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국수주의(國粹主義, nationalism·chauvinism)와 자국이기주의(自國利己主義)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세계 각국이 사회 경제 의료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사상 유례없는 비상사태를 맞아 저마다 성(城)을 쌓으며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카드를 빼들고 있는 형국이다.

이같은 사태에 기름을 부은 장본인은 다름 아닌 초강대국 미국과 중국이다.

미·중(美·中) G2 양강(兩强)이 벌이고 있는 패권경쟁은 코로나19사태 이후 한층 더 이전투구(泥田鬪狗)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은 우한발(發) 코로나 사태의 ‘중국책임론’을 거론하며 “중국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한 은폐는 체르노빌(원전 사고)과 함께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며 “중국의 꼭두각시인 세계보건기구(WHO)와 절연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맞서 중국은 “미군이 우한에 코로나19를 가져온 것일 수 있다(외교부 대변인)”며 “중국을 ‘늑대(戰狼)외교’라고 하는데 중국이 싸우는(戰) 것은 늑대(狼)가 있기 때문”이라고 미국을 정조준했다.

또 미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Belt & Road Initiative·육해상 실크로드)는 다른 지역에 해를 끼치는 매우 위협적인 정책”이라고 비난한 데 대해, 중국은 “중국 고립용 미국의 EPN(Economic Prosperity Networks·경제번영 네트워크) 동맹 구상이야말로 세계를 수렁으로 몰고가는 자국이기주의”라고 날을 세웠다.

여기에 중국의 ‘홍콩보안법’ 제정 강행에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 절차에 나서면서 양측간 불화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최근 더욱 거세진 유럽내 ‘먹을거리 애국주의‘, 이른바 ’식량(食糧)민족주의‘도 도(度)를 넘은 지 오래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유럽 각국이 자국 농가와 식품업계를 살리기 위해 ’국산먹을거리‘를 우선적으로 소비하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근래에 보기 드물었던 강력한 ’국산(國産)보호주의‘ 정책도 가동되고 있다. 앞다퉈 농어민들에게 각종 지원금 지급과 대출보증에 나서고 대형 마트 등에 자국산 신선식품을 우선 매입하도록 하는가 하면, 치즈 감자튀김 먹기·차마시기 등 대표 농산물 소비촉진 운동을 펴고, 수입 우유 가공업체 등의 명단을 공개해 망신주기를 하는 등 행태도 다양하다.

이 같은 자국 중심의 ’식량민족주의‘가 EU(유럽연합)의 핵심 토대인 ’단일시장(single market)’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재정위기 타개를 위한 코로나채권 공동 발행과 관련해서도 채권국 독일 네덜란드와 채무국 이탈리아 스페인의 입장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현대판 ‘보트피플(boat people)’은 인도주의에 역행하는 자국이기주의의 결정판.

일본의 경우, 지난 2월 초 요코하마 항 바로 앞에 정박한 국제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의 승객과 승무원 등 56개 국가(지역)의 승선자 3,711명을 해상격리 검역을 이유로 20일 가까이 하선시키지 않아 승객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700여명의 감염자가 나오게 하는 등 사태를 악화시켜 국제적인 공분(公憤)을 샀다. 이런 비인간적인 자국이기주의는 승객들이 하선하는 순간 선내 감염자들이 일본 감염자수에 산입돼 7월 개최 예정(내년으로 연기)인 올림픽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 것을 우려한 때문.

현재 전 세계 바다에 승객 없이 떠있는 크루즈선은 120여척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70%가 동남아 인도 출신인 크루즈 승무원 10만명이 이런 식으로 ‘바다 위 감옥’에 갇혀있다. 국제법상 자국 소속 선박이 아닐 경우, 각 국가는 정박을 거부할 수 있고,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코로나 감염 위험을 이유로 하선을 거부하고 있는 것.

문제는 이처럼 자국이기주의를 기반으로 한 국수주의가 일으킬 수 있는 악영향이다. 단순히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경쟁적인 보복의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국수주의, 민족주의 풍조는 이미 만연하다. 강대국인 러시아, 중국은 물론이요 신흥국들 사이에서도 이런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독재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부는 엄격한 이슬람 국수주의를 내세우며 유럽연합(EU)과 거리를 두고 있으며 오랫동안 갈등을 빚었던 쿠르드족에게도 강경책을 지속하고 있다. 폴란드,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은 외국인혐오(제노포비아·Xenophobia)를 내세운 극우 정당이 득세 중이다. 인도의 경우, 나렌드라 모디 총리 역시 극단적인 힌두 민족주의자들과 관계돼 있다는 의심을 받는다.

이런 민족주의 성향은 공격적이고 '제로섬(zero-sum)' 경향을 지니며, 국가분열까지 초래해왔다. 1·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던 20세기 전반기 역시 이런 성격의 민족주의가 전쟁의 발단이 됐다.

런던에서 발행되는 세계적인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선진·신흥국이 동시에 광신적 애국주의(쇼비니즘·chauvinism)에 사로잡혔다”며 “이런 큰 변화가 세계를 더욱 위험에 몰아넣고 있다”고 경고했다.

오늘날 재난은 전에 없던 형태로 출현하여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하며, 국경을 초월하여 발생하고, 국가와 사회 시스템을 뒤흔드는 동시에 한 사회의 약한 고리를 드러낸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 인류가 지구적 차원의 협치(協治) 체제를 만들어내야 할 이유다.

‘사피엔스(Sapiens)’의 저자 유발 하라리 교수(예루살렘 히브리대 역사학)는 영국의 국제비즈니스 신문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에 기고한 기사에서 글로벌 지도자의 책임을 포기한 미국과 전체주의적 감시체제인 중국을 비판한 뒤, “각국이 맞서 싸워야 할 것은 타국이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라면서 “국수주의보다 세계적인 협력과 신뢰의 글로벌 연대 정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전 세계적으로 단결된 노력보다는 각국의 얄팍한 이해충돌이 부각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세계보건기구(WHO) 자금지원을 중단하는 등 중국을 견제한다는 이유로 국가 이기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미국은 사전 교감없이 유럽 입국자를 일방적으로 차단했으며,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고 있는 바이오회사에 접근해 미구에 백신을 독점적으로 공급할 것을 요청했다.

의료장비를 먼저 차지하기 위한 촌극(寸劇)도 벌어진 바 있다. 독일이 경찰 공급용으로 3M사의 중국 공장에서 주문한 마스크 20만 장을 미국이 물품의 경유지였던 방콕에서 웃돈을 주고 빼돌렸고, 스웨덴 의료장비 기업이 소유한 마스크 수백만 장을 프랑스 당국이 압수한 사건도 있었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19(COVID-19) 백신 개발 경쟁에 돌입한 가운데, 국가 이기주의 행태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가난한 국가와 가난한 사람들은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찍이 칭기즈칸은 “성(城)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뚫는 자는 흥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 명언은 지구촌(global village)시대, 세계 평화와 번영을 저해하는 국수주의와 자국이기주의에 내리치는 죽비(竹篦)소리와도 같다.

진정 공도동망(共倒同亡)이 아닌, 공존공영(共存共榮)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각국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협치와 연대의 인류애(人類愛)를 회복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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