했다. 청와대 비서와 여당의 위세가 거셌다.
 
경제논리와 중장기 재정운용을 걱정하는 경제부총리를 향해 여당은 해임론을 제기하는가 하면 “부총리는 정치하지 말라”고 다그쳤다.
 
그런 와중에도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부총리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부총리 패싱론이 불거진 이유다.
 
부총리 패싱, 경제 왜곡의 지름길
 
그러던 중 최근 달라진 기류가 포착된다. 재난안전기금 지급 대상을 놓고 소득하위 70%냐, 100%냐를 놓고 여당과 논란 과정에서 홍 부총리는 상위계층까지 지급하는 건 곤란하다며 70%를 강하게 고집했다.
 
심지어는 여당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홍 부총리는 “반대의견을 기록으로라도 회의록에 남겨달라”는 전에 없던 강경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여기서 대통령은 명확한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 그런데 김상조 정책실장이 홍 부총리 손을 들어준다. 이는 대통령의 간접 의지표명일 것이다. 결국 대통령이 홍 부총리를 지지한 셈이다. 경제정책 컨트롤 타워가 홍 부총리 중심의 경제부처로 옮아갔음이 감지되는 대목이다.
 
과거 경제부총리의 위상과 경제위기 극복사(克復史)를 보면 부총리 역할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국무총리 서열 다음의 부총리 직책은 박정희 대통령이 만들었다. 지금은 부총리가 여럿이지만 당시엔 경제부총리 뿐이었다.
 
경제개발을 강력 추진하던 박정희는 경제부총리를 만들어 모든 경제부처를 통할케 함으로써 경제정책 수립과 집행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에게 힘을 실어준 것은 물론 예산편성기능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에게 부여함으로써 다른 부처 장관들이 협력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운용의 묘책을 썼다.
 
박정희 정권 이후로도 경제부총리는 통치권자의 강한 신임을 바탕으로 경제부처를 장악, 협력을 이끌어내며 경제정책 수장 역할을 해왔다.
 
박정희 시절엔 장기영, 김학렬, 남덕우라는 추진력과 철학이 탁월했던 경제부총리를 내세워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면 그 후 정권에서도 경제위기 극복에 경제부총리의 역할이 빛난다.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때 김대중은 이규성, 강봉균, 진념, 전윤철 등 실력 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경제수장들을 활용, 조기에 위기 탈출에 성공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헌재, 한덕수라는 어쩌면 자신의 지지 세력과 다른 보수성향의 인사를 경제부총리로 발탁, 무난한 경제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이명박 대통령은 강만수, 윤증현을 기용, 위기를 잘 넘긴다.
 
위기 극복사가 보여주는 교훈
 
특히 엄청난 시련에 직면한 경제를 돌파한 경험에서 우리는 경제부총리의 역할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운동권이나 학계·정치권보다는 정통관료로서 리더십과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경제부총리의 역할이 빛을 발휘했음은 역사가 증언한다.
 
물론 여기에는 최고통치권자의 강력한 지원이 필수다. 경제부총리의 개인적인 능력에다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은 위기 돌파의 원동력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성공은 곧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이다. 국민의 삶을 극도의 고통에서 평화로 옮겨놓는 일이 정부의 최우선 과제이고 홍 부총리의 어깨에 지워진 짐이다. 이 위기가 최대한 빨리 극복되기를 바라면서 홍 부총리의 활약을 기대한다.
 
필자 약력
 
(전) 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 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위원
(전) 한국언론진흥재단 기금관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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