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이양하(李敭河, 1904~1963) 수필 ‘신록예찬(新綠禮讚)’ 중>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으로 전 세계에 수 많은 사망자와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끼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의 행동이 제한됨에 따라 환경오염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관광객이 버린 오물과 오수로 더럽혀졌던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수로(水路)가 깨끗해졌고, 인간의 이동이 멈춘 도시에는 원숭이 코요테 퓨마 등 야생동물이 출몰한다.
요즈음 인도 중서부 나비뭄바이의 샛강에는 과거보다 25% 이상 많은 15만 마리가 넘는 홍학(紅鶴)떼들이 찾아들었다는 소식이다. 공기와 물이 오염이 덜해 주요 먹거리인 조류(藻類)의 질이 향상됐기 때문이라는 게 현지 환경단체 관계자의 설명이다.
전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거리두기(distancing)’에 힘쓰는 요즘, 지구는 이제야 본래대로 돌아가는 ‘역설(逆說·paradox)과 함께하고 있다. 사람의 활동이 줄어들면서 잠시나마 숨통이 트인 지구에서 동물의 세계에도 거짓말 같은 평화가 되살아났다.
그러나 가장 피부에 와닿는 효과는 맑고 파란 하늘과 깨끗해진 공기로 대표되는 대기질(大氣質) 개선이다.
검은 연기를 뿜어내던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사람이 집에 머물고, 차량 운행이 줄면서 대기오염도가 뚝 떨어진 덕분이다. 보스턴과 워싱턴을 비롯한 미국 동북부 지역 이산화질소(NO2) 농도는 지난해보다 30% 낮아졌다. 대기오염으로 악명 높은 중국과 인도의 공기도 깨끗해졌다.
지난 1월 20일부터 4월 4일까지 중국 전역의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는 전년 동기 대비 18.4% 떨어졌다. 인도 북부 잘란다르에서는 160㎞ 이상 떨어진 히말라야산맥의 눈 덮인 정상이 수십년 만에 육안으로 보일 정도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3월까지 4개월간 초미세먼지 평균농도는 석탄화력발전소 50% 가동중단과 같은 ’미세먼지계절관리제‘ 효과까지 겹치면서 전년 동기 대비 2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에서 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고 인간 활동을 제약하고 있지만 그 결과 오히려 지구의 공기가 맑아지는 역설적인 현상, 이른바 '코로나의 역설(Corona Paradox)'을 볼 수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 분석에 따르면, 코로나19에 의한 대기오염 개선효과로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의 경우 코로나로 희생된 사람의 20배나 많은 사람이 생명을 구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팬데믹 상황으로 인한 일시적인 환경 개선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세계기상기구(WMO) 관계자는 최근 언론브리핑에서 “올해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이 6% 감소할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이는 일시적인 해소일 뿐 장기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하늘이 맑아진 건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일 뿐 환경문제를 소홀히 한다면 언제든 다시 뿌옇게 바뀔 수 있다는 것. 위기는 기회의 다른 표현이기에 잘 활용한다면 반전(反轉)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 환경오염·기후변화·생태학적 위기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코로나19에 이어 또 다른 위기에 맞닥뜨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스웨덴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17)는 지난달 22일 ‘지구의 날’ 50주년을 맞아 “기후변화는 코로나19 만큼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코로나에만 쏠린 세계의 관심을 기후변화 쪽으로 돌려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지구를 괴롭혀 왔는지를 느끼게 된다. 한편으로는 맑은 하늘이 순순히 달갑지 않을 수 있지만 오랜 세월 지친 지구는 잠시라도 정화되고, 미래의 우리는 코로나가 종식되어도 결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닌 우리의 환경을 위해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고도 지금의 맑은 공기가 유지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오히려 코로나 이전보다 대기가 더 나빠질 것으로 우려한다. 코로나 이후 친환경 글로벌 경제구조를 지향할 여력이 안 될 것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코로나 이후 각국 정부가 당장의 경제침체에서 벗어나는 데 급급해 친환경 경제가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란 예상도 많다.
그렇게 되면 어렵사리 얻은 건강한 지구와 삶에 대한 각성과 교훈이 공염불(空念佛)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미래세대가 살아야 하는 세상은 지금과 다를 것이다.
그리고 미래세대가 살아야 하는 세상을 결정할 권리는 미래 세대에게 있다.
지금 우리 시대 역시 먼 과정으로 지구라는 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잠시 일어섰다가 사라질 뿐이다.
그 찰나(刹那)의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가 미래세대의 자연환경과 조건을 인위적으로 변경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아이들이 아이들답게 뛰노는 세상을 잠시 빌려 쓰는 우리 세대.
우리 기성세대는 미래세대의 주역들에게 가능한 한 깨끗한 자연환경, 건강한 지구를 물려줘야 할 책임이 있다. 화석연료 사용에 의한 지구온난화문제, 쓰레기줄이기 등 의식혁명과 생활습관 개선이 획기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계절의 여왕‘ 5월은 싱그러운 신록과 함께 생명의 소중함과 미래의 주역인 어린이들을 생각하는 ’가정의 달’이다.
”모든 봉우리마다 꽃으로 피고...모든 새들이 노래를 터뜨리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5월에“라는 하이네(Heinrich Heine·1797~1856, 독일 시인)의 시가 어느 때보다 가슴에 와닿는 시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