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상황이 박근혜 탄핵 이후 때보다 더 안 좋다. 하나로 뭉쳐 갈아엎고 시작해도 모자랄 판에 확실한 물증도 없이 기자회견을 하는 일부 보수 인사들과 내부개혁이 아닌 ‘자리 지키기’에 열중하는 대다수의 의원들 때문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1일 미래통합당 한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 같이 말했다. 이른바 ‘역대급’ 위기라는 주장이다.
심재철 원내대표 겸 권한대행은 4·15 총선 대패의 충격을 딛고 당을 재정비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골머리를 썩었다. ‘김종인 비대위’ 체제를 두고 당내 이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온갖 갈등 속에서 통합당은 지난달 28일 전국위원회을 열고 비대위 출범을 의결했다. 문제는 김종인 전 위원장이 ‘4개월 임기’를 거부하면서 다시 미궁에 빠졌다. 특히 김 전 위원장을 두고 찬·반 양상을 보이고 있어 한 치 앞길을 예측하기 힘들다.
심 권한대행의 ‘바통’을 이어갈 원내대표 후보들의 견해는 제각각이다. 우선 5선의 서병수·주호영·정진석 당선인, 4선의 권영세 당선인, 3선의 유의동 당선인 등은 김 전 위원장 체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반면 5선의 조경태 의원과 4년 만에 여의도로 돌아온 조해진 당선인은 외부인 통제를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통합당 한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종인 전 위원장은 뚝심이 있으신 분이나 그만큼 고집도 세신 분”이라며 “4개월 임기를 수락할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다. 비대위원장으로 오신다고 해도 전권을 주냐 마느냐를 두고 또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당내 균열을 불러오고 있는 것은 ‘김종인 비대위’ 문제뿐만 아니라 선거 조작 의혹도 한몫 거들고 있다. 앞서 사전투표 조작 의혹은 일부 보수성향 유튜브 채널을 통해 처음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등 가장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이는 민경욱 의원이다. 민 의원은 지난 29일 페이스북을 통해 “미래통합당이 ‘사전투표 조작 의혹’과 관련해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대응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며 “환영할 일이다. 이제 우리는 외롭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통합당 공보실은 출입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통해 “전혀 사실이 아님을 알려 드린다”고 밝혔다.
김재원 정책위의장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 차원에서 계획은 전혀 없다”며 “지난번에 한 번 최고위에서 사전투표 문제에 대해 개별 의원님들이 대응하는 게 맞다는 내용으로 협의한 적은 있는데 그 이후 다른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민 의원의 행보에 꽃을 깔아주는 의원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의원들이 선거 조작 의혹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태경 의원은 지난 22일 "통합당은 투표 조작 괴담 퇴치반을 만들어 투표 조작 논쟁을 보수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장제원 의원도 최근 SNS에 "더 이상의 사전투표 조작 의혹 제기는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자칫 잘못하면 통합당의 선거 불복으로 비춰질 수 있어 걱정스럽다"고 우려를 표했다.
민 의원은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밥 먹은 기자만도 600명이 된다. 여기 한 명도 안 계신다”며 “아마 사람들이 저를 광인 취급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당 지도부에서 사실상 도와주지 않고, 기자회견을 열었음에도 취재를 하러 오는 기자들이 거의 없었다.
낙선의 충격으로 상황판단 능력을 상실한 것일까? 민 의원의 행보가 오히려 통합당의 ‘보수 대통합’이라는 이름값을 낮추고 있다는 것이 정치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