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경 작가
▲ 조은경 작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펜데믹 선언 이후에 선거를 치른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아직 우리뿐이라 한다. 대만이 1월 초에 대선을 치뤘지만 그 때는 코로나 19에 대해 세계가 알기도 전이었다. 많은 나라들이 경이적인 시선으로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체온 재기, 거리 두기에 덧붙여 마스크에 일회용 장갑까지, 코로나 감염에 대한 적극적인 예방 대책 하에 선거가 끝났기에 이 일로 인하여 코로나 집단 발병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선거의 결과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분석을 내 놓았지만 비정치인인 나로서 정치적 해석은 잘 모르겠다. 다만 경상도 시골에 사는 귀촌 주부인 나로서는 앞으로 위정자들이 이 경상도 지역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대표가 가장 많이 나온 지역이기 때문이다. 옛날 삼국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질병으로, 정치적 견해의 불일치로 우리는 이 아름다운 계절을 하마터면 놓칠 뻔 했다. 이 말은, 아직 봄은 ‘현재 진행형’ 이란 뜻이다. 지난주에 절정을 맛봤던 벚꽃은 주초부터 꽃잎을 날리기 시작했다. 개화기가 너무 짧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아쉽고 허무하다. 물론 벚나무는 가을 단풍 또한 아름답기 때문에 봄으로 끝나는 건 아니지만. 일본 사람들이 벚꽃을 특히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허무한, 비관적인 종족이 아닐까? 대신 한(恨)을 전면에 내세운, 하지만 사실은 엄청 끈질긴 우리 민족이 도리어 생에 긍정적인 민족이 아닐까? 그러니 우리의 나라꽃은 혹서 중에 석 달 이상이나 피는 무궁화인 것이다. 한 개의 꽃이 1-2일 피고 다시 릴레이식으로 다음 꽃이 피어서 여름에 100일 동안이나 3천 송이 까지도 핀다는 그 꽃이 우리의 국화란 사실은 간단히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집 안에 100여 그루의 무궁화가 있다. 묘목을 사다가 3년을 키웠지만 아직 크고 예쁜 꽃을 만족스럽게 즐기지 못했다. 비료도 주고 약도 쳐 주었지만 무궁화는 쉽게 자라주고 쉽게 꽃을 피워내는 만만한 나무가 아니다. 다만 8평짜리 손님용 게스트 하우스 앞뒤로 서 있는 무궁화 꽃 중 일부는 5년 이상 된 큰 묘목을 사 와서 심은 것이기에 작년에 화사한 꽃을 볼 수 있었다. 흰 꽃, 분홍 꽃, 보라색 꽃 등 무궁화 종류를 선별해서 심은 보람이 있다. 이제 그 집은 자연스레 무궁화 하우스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집 바깥은 한창 복사꽃 계절이다. 이 추곡 마을은 자두와 포도도 심지만 특히 복숭아가 유명하다. 여기 내려와서 알게 된 사실인데 복숭아의 꽃인 복사꽃은 복숭아의 종류에 따라서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 털이 있는 복숭아와 없는 복숭아, 털이 있는 복숭아 중에도 황도와 백도, 물론 크게 보아서 복숭아의 종족이라 할 자두와 살구의 색깔까지 전부 조금씩 다르다. 게다가 조생종 중생종 만생종이 있어 꽃이 피는 시기도 조금씩 다르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복사꽃은 오랫동안, 여러 색깔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 준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마당으로 나가면 집이 조금 높은 지대라 주변의 복숭아밭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엷은 핑크와 진한 핑크, 덜 핀 꽃과 만개한 꽃 등등 갖가지 복사꽃의 향연이 눈앞에 펼쳐진다. 아침 날씨는 조금 쌀쌀하지만 늦잠꾸러기 바람이 아직 깨기 전이라 주변은 고요하고, 태양 빛은 엷게 구름을 뚫고 하루 일을 시작할 준비를 하는 느낌이 전해 온다. 바람은 10시쯤 되어야 불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주변의 꽃들도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만개 기간이 긴 꽃잔디 같은 이쁜이들도 이때쯤 되면 몸을 편다.

지금은 튤립의 계절이다. 고귀한 왕관 모습을 한 튤립 꽃은 태생부터가 귀족이다. 11월 늦가을, 알뿌리의 모습으로 땅 속에 들어가 달디 단 겨울잠을 자고 3월 중순 쯤 뾰족한 순을 내밀기 시작해서는 길게 봐야 두 주일, 꽃으로서의 삶을 살고 꽃잎을 떨어뜨린다. 그동안 튤립이 있는 정원의 매혹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핑크, 빨강, 노랑의 순서대로 이태 째 꽃을 피우는데 꽃잎의 색깔이 본연의 찬란함을 잃어 가면 나는 다시 한 해 동안의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튤립의 퇴장에 발맞추어 영산홍이 붉은 꽃망울을 머금고 기다리고 있다. 담장 대신 쌓은 석축 사이에 이미 만개해 기다리고 있는 꽃잔디 사이사이로 영산홍이 곧 주인의 자리를 이어 받을 것이다. 그와 함께 두 그루 라일락이 향기로운 보랏빛 꽃을 피워낼 준비를 하는 것이 보인다. 수줍은 핑크 색의 모과 꽃도 보이고 연초록 잎새를 틔워내는 목련과 함께 정원은 새 순과 어린잎의 신록으로 이어서 진초록의 세상으로 바뀌는 것이다.

가시오가피 나무의 연두 빛 어린 순은 쌉쌀한 나물로 입맛을 돋운다. 텃밭을 하얗게 덮은 서리와 함께 처음 이른 봄이 도착했을 때 주변엔 냉이 천지였다.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어 처음엔 나물인지도 몰랐었다. 형님한테 물어보고서야 냉이를 캤고 캔 나물 중에는 냉이 아닌 것이 섞여 있기도 했다. 이젠 온통 초록빛 쑥 천지다. 쑥은 냉이보다 더 오래 볼 수 있다. 텃밭의 잡초 중에서 튼실하게 잘 자란 쑥을 캐어다가 된장국을 아무 때나 끓여 먹는 것이 얼마나 특권인지 전에는 몰랐었다. 옆집 부지런한 아지매들한테서 쑥떡도 벌써 몇 번 얻어먹었다. 이젠 실파와 비슷하게 보이는 달래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 19로 인한 격리의 시대지만 초록의 계절은 자신의 갈 길을 가고 있다. 그리고 그 싱싱한 초록의 색깔과 깔 맞춤한 핑크색, 노랑색, 보라색 꽃들이 자신의 등장 시기를 잊지 않고 순서대로 무대에 등장하고 있다.

양재천의 올챙이, 청동오리 소식을 전해 주는 친구도 있다. 온 세상이 지저귀는 새 소리에 가득하다는 행복한 이야기를 보내주는 친지도 있다.

초록 세상이 팡파레를 울리며 용기를 준다.

그럼 나도 무언가 장단을 맞춰주어야 하지 않을까? 나도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을까? 그냥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감탄만 하고 있어도 되는 걸까?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70 넘은 할머니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첫째, 아프지 않는 일이겠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도 조심하고 낫에 베이지 않게, 석축에서 미끄러지지 않게도 조심해야겠다.

둘째, 나의 감성을 곱게 벼려서 언제나 순수하게 자연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

셋째, 그 자연에 감사하고 용기를 얻는 일.

그렇게 나도 씩씩하게 내 갈 길을 가야겠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