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는 와중에도 봄은 왔고 이제 아름다운 5월이 되었다.
하지만 지난 4월의 추위는 과일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동네의 복숭아나무며 우리 텃밭의 매실 나무에 열매들이 많이 열리지 않은 것이다. 꽃필 때 영하로 내려가면 피해가 이렇게 심하게 온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오늘 아침에 이장이 마이크로 냉해 피해를 접수한다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알렸다. 우리가 조성하는 동림원에도 새로 심은 몇몇 과일나무들이 피해를 보았다. 뾰족하게 나오던 어린잎들이 까맣게 죽어 버렸다.
동림원은 우리 부부가 이 곳 영천에 귀촌하면서 계획한 프로젝트이다. 이 글 다이어리 2-1편에서 자세히 밝힌바 있다. 즉, 조상님으로부터 물려받은 3천여 평의 농지에 갖가지 과일 나무를 심고 누구나 함께 즐기자는 계획이다. 물론 조성하는데 돈이 들고 관리하는 데에도 돈이 든다. 남편에게 이런 시골 땅이 있는지 나는 거의 몰랐었다. 남편은 시골에 사는 형편이 어려운 친척에게 이 땅의 경작을 맡겼는데 어찌 된 셈인지 과수원을 하던 그이는 30 여 년 동안 우리에게 과일 한 상자도 보내지 않으므로 해서 내가 이 땅의 존재에 대해 까맣게 잊도록 만들었다.
이제 이 땅은 우리 부부에게 돌아왔다. 우리에게 잊혀졌던 만큼이나 더욱 사랑받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 누구나 아름다운 꽃이 피는 과수원 옆을 지날 때 그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떡해? 함부로 들어갈 공간이 아닌데........ 이제 누구나 또, 아무나 들어가 볼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꽃도 보고 과일도 바라다보고, 물론 함부로 훼손하지는 않아야겠지. 그럼 다른 사람들이 즐길 수 없게 되니까.
동림원이라 이름 붙인 이 과수정원은 남편의 법명을 따서 지은 것이다. 이 법명을 내려 주신 스님은 東林의 東자는 지혜를 뜻하고 林자는 자비를 뜻한다고 말씀하셨다. 경전에 있는 말씀이겠지만 내가 생각해도 해가 떠오르는 東녘은 지혜를 뜻할 것 같고 많은 사람들에게 귀한 산소를 풍족하게 제공하는 숲인 林자는 자비를 뜻할 것 같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깃들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이곳에 동림원이란 이름이 걸맞아 보인다.
불특정의 많은 사람들이 무료로 이 정원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 부부는 여생을 위한 최소한의 비용을 제외한 돈을 아낌없이 쓰기로 했다.
왜 그런 데에 돈을 쓰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뭐라고 할까? 내 가족만 말고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하면 답이 될까? 마음의 파랑새를 날려 볼 장소를 어린이들에게 제공해 주고 싶다고 하면 답이 될까?
대신에 정원을 정원답게 유지하는 관리비는 여러 사람들에게 후원금으로 받아서 충당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후원금? 이제까지 후원금을 내 보기는 했지만 받으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과연 우리가 후원금을 모을 수 있을까? 어떤 이는 영천시에서 보조금을 타 보라고 하지만 그런 돈은 좀 더 어려운 사람들이 써야 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정원이나 어떤 시설물이나 지속적인 관리를 하지 않아서는 이내 낡아지고 황폐해지고 말 것이다.
세상에 다시없는 과일나무 정원 (사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과일나무만으로 정원을 만든 곳은 보지 못 했다.)을 위하여 (땅에 파묻는 관수장비, 센서로 움직이는 스프링클러 시설, 그린 볼을 넣어 수질을 좋게 하는 시설, 퇴비와 소금, 유기농약 등 유기농을 위한 자재와 설비에 덧붙여 어린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놀이터 시설에 휴식을 위한 벤치와 원두막까지) 많은 장비를 투입하는 것 자체는 크게 어렵지가 않았다. 20가지 종류의 과일 묘목을 사오고 식재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았다. 잔디밭에서 뛰노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상상이 되어 힘들기는커녕 행복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 정원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유지 관리를 위한 비용과 함께 진심으로 성원하는 많은 이들의 마음이 필요하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한 번의 목돈 후원과 매달 은행에서 자동이체 하는 방법 중에서 어느 방법을 택할 지는 후원자들의 선택에 맡기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조금 긴 하나의 문장을 만들었다. 그 동안의 과정과 우리의 의도, 바램, 꿈과 희망을 쓰고 동림원 후원을 위한 은행 계좌번호를 적었다. 그런 다음 우리 주변의, 마음이 넉넉하다고 생각되는 이들에게 발송했다. 답신을 기다리면서 동림원에서 300 여 그루의 묘목을 심는 분들과 코로나19의 어려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
놀랍게도 첫 번째 후원자는 –토지 공개념-이란 책을 쓴 남편의 친구 교수님이었다. 우리가 토지공개념이란 이론을 현실화하고 있다고 인정하셨나 보다. 어쨌든 감사하게도 첫 번째 큰 목돈이 동림원 계좌로 들어왔다. 그 다음부터 목돈이 들어오기도 했고 격려 전화와 함께 자동이체 된 후원금이 들어오기도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분들의 이름이 통장에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감사의 편지와 과일을 보내기 위해 우린 그 분들이 누구로부터 이 소식을 들었는지를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 수고가 왠지 가슴 떨리도록 감격스럽게 여겨졌다. 직접 알지는 못 하지만 우리의 좋은 취지를 알고 믿어주고 후원해 주는 그 분들을 어찌 배신하겠는가?
또 아내와 선거 때마다 티격태격한다는 주변의 어떤 남편 되는 분이 동림원에 후원하자는 데에는 부부가 쉽게 의견을 일치했다고 전해 주었다. 그들이야 말로 영혼이 맑은 부부가 아니고 무엇이랴. 좌파니 우파니 하는 정치적인 이념이 다른 데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부부로 잘 살아가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과일나무 정원이 영천에 있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먼 곳에 사는 후원자들은 직접 이용할 경우가 적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점이 후원의 매력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유기농 과일을 보내 줄 수 있고 자녀나 손자 손녀들이 원하는 특별한 나무 한 그루씩을 이름표와 함께 선물할 수도 있다. 또한 기증자들의 이름을 나무판에 새겨서 동림원 입구에 설치할 생각도 하고 있다. 기증이나 기부 문화를 어린 자녀들에게 행동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가족이 함께 지방 여행을 할 기회가 있을 때, 이곳을 방문해서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름이 달린 과일 나무를 찾아보게 하고 기증자 명패에서 부모나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름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누리게 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