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이 흰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데 소금이 희다고 말을 못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왜 그럴까. 희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는 유무형(有無形)의 압력 때문이리라.
최재형 감사원장의 최근 발언은 충격적이고, 동시에 신선하다.
“외부의 압력이나 회유에 순치(馴致)된 감사원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다”
“검은 것을 검다고, 흰 것을 희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검은 것을 검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검은 것을 희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감사원장이 감사원 직원들을 질타하며 한 얘기다.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에 관한 감사가 지지부진한 것과 관련, 담당 국장을 교체하면서 이 같은 강경 어조의 질책을 한 것이다.
최 감사원장의 소신 발언은 사회에 참신한 충격을 주었다. 비슷한 시기에 한 일간신문에 실린 이석원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의 ‘실패한 정부 정책에 대한 책임, 누군가는 져야한다’는 칼럼도 감사원장의 경고와 겹쳐 소금 같은 인상을 받았다.
감사원장의 분노는 이 정권 들어 추진되어 온 탈원전(脫原電)과 관련된 감사 과정에서 감사원 직원들의 ‘정권 눈치 보기’ 감사와 독립성에 의심을 받는 감사위원회의 행태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여 진다
실패한 정책, 정교하지 못한 설계로 국민에게 피해를 준 정책 등에 대한 감사는 일단 감사원의 몫이다. 헌법이 감사원에 부여한 임무다.
그런데 ‘흰 것을 희다’고 말하지 못한다면 직무유기다.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다.
정권에 아부하느라 국민의 권익을 희생시킨다면 범죄나 다름없다.
실패한 정책의 책임소재 분명히 해야
정책은 시일이 지나면 대게 성패가 가려진다. 성공한 정책은 정권이나 실무자들에게 공이 돌아간다. 그런데 실패한 정책에 대한 책임 소재는 애매하다.
정책실패에 대해 책임을 묻기가 쉽지 않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모든 정책은 ‘좋은 의도’에서 출발한다. 적어도 명분은 그렇다. 하지만 시행 과정에서 ‘나쁜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좋은 의도, 나쁜 결과’로 결론이 나더라도 정책 입안자나 시행자에게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
다음으로는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 실무 작업은 행정부 관료들이 맡아 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적인 결정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4대강 사업이나 곳곳의 경전철, 탈원전, 한전대학 설립, 예타(豫妥,정책사업 예비타당성조사)면제 등 대형 사업이나 중요 결정은 관료들의 의사와 다른 경우가 많다.
이를 실무 작업을 했다고 관료들에게 책임을 지우기는 어렵다.
물론 이 과정에서 소신 있는 관료라면 자리를 걸고 반대하거나, 박차고 나올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주문이다. 그래서 ‘영혼 없는 관료’라는 불명예가 덧씌워진다.
또 책임소재를 가리기가 어려운 것은 정책결정을 어느 한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 의사결정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정책이 명백한 오류와 실패로 판명되어도 그 책임을 집단에 지우기도 그렇고, 책임소재가 애매해진다.
그래서 감사원의 역할이 중요할 터인데, 정권 눈치 보느라 ‘흰 것을 희다’고 말하지 못하는 현실이 문제다.
과거 소신 있는 감사원장 아래서는 권력 눈치 보지 않고 그야말로 성역 없는 감사를 한 케이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흰 것을 희다고 말하면 불이익을 주는 정권 탓만 해선 발전이 없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정책효과의 과학적 검증기법이 발달하고, 이 분야의 학문적 연구가 크게 발전하고 있다.
정책효과를 과학적으로 측정하는 방법론을 연구한 경제학자들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기도 했다. (이석원교수의 칼럼 인용)
정책효과 검증 시스템의 강화
감사원이 하든 별도의 기구를 만들든 정책효과를 철저히 검증하는 정책감사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정책의 경우 반드시 정책감사를 실시해서 실패의 원인을 가려내야 할 것이다.
실패한 정책에 대한 법적 책임까지는 아니더라도‘누구 때문에 실패’했는지와 ‘왜 실패’했는지를 명확히 가리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원전 감사에서 보듯이 감사가 ‘정책감사’가 아닌 정권 입맛에 맞춘 ‘정치감사’가 된다면 정책실패에서 교훈을 얻기는 커녕 ‘면죄부 감사’라는 오명을 쓰기 십상이다.
날로 발전하고 있는 정책효과 검증기법을 최대한 활용하는 제도의 도입이 절실하다고 본다.
감사원의 환골탈태(換骨奪胎)는 기본이다.
감사위원회는 물론이고 각종 위원회의 실질적인 독립성 공공성 확보 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정권 하수인으로 의심받는 위원들이 포진한 일부 위원회에 제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도 안타깝다. 정책의 실패, 그에 따른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
“검은 것을 검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검은 것을 희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최재형 감사원장의 경고는 공직자들이 두고두고 새겨야 할 명언이다.
필자 약력
(전) 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 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위원
(전) 한국언론진흥재단 기금관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