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직 논설주간
▲ 권순직 논설주간

 

두 가지 유형의 기부금 문제가 요즘 국민들을 혼란케 하고 있다. 하나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가계와 기업을 돕고 경제를 회생시키려는 뜻에서 실시된 긴급재난지원금을 기부하자는 것과 관련한 ‘관제기부’ 논란이다.

또 하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해를 밝히고, 그들을 돕기 위해 활동해온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윤미향 대표(여당 국회의원 당선자)의 기부금 사용에 관한 의혹 논란이다.

이른바 관제 캠페인을 동원한 기부금 모금과, 순수한 기부금은 그 출생부터 다르다. 관제기부금은 강요 타율 비자발성이 특징이다. 여기에는 정치적인 의도나 정책적인 목적, 순수하지 못한 무엇이 끼어든다.

그러나 일반적인 기부행위는 순수하다. 자율적이고 이웃과 상생하려는 사랑이 깔려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도 있다.

가끔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이 적지 않은 금액을 기부를 한 뒤 공개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다르다.

많은 사람에게 보이게 안보이게 영향을 주는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들의 선행은 일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선의의 공개다.

순순한 뜻이 바이러스처럼 사회에 번지기를 바라는 숭고한 의미다. 관제 켐페인이나 관제기부 행위처럼 무슨 의도가 없다.

관제기부와 순수한 기부는 출생부터 다르다

정부가 앞장서는 기부 행위가 관제냐 아니냐는 논란도 없지 않다. 문재인대통령은 재난기금 60만원을 포함해 급여반납 등으로 2308만8000원을 기부했다고 청와대 대변인이 발표했다.

홍남기경제부총리가 기부 대열에 재빨리 동참했고,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간부들이 기부 동참을 밝혔다.

대형 국책 금융그룹인 농협은 임원과 간부 5000여명이 재난기금을 기부한다고 발표했다가 내부 불만이 터져 나왔다. “본인도 모르는 기부가 어디 있느냐”는 불만에 뒤늦게 의사를 묻는일도 있었다.

민간 메리츠금융그룹도 연봉 5000만원 이상 임직원 2700여명이 재난지원금 기부에 참여한다고 발표한 뒤, ‘개인 동의가 없었고, 회사가 노조와의 합의만으로 결정한 것’이라며 “자발적 기부가 아니다”고 반발한 적도 있다.

재난지원금 기부는 이처럼 자율적인지, 강요인지 애매하다. 문대통령의 발언도 애매하다. 기부를 강요해선 안된다면서도, 한편으로는 “자발적으로 재난지원금을 기부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기부 독려성 발언을 한다.

이럴 경우 공직자는 물론이려니와, 정부 눈치를 봐야 하는 금융기관 민간기업 임직원들은 난감하다.

오죽 했으면 어느 대기업 임원은 ‘기부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에서 “나는 재난지원금 100만원을 수령하고 여기에 100만원을 더 보태 어려움을 겪는 어린이 돕는데 기부할 생각”이라고 말했겠는가.

‘기부 말고 펑펑 쓰자’는 강원도지사

최문순 강원도지사의 소신은 돋보인다. 최지사는 “재난지원금을 기부하지 말고 평펑 쓰자, 나도 기부하지 않겠다”면서 지원금을 소비해 엉망이 된 경제를 살리자는 것이 지원금 지급 취지가 아니냐고 강조했다.

정부가 대놓고 기부를 독려하지는 못하지만 대통령부터 앞장서 기부 대열에 나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원금을 소득하위 70% 가구에만 주느냐, 모든 가구에게 주느냐 논의 과정에서 과다한 재정부담 문제가 제기됐다. 결국 전가구 지급으로 결정하면서 여유 있는 사람은 기부해서 조금이나마 재정에 보탬이 되도록 하자는 취지다.

지급 대상 가구를 전가구로 확대한 결정은 총선에서의 거대 여당 출현에 신(神)의 한 수였다는 지적이 있을 정도로 위력이 강했다.

간단히 정리하면 모든 가구에 인심 쓰고, 선거에서 이기고, 부자는 기부하라는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행해진 정책 치고는 궁색하다.

재정 전문가로 알려진 홍남기부총리는 ‘70%가구 지급’을 강력 주장하다 여당 요구에 두 손 들고 물러섰다.

이를 두고도 재정전문 정통관료인 홍부총리가 훗날 두고 두고 입방아에 오를 헬리콥터 투하식 자금살포에 대한 비판에 그저 면피용으로 반대 의사를 기록에 남긴 것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어쨌든 지원금 지급 시행 이후 20여일이 지난 25일 현재 12조9640억원이 시장에 풀렸다. 우리나라 전체 2171만 가구의 94.7%인 2056만가구가 수령했다. 금액으로는 당초 예상 14조3000억원의 91%다.

당장 어려운 가계에는 ‘가뭄 속의 단비’였을 것이고, 극도의 어려움에 처한 자영업 등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기왕 시행된 지원 제도가 당초 의도대로 경제를 다소나마 숨통 트이게 하면 되지, 어정쩡한 ‘관제기부’ 분위기 조성으로 국민들 피곤하게 만들지 말기 바란다.

대통령이 앞장선다고 국민들이 재난기금 기부에 크게 호응할 것 같지도 않다.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는 일부 국민들에게 이제 스트레스 그만 주어야 한다.

윤미향 사건으로 기부 문화 바뀔 것

이런 어수선한 가운데 터져나온 정의연 윤미향 사건은 조국 사태에 이어 또다시 국민들을 두 갈래로 분열시키고 있다.

연일 불거지는 기부금 용처 의혹에도 불구, 여당이나 정부 지지 세력은 윤씨 비호에 열심이다.

재난기금 기부와 정의연 기부금 사용의혹, 이 두 사안은 향후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문제점을 제기한다.

이제 더 이상 기부 강요 같은 관제 켐페인은 발 붙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군사독재시절처럼 정부가 뭘 강요할 수도 없다. 앞장선 대통령과 경제부총리가 멋쩍을 정도로 재난지원금 기부는 미미하다.

정의연 사건은 검찰 수사 등을 지켜 보아야 하겠지만 국민들의 기부 행위에 대한 의식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라 해서, 또 명분이 훌륭하다 해서 그들을 믿고 기부금을 내던 국민들의 배신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기부문화에 대한 반성과 제도적 개선도 아울러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필자 약력
(전) 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 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위원
(전) 한국언론진흥재단 기금관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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