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에 뿌린 돈 뒷감당할 준비 세워야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시대의 기초를 놓겠다”고 밝힌 이후 정부와 여당이 후속조치에 분주하다. 문 대통령은 모든 취업자가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도록 준비하고 저소득층 구직자에게 월 50만원의 구직촉진수당을 6개월간 지급하는 국민취업지원제도도 조기 도입하겠다고 했다. 국민 모두에게 지급하는 재난지원금이 쓰이기 시작하면서 동네상권에 한시적이나마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직격탄을 맞은 항공 여행업을 비롯해 유통 제조업까지 코로나 위기가 확산되면서 관련 기업에 천문학적 규모의 금융지원이 서둘러 제공되고 폐업에 직면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도 초저금리로 긴급자금이 투입되고 있다. 이태원 클럽 등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시 증가해 국민의 촉각이 예민해진 때에 여기저기 돈뿌린다는 소식이 기대와 걱정이 혼재한 복잡한 심사를 안겨준다.

초저금리로 긴급자금을 받은 소상공인들은 위기가 길어져 돈을 제때 갚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 걱정하면서 정부의 후속대책을 기대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기업들 역시 금융지원을 효과적으로 투입해 위기를 이겨내고 재무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데 나서고 있다. 하지만 막상 빚을 내 지원금을 제공하고 전 국민 고용보험을 도입해 안전망을 확대하겠다는 더불어민주당은 나랏빚 상환 대책에는 아직 둔감한 모습이다. 정부로서는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만 청와대와 여당에 눌려 제 목소리를 못내는 처지로 보인다.

국민취업지원제도 관련 법안에는 일단 여야가 의견 접근을 보여 1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올해 책정된 예산 2579억원으로 연말까지 20만명을 먼저 지원하고 2022년부터 지원 대상을 50만명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같은 날 환노위는 내년부터 연극배우와 무용가 등 예술인도 고용보험 가입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여야는 보험설계사와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노동자와 배달앱 등 플랫폼 노동자를 보험적용 대상에 포함할지는 21대 국회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고용보험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재원 확보에 관해서는 여당과 정부, 청와대 내에서도 조율된 구상이 보이지 않는다.

고용보험은 실업자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구직활동을 지원하는 사회보험으로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를 재원으로 삼아 실직 전 3개월간 평균임금의 60%를 최장 270일간 실업급여로 제공한다. 1995년 시행됐지만 올해 3월 현재 경제활동인구 2778만명 중 절반에 못미치는 1376만명만 가입돼 있다. 1인 이상 상시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가 의무가입 대상이지만 영세사업장은 가입을 꺼리는 현실이다. 더구나 현 정부들어 경제가 어려워지고 실업급여 지급액과 지급기간이 늘면서 보험료 수입보다 지출이 급증했다. 이로 인해 고용보험기금이 2018년 8082억원 적자에 이어 지난해에도 2조원 넘는 막대한 적자를 냈다. 정부가 예상한 올해 고용보험기금 수입은 12조9700억원 규모인데 지출은 20조원에 달해 기금이 바닥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여당과 노동계 일각에서는 보험료를 조정하고 세금을 넣어서라도 전 국민고용보험을 서둘러야 한다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60%까지 올라가도 감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고용보험을 통해 사회안전망을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국가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어려운 시기에 세금을 투입하는 방안에대해서는 경제전반에 미칠 영향부터 따지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코로나 사태로 재정적자가 급증하면서 올해 본예산 512조원에 1~3차 추경까지 감안하면 총 100조원에 가까운 적자국채를 발행해야할 처지다. 이런 추세라면 연말쯤에는 국가부채 비율이 50%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피치를 비롯한 국제신용평가 기관들은 한국의 재정 건전성 악화에 주목하고 있다는 심각한 소식도 들린다. 피치는 한국의 채무비율이 46%까지 악화되면 국가신용등급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여당 측은 100%가 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부채비율에 비해 우리는 아직 재정여력이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선진국들과는 달리 저출산과 고령화 비용과 통일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우리 형편을 감안해야 한다. 고령화와 함께 의료비도 급증하면서 건보료 적립금이 2024년, 국민연금 적립금은 2057년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또한 보험료를 올리거나 세금으로 채워야 할 과중한 부담들이다.

나랏빚의 증가는 이자 부담을 늘리고 이자를 갚기 위해 더 많은 빚을 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한다. 달러가 필요하면 또 찍어낼 수 있는 미국이나 국제통화 수준의 강한 통화를 갖고 있는 유럽연합, 일본 등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적자가 누적되면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환율이 흔들려 심각한 국난에 다시 직면할 수 있다. 빚을 갚으려면 세금을 더 물리거나 발권력을 동원해 돈을 더 찍어야 하는데 전자는 국민부담을 가중시켜 경제회복을 저해하고 후자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의 위험까지 초래한다.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 재정을 투입하고 대량 실업의 위기를 돌파하려는 정책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부채증가를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관리하고 대외 신용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대책도 미리 세워야 한다. 총선에서 이겼다고 나라 곳간을 마음대로 퍼내도 된다는 오만은 국난을 자초하는 지름길이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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